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 일기
(다음은 재미교포 글)
한국에 와보니 웬만한 동네는 모두 고층 아파트가 되었다. 가정집뿐 아니라 심지어 공중화장실에도 미국에서는 부자들만 쓰는 비데가 설치되었고, 주차티켓을 뽑는 그런 촌스런 행동은 하지 않고, 우아하게 자동인식으로 주차장에 들어간다.
모든 대중교통은 카드 하나로 해결되고, 집에 앉아서 롯데리아 버거를 시켜 먹고, 어느 집을 가도 요즘은 비밀번호나 카드 하나로 모든 문을 열고 들어간다.
열쇠, 주차티켓, 화장실 휴지 등등은 이제 구시대의 물건이 되었다. 차마다 블랙박스가 달려있고, 방문하는 집마다 리클라이너가 있고, 집안의 전등은 LED이며 전등, 가스, 심지어 콘센트도 요즘은 리모컨으로 켜고 끈다.
미국에서 나름 부자동네에 살다 온 나도 집마다 구석구석에 박혀있는 럭셔리함과 고급스러운 제품들에 놀라고 부러워하며 마치 예전 일제 제품들을 보는 듯한 신기함에 빠지고 내 삶은 마치 2,30년은 과거에 살다 온 느낌이 든다.
오늘도 너무나 스므스한 고급스러운 창문을 열면서 우리 집의 뻑뻑거리며 자주 레일을 벗어나는 문을 이렇게 바꾸면 얼마나 좋을까? 부러움으로 괜히 창문을 열었다 닫았다 해본다.
집집마다 수 십 개의 스포츠 채널을 포함 끝없는 채널이 나오고, 가는 곳마다 심지어는 버스 정류장에서도 자동으로 초고속 WIFI가 잡힌다.
역마다, 정류장마다, 몇 분 후에 내가 기다리는 차가 오는 정보도 뜨니 옛날처럼 도로를 응시하며 버스 놓칠까 염려하는 모습은 사라진 지 오래다.
나도 우아하게 비데를 사용하면서 편리한 지하철, 고속열차 등을 이용하면서 싸디 싼 택시를 타고 다니면서 그리고 몇 걸음만 걸으면 먹을 수 있는 수 없이 다양한 음식과 디저트를 즐기면서 리클라이너에 눕듯이 앉아 수많은 TV채널을 돌리면서 이 고급스러운 life style을 며칠만 있으면 떠난다는 것이 못내 아쉽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것은, 만나는 사람마다 한국에 사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를 토로한다.
전셋값이 얼마나 비싼지, 정치는 얼마나 헛짓을 하는지, 아이들 교육시키기가 얼마나 힘이 드는지, 만나는 사람마다 자신이 지옥에 살고 있다고 아우성들이다.
돈이 없다 하면서 땅이나 주식투자 안 하는 친구들이 거의 없고, 고급차 한 대 안 가지고 있는 사람이 별로 없고, 아이들 스포츠나 과외 안 시키는 사람이 드물다.
같은 가격이면서 우리 집보다 방은 두 배 많고, 연이자도 2% 대인 모기지를 가진 이곳에서 전세라는 훌륭한 시스템을 통해 매달 이자를 안 내고 살 수도 있는 이곳 사람들이 오늘도 모기지로 매달 3,4천 불을 내며 사는 사람들 보다 행복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연봉이 나보다 반이나 적은 사람이 나보다 더 좋은 차를 몰고, 더 비싼 걸 먹고, 더 편리하고, 더 고급스러운 제품이 가득한 삶을 살면서도 만족스럽지 않은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의료보험은 열 배나 싸고, 치료비도 열 배 싸게 느껴지는 이곳에서 같은 10불짜리 밥을 먹어도 세금, 팁이 없어서 늘 25% 할인받는 느낌인 이곳에서 대부분 사람들의 느끼는 삶이 지옥이라 느끼고 있다는 것이 참 신기하다.
50대가 되면 쫓겨나야 하는 현실 줄어드는 일자리에 대한 말을 많이 듣지만 실제로 내 주변에 layoff(정리 해고) 당한 사람은 한국보다 미국이 훨씬 많은데...,
인텔 3천 명, 퀄컴 3천 명, 브로드컴 2천 명의 엔지니어들이 직업을 잃어 몇 개월을 다른 일자리를 찾아도 쉽지 않은 나로서는 미국이 일자리가 더 안정되었다는 이들의 말에 선뜻 동의하기가 어렵다.
미국생활이 길어져서 감을 잃어버린 걸까?
살아보지 않은 외국인으로서 오해인가?
내가 못 보는 거겠지...! 아마 나도 살아보면 이들처럼 느끼게 되겠지 하며, 나는 공감능력이 확실히 떨어진 상태로 오늘도 수많은 이들의 불평을 듣고 있다.
냉장고를 2,3개 가지고 고기를 종종 뜯고, 사시미를 먹고, 좋은 차를 몰고, 편하고 고급스러운 집에 살면서도 가난과 위기를 노래하게 된 내 조국.
이들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진짜 안식과 평안의 필요함을 느낀다.
언제쯤 되면 우리는 진짜 가난한 북쪽의 우리 동포를 돌아다보는 그런 여유가 생기는 진짜 부자가 될까?
스스로 부한 체하여도 아무것도 없는 자가 있고
스스로 가난한 체하여도 재물이 많은 자가 있느니라
(잠 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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