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젠베르크는 태업을 했을까? 실력이 없었을까?
양자역학. 불확정성의 원리. 물리학을 모르는 사람도 한 번쯤은 들어본 단어들일 것이다. 아인슈타인과 더불어 20세기를 대표하는 물리학자 하이젠베르크의 이론들이다.
2차대전 때 연합국 에 비해 무기 생산량이나 경제력에서 현저히 열세인 독일은 승리를 위해 핵무기 개발에 나섰다. 여기에 동원된 과학자 중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하이젠베르크다. 연합국의 페르미나 오펜하이머는 핵무기 개발에 적극적으로 임했지만, 하이젠베르크는 조국 독일이 핵무기를 개발하지 못하도록 일부러 태업했다고 한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원래 하이젠베르크 실력이 핵무기를 개발할 정도가 안됐다고도 한다. 진실은 아무도 모른다. 다만 하이젠베르크의 평소 언행을 보고 짐작만 할 뿐이다.
나찌가 집권하면서 폭력과 테러가 빈발하고 주변국을 침략하기 시작하자, 독일의 지식인들은 국가의 운명과 과학의 오남용을 크게 걱정했다. 특히 아인슈타인을 위시한 과학자들은 신변의 안전과 원하는 연구를 하기 위하여 미국으로 망명을 떠났다. 하이젠베르크에게도 미국으로의 망명을 권하는 동료와 제자들이 많았다. 미국 정부도 하이젠베르크 정도의 과학자라면 얼마든지 환영했다. 그러나 하이젠베르크는 이를 거절했다. “ 사람은 모름지기 절대다수의 보통 사람에게 적용되는 원칙에 부합되는 행동을 해야한다. ”라는 칸트의 철학을 자신의 삶과 태도에도 그대로 적용했다. 하이젠베르크 주변의 보통 사람들은 아무리 조국의 상황이 암담하고 힘들더라도 외국으로 망명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하이젠베르크도 이런 보통 사람과 운명을같이한 것이다. 이런 하이젠베르크가 나찌에 협조해 보통 사람들을 떼죽음시킬 핵무기를 개발하려 했겠는가?
하이젠베르크 같은 노블리스 오블리쥬가 그리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