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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닥터 이비누 Nov 22. 2024

그럴 수도 있지

불필요한 논쟁은 피하는 게 상책

어렸을 때 저는 누군가와의 논쟁에서 지거나 제 말이 무시당하는 것을 참을 수 없었습니다. 단순히 논쟁에서 진 것이 아니라, 모든 면에서 상대방보다 못하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떻게든 이기고 싶었고, 내 말이 옳음을 증명해야 직성이 풀렸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런 마음이 점차 옅어지게 되었습니다. 상대방과의 논쟁에서 이기는 것보다, 나와의 관계를 더 소중히 여기는 법을 배우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논쟁은 ‘논쟁을 위한 논쟁’에 불과했습니다. 논쟁에서 이기든 지든, 남는 건 불쾌한 감정뿐이었습니다. 그리고 관계의 틈은 점점 깊어졌습니다.




논쟁은 나의 에너지를 낭비할 뿐이다


돌이켜 보면, 많은 논쟁은 단지 내가 상대방보다 더 나은 사람임을 증명하고 싶어 하는 자존심 싸움이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논쟁을 이어가면서 제 시간과 에너지는 점점 소진되었고, 나중에는 이겼다는 사실도 별 의미가 없게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경험을 반복하다 보니 깨닫게 되었습니다. 굳이 논쟁에 나의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며, 상대방과 관계를 불쾌하게 만들 필요가 있을까?

그 순간부터 저는 논쟁의 에너지를 흘려보내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마치 무협 소설의 고수가 상대방의 일격을 가볍게 흘려보내는 것처럼요. 상대의 의견에 굳이 정면으로 맞서기보다는, 그 의견을 가볍게 받아들이고 흘려보내는 법을 실천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럴 수도 있지’라는 마음가짐


요즘 저는 논쟁을 피할 때 이렇게 말하곤 합니다.  

“그럴 수도 있겠네요.”

“그것도 좋은 생각이네요.”

이런 말을 하다 보면 놀랍게도 상대방의 기세가 한결 누그러지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상대방도 ‘내 의견을 인정받았다’는 안정감을 느끼는 것 같습니다. 물론 저 역시 상대의 의견에 굳이 힘을 들여 맞서지 않아도 되니 마음이 훨씬 가벼워집니다.

이 방식은 진료실에서도 유용하게 쓰입니다. 때로는 환자분들 중 스스로 병명을 정해 놓고 오시는 경우도 있고, 본인이 원하는 말을 듣고 싶어 저를 설득하려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제가 굳이 “그건 잘못된 생각입니다”라며 맞서봤자, 환자와의 관계는 악화되기 마련입니다.

대신 저는 환자의 의견을 최대한 경청하고, 큰 해가 되지 않는다면 환자의 말을 존중합니다. 틀린 말이어도 환자의 입장을 받아들이고 공감하면, 결과적으로 치료가 훨씬 좋은 성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관계가 틀어지지 않고, 신뢰 속에서 치료를 이어나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논쟁을 흘려보내는 것은 나를 위한 선택


이제 저는 논쟁을 피하는 것이 단순히 상대방을 위한 선택이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한 선택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내 에너지를 소모하지 않으면서도, 상대방과의 관계를 긍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럴 수도 있지’라는 마음가짐은 단순히 상대방에게 동의하거나 굴복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내가 굳이 불필요한 싸움에 에너지를 쏟지 않겠다는 의연함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상대방과의 관계가 소중할수록, 그리고 내 에너지가 중요할수록, 불필요한 논쟁은 피하는 것이 상책입니다. 오늘도 저는 그 에너지를 더 나를 위한 시간, 더 건강한 관계를 위해 사용하려 합니다. 그럴 수도 있지, 라는 작은 한마디가 결국 나를 더 지키는 길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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