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이 되는 일기
제주도에서 나흘 살이
4박 4일, 순간 이동한 듯 나흘을 제주도에서 살았다.
고작 나흘을 ‘살았다’라고 하기에는 지나친 과장 아닌가 하겠지만, 100년 전 아니 몇십 년 전의 형편을 생각하면 격세지감(隔世之感)이고 공간만 다를 뿐 크게 다른 목적이 없었기에 살았다고 우기련다. 옛날 같으면 몇 달 걸렸을 곳을 반나절에 간다는 사실도 엄청난 일인 데다, 기후와 문화 또한 사뭇 다른 섬나라였던 곳을 한 시간이면 닿을 수 있다는 사실 또한 옛날 같으면 상상할 수조차 없던 일이다. 그런 곳에서 여기저기 구경하고 맛집 찾아 돌아다니기보다는 장을 보아다 아침저녁은 민박집에서 밥을 지어먹으면서 나흘 동안 두 끼만 사 먹었으니 말이다. 태어난 곳 다르고 자란 곳도 다른, 사는 곳이 다르고 출발한 곳도 다른, 나이나 생김새도 다르고 성질도 성격도 다른, 하는 일도 다르고 취미도 다른 사람, ‘다름’들이 모였지만 관광지나 맛집을 찾아다니는 흔한 일정이 아닌, 여섯이 한 지붕 아래 한솥밥을 먹으면서 지냈다.
그렇다. 나흘 살이는 단순한 여행이 아니었다. 강릉에서 평창에서 아산에서 대구에서 저마다 비싼 항공료 들여 낯선 마을 낯선 집에 모인 까닭은 바닷가의 쓰레기를 주우려는 것. 꽁꽁 얼어붙은 강원도 땅 대신 어는 일이 없는 제주도 바닷가의 온갖 쓰레기를 줍겠다고 일부러 간 거다. 누구 하나 알아주는 사람 없고 알아주지 않아도 알아주길 바라는 마음 없이 누구에게나 이로울 일을 찾아 그저 할 뿐인 마음으로 할 뿐인, 무위행(無爲行)을 하기 위해서 말이다.
그런데 제주의 2월 하순은 평창 산골의 추위보다 더 매웠다. 바람 때문이었다.
‘제주도’ 하면 ‘따뜻하고 덥다’는 인식이 뭉개지는 날들이었다. 바닷가의 바람은 모래밭의 모래를 차도로 옮겨다 놓을 정도로 드세고 거칠었기에 두껍고 따뜻한 옷에 모자를 쓰지 않으면 다니기 힘들 정도였다. 먹을거리를 파는 토박이 주민에게 물었다.
“바람이 너무 거센데요. 어느 시간쯤이면 잠잠해져요?”
토박이 주민이 말한다.
“이건 부는 게 아닌데요? ‘바람이 분다.’ 할 때는 차가 못 다녀요. 흔들리고 뒤집힐 것 같아서.”
아닌 게 아니라 마을 길 가로수 가지 위 복판에 텐트가 올라가 있는데, 가지에 걸려서 옴짝달싹 못하고 천막 천만 펄럭이고 있었다. 바람의 작품인 게 분명해 보였다.
‘다름’ 여섯은 반나절 정도 바닷가 한 구간을 정하여 쓰레기를 주웠다.
쓰레기는 어마어마하게 많이 묻혀 있었다. 마치 모래밭에 일부러 심어 놓은 듯 온갖 플라스틱과 나일론 밧줄 그물 조각들과 온갖 병들이 반쯤 모래밭에 박혀 있고, 본디 내용물 대신 모래를 잔뜩 담고 있었다. 일회용 장갑이나 빈 병들은 더 이상 굴러다니거나 날아다니지 못할 만큼 모래가 들어있어서 (쓰레기를) 줍는 게 아니라 뽑아내서 모래를 털어내야 했는데 그 일 또한 만만치 않았다.
그 밖에도 빼빼 마른 해초에 낚싯줄과 그물 조각이 뒤엉켜 숲을 이룬 사이사이에 온갖 비닐들과 가닥이 풀린 밧줄 조각들에 나일론 끈들, 플라스틱 숟가락이나 포크, 일회용 컵들에 깨진 병 조각들, 플라스틱 빨대들, 병뚜껑, 미늘과 바늘이 네 가닥으로 달린 낚시 도구들, 수없이 많은 종류의 온갖 쓰레기들이 널브러져 있거나 묻혀 있기에 반나절 가까이 줍고 빼내고 줍고 빼내고를 거듭해야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주웠던 그곳은 바닷물이 검은 바위로 밀려왔다 밀려가는 곳, 관광객들이 차를 잠시 세우고 바다를 바라보거나 천천히 오가는 도로 사이 한쪽 옆에는 담수가 흐르고 있었다.
바람에 거센 때문인지 오가는 사람들은 뜸했다.
우리가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는 쓰레기와 모래에 박힌 비닐 쓰레기를 끌어낼 때마다 심술 바람도 거들었다. 모래 속에서 끌려 나오면서 잔뜩 묻힌 비닐의 모래를 바람은 망설임 없이 우리 얼굴이나 모자에 흩뿌렸다. 그렇게 우린 허리가 아프도록 주웠고 무려 (100리터 자루) 열다섯 개를 채웠다.
하루를 마무리하는 저녁때, 소감을 나누었다. 뿌듯했단다. 제법 보람이 있었단다.
바람이 불지 않는 계절이라면, 비행기 삯만 비싸지 않다면 한 달에 한 번씩 하면 좋겠다 싶을 정도로 쓰레기는 너무 많았다. 어디 제주도 바닷가뿐이겠는가! 내가 사는 마을 골짜기 골짜기에도 (쓰레기들이) 채이고 채일 정도로 많다. 그러나 겨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하여 지난해 본 바닷가 현실을 안타까움과 아쉬움으로 말하면서 ‘만약에’ 함께 간다면 하루 정도는 쓰레기를 주우면 좋겠다는 입 밖으로 뱉었고 그 말에, ‘하자’하는 마음과 실행력들이 모였던 거다.
덕분에 나흘 살이를 하였지만…,
민박집을 거저 내준 주인이 아니었으면 엄두를 내지 못했을 일이다. 내 집처럼 편하게 쓸 수 있도록 하는 건 물론이고 차를 내주고 제주도 사연에 배웅까지 해주었기에 가능했다. 말로 다 할 수 없을 만큼 참말로 미안하고 참말로 고맙다. 또한 비행장까지 마중 나와주고 배웅해 준 지인도 고맙고 고맙다.
그런 ‘고마움’ 덕분인지 ‘다름’ 여섯이 나흘 동안 한 집에 살면서 한 번도 부딪침 없고 짜증 내는 일 없이 한 밥상에 옹기종기 둘러앉아 밥을 먹으면서 잘 지낼 수 있었던 듯하다. 제주의 역사와 해녀와 동백꽃을 만난 것은 덤이었고 또한 뜻깊었다.
고로, 우리의 나흘 살이는 두고두고 기억나고 두고두고 추억할 일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