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시절, 그리운 친구

땡이라도 나는 좋아 기념품만 빨리다오!

by 죠니야

88 올림픽이 끝나고 두세 달 정도 지났을까, 벌써 40년이 다 돼간다. 지금도 하는지 모르겠지만 당시에는 전 학년이 봄 가을에 한 번씩 소풍을 가고 소풍을 가면 반드시 반별 장기 자랑이 열렸다. 사전에 말재주 좋은 학생 한명을 사회자로 정하고 사회자는 각 반을 지명하여 노래나 춤, 꽁트 같은 것을 시켰다. 별 준비 없이 즉흥적으로 하니 연습이 필요한 춤이나 꽁트는 거의 없고 참가자 대부분 노래를 한다. 하지만 아무리 반을 대표했다고 해도 실력이 안되는 참가자도 있기 마련이다. 그러면 심사위원(대부분 학년부장)은 ‘땡’하고 처리했다.

다행히 우리 반에는 성악을 전공하겠다는 친구가 한 명 있었다. 그런데 옆 반은 정말 인재가 없어 조금 순박하면서 나서기 좋아하던 친구를 떠밀어 내보냈다. 반을 위해 제발 나가달라고 사정해 나갔지만 역시 실력은 어디 가지 않았다. 잔뜩 폼잡고 교과서 가곡 ‘한송이 흰 백합화’를 불렀는데 클라이막스 부분인 “ 어여뻐라 수운~결한 희인 백합화야↗ ”부분에서 저절로 꺾기가 들어갔다. “ 어여뻐라 수운~결한 희인 백합화야~하↘ ” 모여있던 수백 명의 선생과 학생들은 일제히 뒤집어졌다. 심사위원도 폭소를 터트리며 ‘땡’ 쳐버렸다. 그런데 열심히 노래하다 ‘땡’처리된 그 친구는 부아가 치밀었는지 갑자기 마이크를 들더니 “ 땡이라도 나는 좋아 기념품만 빨리다오! ” 가수 남진의 ‘님과 함께’ 곡조에 맞춰 한마디 더 하고 내려갔다. 더 큰 폭소가 터지고 선생과 학생들은 또 한 번 뒤집어졌다.

지금은 50대 중반이 되었을 그 친구, 뭐하고 지낼까? 공무원이나 자영업이 아니라면 그 친구도 아마 은퇴했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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