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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폐 Jan 06. 2024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까부르는 복 쌓는 복)

별별 생각

까부르는 복 쌓는 복


네 자리 가운데 끝 자리 숫자가 바뀌었다. 숫자 하나 바뀌었을 뿐인데 우리는 '새해'라고 일컫는다.

양력 새해 또는 음력설이 되면 주고받는 인사 복(福), 다른 나라 사람들은 모르겠으나 우리나라 사람들은 참으로 흔히 그리고 많이 쓰는 말, 저마다 약속이라도 한 듯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를 아는 사람마다에게 건넨다.


많이 듣고 흔히 쓰지만 복이라는 글자, 중국으로부터 왔기에 그 나라 사람들도 중요하게 여기는 말이겠구나 짐작할 뿐인 복!

어렸을 때부터 참으로 숱하게 들었던 말이었지만, 머리에 낙인처럼 새겨지기 시작한 건 아마도 무심코 한 어떤 행동에 곧바로 야단치듯 날아오는 '그렇게 하면 복 나간다'라는 말을 들어야 했고 심하게는 어디 한 군데에서 찰싹 소리가 나도록 맞으면서일 것이다.

이를테면 앉아 있을 때 다리를 달달달 떨거나, 밥 먹을 때 쩝쩝쩝 소리를 낸다거나, 반찬을 집어 탈탈 턴다거나, 반찬을 한 번에 집지 않고 이것저것 집적거린다거나, 점잖게 있지 않고 촐랑거린다거나 하다못해 어른은 물론이고 남동생들이 다리를 뻗고 앉거나 누웠을 때도 다리를 타 넘고 가지 못하게 했다.

낫 놓고 ㄱ역자도 모를 어릴 때부터 들었던 '복 나가는 짓'들(?)은 호되게 야단맞은 결과로 지금도 하질 못한다.



그럼 복 받을 짓은 뭐였을까?

어리지만 복을 받게 하기 위해서 (아주 적은 양이긴 하지만) 술을 먹일 때도 있었다. 언제? 정월 보름 귀밝이술과 제사 지낼 때 올렸던 술, 그러니까 조상이 주는 복을 마셔야 한다며 음복(飮福)은 하게 했었다.


나이가 들어가거나 나이가 들면  '복이 있다' '복이 없다'는 말을 듣지 않을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지금도 심심찮게 들으며 살고 있고 나 또한 가끔 쓰고 있으니 복은 우리 삶에서 떼어내긴 어려운가 보다.

뿐만이던가, 복 가운데서도 특히 오복(五福)을 누리고 있는 사람을 가장 복 받은 사람이라고 해서 부러워한다. 어렸을 때 들었던 오복은 건강, 재물, 수명, 사람, 그리고 튼튼한 이빨이었는데 나중에 알아보니 이빨이 아니라 덕을 쌓는 일이었다.


내친김에 오복이 무엇인지 하나하나 알아볼까나.

오복은 건강하게 오래 사는 수(壽), 최소한 열두 칸 기와집에 천석의 논밭에 재물을 가진 부(富), 건강하게 태어나 몸과 마음에 병이 없고 평안한 강녕(康寧), 덕을 좋아하고 남에게 잘 베푸는 유호덕(攸好德), 건강하게 태어남은 물론 별 탈 없이 살다가 편안히 죽는 고종명(考終命) 이렇게 다섯 가지다.

내가 알고 있던 '사람복'이나 '튼튼한 이빨복'은 없다.

잘나고 어질고 좋은 사람, 요즘은 아마도 학연 지연이 있되 권력과 재력으로 든든한 빽이 될 사람이 가까이 있는 걸 인복이 있다 하고, 틀니나 임플란트가 아닌 잇몸이 튼튼하고 썩은 이 없이 제 이빨로 고기를 뜯고 씹을 수 있으면 복이 있다고 듣던 것과는 사뭇 다르다.

