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15만 km를 함께 달리며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던 제 자동차가 사고로 더 이상 함께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새로운 차를 알아보게 되면서 자연스레 요즘 많이 듣는 말, ‘그돈씨’라는 표현이 떠오르더군요. ‘그 돈이면 씨’라는 말처럼, 처음엔 아반떼 정도로 시작했던 제 선택이 옵션을 더하고, 차종을 한 단계 올리다 보니 어느새 그랜저, 심지어 포르쉐까지 검색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문득 스쳐가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좋은 차를 타면 더 성공한 느낌이 들지 않을까? 남들이 부러워하지 않을까? 한마디로, 하차감을 생각하고 있는 저 자신을 발견한 겁니다.
우리는 차를 보지만, 그 안에 탄 사람은 보지 않는다
그러다 문득 예전에 어디선가 읽었던 글이 생각났습니다. “옆에 슈퍼카가 지나가면 우리는 그 차를 보지, 그 안에 탄 사람은 보지 않는다.” 워낙 길에 좋은 외제차들이 흔하게 다니는 세상이다 보니, 웬만한 슈퍼카가 아니면 눈길조차 가지 않는 게 사실입니다. 설령 시선을 주게 된다고 해도, 우리는 그 차만 볼 뿐 그 안의 사람에게는 관심이 없습니다.
중고등학교 때는 친구들이 쓰던 아이폰이 그런 상징이었고, 대학생 때는 명품 가방이나 지갑이 그랬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좋은 외제차가 그런 존재가 되었죠. 겉으로 보이는 물건이 나를 대변해줄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면서, 잠깐이라도 타인의 시선을 붙잡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이내 깨달았습니다. 남의 시선을 위해 1년 동안 일해 번 돈을 고스란히 쏟아붓는다는 게 과연 합리적일까?
남의 시선을 위한 선택 대신, 나를 위한 선택
이런저런 생각 끝에 저는 결국 큰 부담 없이 유지할 수 있는 국산 중형SUV를 선택했습니다. 물론 경제적 여유가 충분하다면 멋진 외제차를 타며 나 자신에게 보상을 주는 것도 좋은 일입니다. 하지만 저에게는 아직 미래를 위해 준비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느꼈습니다. 좋은 차가 더 좋은 나를 만들어주진 않기에, 하차감이 아닌 진짜 나의 필요와 여유에 맞춘 선택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한편으로는 멋진 스포츠카를 타고 와이프와 드라이브할 순간을 버킷리스트로 남겨두었습니다. 언젠가 그런 날이 온다면 그 차는 남의 시선을 위해서가 아니라, 저희 둘의 소중한 시간을 위한 선택이 될 것입니다.
하차감은 ‘소유’의 만족감을 주지만, ‘사람’을 대변하지 않는다
하차감, 명품, 외제차. 이러한 것들이 순간적으로 우리에게 만족을 줄 수는 있지만, 그 물건들이 진정으로 나의 가치를 높여주진 않습니다. 잠깐의 만족과 타인의 시선을 좇기 위해 무리한 소비를 선택하는 것은 결국 자신을 위한 선택이 아닙니다. 물건이 아닌 나 자신을 중심에 두고, 지금 내게 가장 소중한 가치와 필요를 충족시키는 방향으로 삶을 살아가는 것이 더 나답고 진정한 행복을 찾는 길이라고 믿습니다.
이제는 단순히 겉으로 보이는 소유물이 아닌, 내가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소중히 여기는지를 보여주는 삶을 살아가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