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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형태소 Feb 18. 2024

사랑은 생각하지 마

사랑에 대하여 3 : 알렝 드 보통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를 읽고

창작물을 통해 얻는 여러 감정 중 가장 공감하기 어려운 것은 의외로 사랑이다. 귀신을 맞닥뜨린 공포, 가족을 잃은 슬픔과 같은 원초적 감정은 엑스트라의 서툰 문장일지라도 쉽게 공감할 수 있지만 사랑은 그렇지 않다.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왜 사랑하게 되었는지 따위의 단단한 서사를 위한 정교한 작업이 필요하다. 독자가 작품 이외의 것을 끌어와 애써 대입하지 않아도, 작품 속 사랑 자체에 완전히 동화될 수 있는 지점이 있어야 한다. 나에게 있어 좋은 로맨스란 그런 것이다.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는 보통의 연애에 철학적 견해를 덧댄다. 만남부터 이별까지, 사사로운 감정 하나 놓치지 않고 흥미로운 통찰을 보여준다. 연애의 교과서 같은 책이지만, 독백에 가까운 주인공의 고뇌는 다소 현학적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가뜩이나 어려운 사랑을 필요 이상으로 더 어렵게 만드는 말장난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다만 사랑은 아이러니라는 점, 그 거대한 진리 하나가 소설 전체를 관통한다는 것은 깊이 동감한다. 운명 같은 사랑, 그러나 운명의 증거를 구구절절 설명하는 과정에서 단어의 의미는 퇴색되어 버린다. 우러러보기만 했던 이상향, 그러나 내 손에 들어오는 순간 지극히 평범해진다. 미성숙은 곧 성숙이며, 자기혐오는 곧 자기 연민이다. 죽음의 결심은 곧 삶이다. 사랑은 생각하지 마,라고 생각하는 순간 머릿속에 선명히 피어난다. 멀어질수록 가까워진다. 내 옆에 철석같이 달라붙어 새로운 사랑을 속삭인다. 금욕을 다짐한 주인공 앞에 또 다른 사랑이 나타났듯이. 사랑은 존재 자체로 결함이지만 우리는 그것을 인지하면서도 떼어낼 수 없다. 사랑은 나를 찌르는 창인 동시에 나를 지키는 방패다.

‘너는 내가 왜 좋아?’ 따위의 질문은 되도록 삼가는 것이 연인 사이 불문율이다. 복잡 미묘한 물음표의 의도를 추측해 가며 올바른 대답을 도출해 내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왜 좋냐는 말에 대항할 모범답안은 무엇일지 생각해 보다가, 그 물음과 답을 고민하는 과정은 이미 사랑이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질문은 곧 답이다. 사랑 참 아이러니하다.




by.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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