도대체 사람 복과 튼튼한 이빨 복은 왜 나왔을까 궁금하지만 복닥거리고 사는 사람 세상을 보면 그럴 만도 하겠구나 싶다.


한국기독학 옥성득 교수에 따르면, '복의 본디 뜻을 옛날 중국에서는 제단(祭壇) 앞에서 신에게 술잔을 두 손으로 바치는 모습이며, 고대 이집트 왕국에서도 무릎을 꿇고 양손에 술잔을 들고 왕이나 신에게 바쳤던 기록이 있다'라고 한다. '복(福)은 무릎을 꿇고 두 손으로 술잔을 신에게 바치며 예배(禮拜)하는 모습, 그러니까 복을 구걸하는 모습이 아니라, 신이 이미 주신 복을 누리므로 행복해하며 예를 올리는 것'이라고 보았다.

'구약 히브리어에서 복을 나타내는 동사 ‘바라크’(ברך)는 야훼 앞에 ‘무릎을 꿇는다’라는 뜻'이라고 했다.


이해한 대로 정리해 말하자면, '건강하게 태어나 살면서 남에게 꿈질하지 않을 정도의 넉넉한 재물로 힘들고 어려운 이웃들에게 베풀고 가치로운 곳에 기부도 하면서 질병이나 사고로 죽지 않고 건강하고 덕스럽게 살다가 편안히 죽는 이야말로 최고의 복'이라는 말이 되겠다.


이런 관점으로 보면 베풀기는커녕 하나라도 더 챙기고 손해는 조금도 안 보려는 짓이야말로 복을 까부르는 짓일 것이다.




유호덕의 이치로 보면 복을 까부르는 일로 보이는 일이 어느 프리마켓에서 있었다.

글씨와 그림을 손으로 하나하나 그린 엽서 카드 한 장을 1천 원에 팔다가 5백 원에 주겠다고 하자 그미가 다가왔다. 마음에 들었는지 한 장씩 살펴보기 시작했다.

글씨와 그림을 살펴보는 시간이 글씨 하나하나 그림 하나하나를 쓰고 그리는 만큼 걸렸다. 그미는 마치 진품명품에 나온 골동품 감정하듯 꼼꼼하게 살폈고 작은 점 티끌 하나하나도 용케 찾아냈다.

누군가 실수로 쏟은 드립 커피 얼룩이 봉투 끄트머리에 팥알 크기로 묻어 있는 것도 그미가 발견했다.

팔 수 없는 물건으로 뺐더니 마음에는 든단다.

그래서 5백 원짜리  장을 사면 덤으로 주겠다고 했다.

그미는 한참이나 공(?)을 들인 뒤  장을 골랐다. 파는 이가 그미에게 "되게 꼼꼼한 성격이신가 봐요." 하니까 그렇단다. 그러면서 "카드 되죠?"라고 묻는다. 카드를 받으면서 "오늘 선물 받으셨네요." 했더니 "왜요?"라고 되묻더니 미처 대답도 하기 전 "2천 원은 돈 아닌가요?" 그러면서 덤까지 챙겨 떠났다.


돈, 10원 1원도 소중하다. 하물며 2천 원이랴.

그러나 안타까웠다. 본인의 시간과 돈은 소중하고 가치롭게 생각하면서 하나하나 쓰고 그린 사람의 시간과 돈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듯 보여서.


그림 엽서는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초정밀 기계가 아니다. 정성은 들어갔으나 물에 젖으면 쓸 수 없고 조금이라도 찢어지면 쓸 수 없는 종이고 그림과 글귀를 직접 썼다는 것에 가치를 두는 종이 물건일 뿐이다.

그러니까 상황이나 물건에 따라 꼼꼼함의 정도는 달라야 한다. 지나친 건 모자람만 못 할 때도 있는 법이다.


또 이런 일도 있었다. 중국음식점에서 고기가 들어가지 않은 삼선간짜장을 시켰다. 내가 알기로 간짜장은 미리 만들어 놓은 짜장이 아니라 짜장에 재료를 넣고 즉석으로 볶아주는 것으로 안다.

