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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폐 Jul 02. 2023

룸 메이트, 그미들

병상 일기 6

톱풀꽃 그리고 단풍잎

룸 메이트, 그미들


아직은 새벽, 의식이 깼다. 하루가 시작 됐다.

제일 먼저 하는 일은 깨어난 의식과 함께 일어난 생각들을 곰곰 살펴보는 것이다. 그리고는 발끝에서 머리까지 훑어본다. 마음에 눈이 있다는 생각으로.


소리가 들린다. '들림 들림'을 하지 않고 무슨 소리인가 귀를 기울인다. 철제로 된 문을 두드리고 곧바로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나고 조용해진다. 몇 분쯤 지났을까?

문을 닫는 소리가 들리고 내가 있는 방 문으로 슬리퍼 뒤를 살짝 끄는 듯한, 하지만 바쁘다는 듯 종종걸음으로 누가 다가오는 소리가 들린다. 문을 두드린다.

문은 두드리지만 대답을 기다리는 두드림이 아니라 들어오겠다는 신호다. 간호사다.


혈압과 열을 재러 왔다.  "안녕하세요~?", "고맙습니다~~" 두 마디의 인사를 건네는 두 번째 일과가 끝나면, 인턴 의사가 들어온다. '잠은 잘 잤느냐, 대변은  봤는가, 밥은 잘 먹느냐? 어디가 제일 아프냐?'를 자상하고 꼼꼼하게 묻는다.

하루에 네댓 번씩, 간호사와 인턴, 주치의가 묻고 상태를 살피는 보살핌을 받고 있으니 호강도 이런 호강이 없다,




그리고 가끔은 화룡점정(畵龍點睛) 격으로 호강인지 아닌지를 점검해 주는 이가 있다. 룸메이트다.

요양보호사 일을 했던 그미와는 사흘을 보낸 뒤 이별했다.

그미는 무던하고 배려하는 성격으로 자분자분 이야기도 잘했다.

그 뒤 새로 온 룸 메이트는 귀에서 소리가 난다며 도무지 잠을 이루지 못하는 이였다. 머리를 감싸 쥐고 스트레스를 받다가 짜증도 냈다가 나에게 질문도 하면서 지내다가 밤이 되면 냉장고에서 나는 소리 때문에 못 자겠다며 들락날락, 냉장고 코드를 빼고 나서도 창문 밖으로 들려오는 자동차 소리에 힘들어하였다.

다음 날 밤도 앉았다 누웠다 일어났다 엎드렸다 뒤척이다가 끝내는 간호사실로 가서, '옆 침상 환자에게 피해를 줄 수 없으니 방을 바꾸어 달라'라고 하여 사흘 만에 이별 아닌 이별을 했다.


다시 새로운 룸 메이트가 왔다. 오자마자 커튼을 쳐버린다. 팔만 뻗으면 닿을 듯한 거리의 공간에 커튼이 쳐질 때는 진료를 받을 때뿐이었다. 그러나 그미는 진료와 상관없다는 듯 촤악~ 커튼부터 쳤다. 그리고는 철벽방어를 했다. 먹을 것 같은 건 주지 않아도 된다고.

작은 소리도 뚫는, 방음은 전혀 안 되는 두꺼운 벽이 생긴 듯 느껴졌다.




「... 살짝살짝 보이다가 급기야... 살짝살짝 보이다가 급기야... 살짝살짝 보이다가 급기야...」

펼쳐든 책을 들고 같은 줄 같은 글귀에서 맴맴 돈다. 며칠 동안의 고요가 깨졌기 때문이다.


'오늘(TV 소리)'-

'띡.(리모컨 버튼 누르는 소리)',

'빵빵-' '띡.', '자연-' '띡.',

'@#~&-' '띡.', '쵸컬릿-'

'띡.', '한 번-' '띡.',

'♩♩♬♪~♪♬♪♩~'...,


"응, 그거 알아봐. 3억이래. 응, 거기서 그렇게 말했어...."

"여보세요? 응, 나 오늘 여기 들어왔어. 응, 괜찮아. 난 이게 잘 맞는 것 같아. 응."


방염 커튼 안에서 비슷비슷한 말을 하는 것으로 세 번째 통화를 끝내고는, 소리가 없고 너무 조용하면 싫다며 TV를 켠다. 그 뒤부터는 방 안에 있는 동안은 무조건 TV를 켜두어야 하고 틈틈이 전화도 해야 하고 틈틈이 게임도 하는 그미는 무척 바쁘게 지냈다.


산속에서 새소리 바람소리 물소리만 들으며 살던 산골 사람에게는 버거운 온갖 소리가 넘쳐났다.

문 밖 복도와 창 밖에서 들려오는 소리로이미 충분하건만 너비 양팔 길이 둘을 넘지 않거나 넘는 공간에서 들려오는 온갖 세상의 소리를 따라 떠도는 마음을 터무니없이 바쁘게 했고, '사흘만 지나면 낫겠지!' 다독이다가도 '고요'와 '조용함'의 맛이 자꾸 유혹을 해댔다.




과거에는 대중가요 들으며 TV 보며 책 읽고 글 쓰는 게 됐는데, 이제는 책을 읽으려면 낮은 소리의 익숙하지 않은 연주곡 정도나 들을까! 듣는 마음이 아는 마음 손을 잡아끌고 자꾸만 들리는 대로 끄달려가자는 바람에 노랫말이 있거나 익숙한 음악은 그저, 글을 읽는 걸 방해하는 대상이  뿐이다.


듣고 싶지 않은데 들어야 하는 일, 늘 해왔던 일이나 그건 사람 사 이야기였다.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게 내가 할 일이었는데, 지금은 나를 필요로 하기는커녕 (비록 방염 커튼이지만) 벽을 치고, 먹을 걸 권하지 않아도 되상황이고 보니 말 그대로 대략 난감이다.

다 내려놓고 그이 따라 소리가 나오는 상자를 들여다보고 있으면 좋겠지만, '나'는 조용히 있고 싶고 책을 읽고 싶어 했다. 


운동하러 나간 사이 '혹시!'하고 잔머리를 써본다. 나지막이 음악을 틀어놓는 걸로.

그리고 책을 집어 든다. 한 장 넘겨갈 무렵 그가 돌아왔다. 앉자마자 리모컨을 집어 들더니 이내 여기저기 띡, 띡, 띡..., 나지막한 음악은 힘없이 묻히고, 방 안은 다시 소리로 가득 찬다. '오도독오도독!' 마른 과일칩이 문드러지는 소리까지 겹쳐진다.

아, 그나마 맥락 모르겠는 막장 드라마를 안 틀은 것만으로 다행이고 고마워해야 할까! 어쨌든...,


'나를 보는 일'을 놓지 말라 경책 하는 것이라며 다독이지만, '홀로 있고 싶다'는 유혹 또한 무시로 훅 치고 들어온다. 유혹도 참 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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