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까지 올라가는 거예요?
5살짜리 딸이
마트에서 멈춰 섰다.
'아빠 나 이 티니핑 랜덤토이 사고 싶어'
처음엔 안된다고 했지만
'나 이거 너무 필요해,
꼭 있었으면 좋겠어'라며
바지를 잡고
슈렉고양이 눈으로 쳐다본다.
그 애교에 또 당해
4000원짜리 장난감을
하나 쥐여주니
세상 다 가진 표정으로
행복해한다.
하지만 저녁이 되니
낮에 산 장난감은
장난감박스에 던져져
다른 장난감들과
같이 찬밥신세가 되었다.
어렸을 때 나도 그랬다.
욕심이 많아서
뭐 하나 갖고 싶거나
이루고 싶은 게 있으면
기어코 가져야 직성이 풀렸다.
아이를 키우다 보니
아이에게서 어렸을 때
내 모습을 보게 되며
뜻밖의 '거울치료'를 받고 있다.
어렸을 때는 '장난감'
학창 시절에는 '수능점수'
그리고 '의사면허증'
'연봉' 얼마...
'자동차', '자가'...
살면서 그 눈높이에 맞는
'내 손이 닿을 듯 말듯한 곳에 있는 그것들'을
그토록 갈망하면서 살아왔다.
하지만 지금까지 살면서
가장 힘들었던 시간은
내가 그토록 갈망한 것을 얻은 후였다.
의대에 합격하고 1년 뒤
의사 되고 1년 뒤
기대했던 황금빛 미래와는 달리
그 생활이 너무 힘들고 지쳐서
우울증 치료를 받았었다.
전문의로 나와서도 마찬가지.
별반 다를 게 없었다.
당장 큰 부자가 될 거 같았지만
그런 일은 없고 지금까지 처럼
앞으로 수십 년은 열심히 일해야 한다.
전문의로 나오니
개원해서 병원이 잘되고,
서울에 아파트 한 채 장만하고 싶다는
욕망이 생기고
누구누구는 개원해서 병원이 잘된다더라
아무개는 서울에 집을 샀다더라
들려오는 소식에
또 마음이 불안해졌다.
그러다 장난감은
그것을 가지고 '즐겁게 놀아라'는 의미로
사준 것이었는데
그저 장난감을 가지는 '소유' 자체에
집착하는 딸을 보고
내 모습이 보여
나를 돌아보게 되었다.
물론 지금도 내가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불안감이
엄습할 때도 있으나
이제는 의식적으로
'많이 가지는 인생'보다는
'즐거운 인생'을 살고자 한다.
'어디까지 올라가는 거예요?'
'소유'를 목표로 하다 보면
그 끝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