그러나 막상 나온 음식은 전분기가 흥건한 짜장에 새우, 해삼, 오징어만 더 넣은 듯 보였다.

아마도 바쁜 시간대를 위해 양파와 고기 전분을 넣은 짜장을 미리 많이 만들어 놓았던 모양이다.

육고기를 먹으면 탈이 나는 나로서는 어쩌다 중국음식점에 가게 되면 으레 껏 간짜장을 시켰다.

'고기 빼고 해 주세요~'하면 육고기 대신 새우나 오징어를 넣어 볶아 주는 집도 있으나, 짜장에 오직 양파만 볶아 내오는 집도 있다. 양파 간짜장이지만 즉석에서 볶는 성의는 보였기에 깊이 생각하지 않고 먹었다.

그 뒤 갈 일이 있으면 '빼고' 대신 삼선 간짜장을 시키곤 했다.

그런데 미리 만들어 놓은 짜장에 해물만 넣어 다시 한번 볶은 간짜장은 맛은 물론 빛깔부터 달랐다.

어머니가 모처럼 사주시는 점심이라 먹긴 했지만 생각은 일어났다. '복을 까부르는 일'이라고.

다음에 그 음식점으로 가지 않는 건 물론이고 다른 이들에게도 추천하지 않게 되니 말이다.





건강하게 태어나 남에게 꿈질하지 않고 질병이나 사고로 몸을 다치지 않는 복을 누리는 게 타고난 복이라면 베푸는 복은 내게 달렸다.

복은 베푼 만큼 돌아온다고 한다. 마치 돈이 생기는 데로 은행에 저축했다가 필요할 때 꺼내 쓰듯 복 또한 베풀고 지은 게 있어야 받는 것이다.

그래서 옛 어른들은 하나같이 복을 받고 싶으면 많이 지으(베풂)라고 했다.

그러나 짓기는커녕 눈앞의 이익만 좇으면서 복을 까부르기만 한다면 있던 복도 다 날아가는 건 너무도 뻔한 일이 될 것이다.


복을 짓는 일, 복을 쌓는 일은 어려운 처지에 놓인 사람을 보면 고개를 돌리고 모른 척하는 게 아니라 돈으로 적극 돕는 일이다. 꼭 돈이 아니더라도 먹을 것이 없어 굶주리는 이를 보면 먹을 걸 나눠주고, 입을 것이 없어 헐벗은 사람을 보면 옷을 나눠 주는 일이다.

곧 내가 아끼는 돈이나 재물을 기꺼이 나누는 일이다.




불교에서는 한발 더 나아가 돈이나 물질이 아니어도 베풀 것이 일곱 가지나 더 있다고 일러 준다.


첫째는 가깝거나 멀거나 모르거나 사람을 만날 때는 늘 부드러운 눈길로 대하는 일, 곧 눈으로 베푸는 일 안시(眼施)가 있다.


둘째, 사람을 대할 때 부드럽고 평온한 얼굴로 웃으면서 대하는 일이다. 화안시(和顔施)라 한다.

첫째와 둘째는 평소 사람을 대할 때 마음씀이 나타나는, 흔히 말하는 마음의 창 얼굴로 베푸는 일이다. 웃는 얼굴은 상대방 마음을 편하게 하는 건 물론이고 덩달아 기분 좋게 한다. 기분 좋고 편할 뿐 아니라 참으로 아름다워 보이는 얼굴이 웃는 얼굴이다.


셋째는 험하고 거친 욕설이 아닌, 남을 속이는 거짓말이 아닌, 이쪽에서 저 말 저쪽에서 이 말을 하는 이간질이 아닌, 쓸모없는 쭉정이 말이 아닌 부드럽고 진실된 말, 말로 베푸는 일 언사시(言辭施)가 있다. 평소에도 사람을 만나면 기분 좋게 인사하면서 부드러운 목소리로 진실된 말을 하는 건 말할 것도 없고, 행여 상대방이 잘못했더라도 될 수 있으면 '상대방을 기분 나쁘지 않게 하면서 잘못을 짚어 줄 수 있는 말은 뭘까!'를 생각하면서 말을 하면 좋다.


내가 듣기 싫은 말은 상대방도 듣기 싫다. 내가 듣기 좋은 말은 상대방도 듣기 좋은 법이다. 잘못을 짚더라도 장점을 찾아 칭찬을 하면서 한다면 좋을 일이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한다. 하지만 맹목의 칭찬은 독이 될 수 있다는 것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넷째는 몸으로 베푸는 일 신시(身施)다.

길을 갈 때 무거운 짐을 들고 가는 사람을 보면 기꺼이 짐을 덜어 드는 일, 일손이 필요한 곳이나 이웃이 있으면 일을 거들어 주는 일, 특히 힘없는 노인이나 뜻밖의 사고로 몸을 다쳐서 집 안팎의 일을 못하는 이가 둘레에 있다면 기꺼이 집 안팎 일을 거들어 준다면 더없이 복된 일이리라.


다섯째는 마음으로 베푸는 곧 공감하는 일 심시(心施)다. 내가 가진 사랑과 연민심, 기쁜 마음을 나누는 일. 이를테면 위로가 필요한 사람에게는 사랑 또는 연민심으로 공감하고, 축하할 일이 있으면 진심으로 축하는 것도 베푸는 일이라는 것이다.

실수한 이가 있으면 무조건 꾸짖기보다 너그럽게 품어주는 것 또한 마음으로 베푸는 일이다.


여섯째는 자리를 베푸는 일이다. 상좌시(床座施)라고 한다.

지하철과 전철에는 노약자석이 있어 자리를 앙보 안 해도 되는 시대가 됐지만, 그래도 스마트폰에 고정된 시선을 거두고 주변을 둘러보면 자리를 양보할 사람이 보인다. 어디 지하철뿐이랴.

명절 연휴 때는 기차나 KTX도 좌석이 모두 매진이 되고 입석 또한 매진이 되는 게 현실이다.

서있는 사람 가운데 몸이 불편해 보인다면 기쁜 마음으로 양보한다면 복을 짓는 일이리라.


일곱째는 방사시(房舍施), 한문으로 풀면 집을 내주고 방을 베푸는(?) 일이다.

잠잘 곳 잠자리를 내주는 일이다. 그 옛날에는 오늘날처럼 교통이 발달되지 않았다.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봉평장으로 오는 또는 진부장으로 가는 장꾼들이 날이 저물면 하룻밤 재워달라고 했고 어른들은 당연하다는 듯 잠자리를 내주곤 했다.

지금은 숙박시설을 이용하는 걸 당연하게 여기는 시대이긴 하나 가끔은 베풀 기회가 오기도 한다.

더 나아가 살 집이 없어 집을 구하는 이에게 살 집을 내주는 일이다.

나 또한 돈은 없고 집은 필요할 때 빈집이 있다고 알려 준  이가 있었고, 빈집 주인은 거저 살게 해 주어 몇 년 동안 산 적이 있다.

그렇듯 지금도 집이 없어 어려움을 겪는 이가 있다. 그럴 때 집을 두 채 세 채 가지고 있는 이라면 기꺼이 베푼다면 목숨과도 바꿀 큰 복을 쌓는 일이다.




비록 새해라고는 하나 어제와 별다름 없이 숫자 하나 달라진 것 밖에는 모르겠는 날에 삶이 달라지는 마음가짐을 하는 것이야말로 새해에 복 받을 일 아닐까! 생각하면서 복을 까부르며 살았는지 쌓으면서 살았는지 이참에 지난 삶을 돌아보아야겠다.



* (복을) 까부르다 :  곡식 알맹이에 섞여있는 티 검불을 날리는 일.
* 꿈질 : 돈을 꾸거나 빌리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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