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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베르탱

올림픽에 생각나는 사람

by 죠니야

우리는 쿠베르텡을 근대 올림픽 창시자로 알고 있다. 그러나 올림픽을 부활시키자는 움직임은 쿠베르탱 이전에도 있었다. 17세기 초에 영국의 로버트 도버가 코츠월드 대회라는 올림픽 같은 대회를 열기도 했고 1830년대에는 오스만제국으로부터 독립한 그리스에서 고대 올림픽 정신을 이어받은 근대 올림픽 부활 움직임이 일기도 했었다. 그러나 말만 있었지 실행이 없었다. 쿠베르탱처럼 국제올림픽위원회( I.O.C.)를 조직해 초대위원장으로 올림픽의 부활을 위하여 세계를 누비며 적극적으로 활동한 사람은 없었다. 쿠베르탱은 전쟁을 막으려면 국가 간의 우애와 협력 증진이 필요하다 생각했고 가장 효과적인 수단으로 스포츠제전인 올림픽을 제안한 것이다. 당시 시대정신 역시 국가 간 교류 협력의 증진이었기에 많은 나라가 찬성했고 협조도 얻을 수 있었다. 이후 128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에도 올림픽 정신과 역사는 꾸준히 지속되고 있다. “ 부뚜막의 소금도 집어넣어야 짜다. ” 란 말이 있다. 말만 오고 가던 올림픽을 현실로 만든 쿠베르탱이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이와는 결이 다른 쿠베르탱을 한 명 더 소개한다. 그 사람은 체육 선생이었는데 별명이 쿠베르탱이었다. 오래전에 퇴직해 지금은 살아있는지도 모르겠다. 학력고사로 대학에 입학하던 시절, 한 학기에 한 번 치르는 체육 필기시험을 신경 쓰는 학생은 별로 없었다. 기말고사, 체육 시험문제를 본 학생들 눈이 갑자기 휘둥그레지면서 여기저기서 폭소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1번 문제가 “ 근대 올림픽을 창시한 사람은? ” 이었는데 보기가 “ ① 쿠베르탱 ② 쿠베르통 ③ 쿠베르팅 ④ 쿠베르퉁 ” 이었다. 10문제가 다 그런 식이었다. 0번. “ 올림픽 마라톤에서 우리나라 최초로 금메달을 딴 사람은? ① 손기정 ② 김기정 ③ 이기정 ④ 박기정 ” “ 0번. 다음 중 맨손 체조로 하는 운동은 ① 가슴 운동 ② 독립 운동 ③ 천리마 운동 ④ 새마을 운동 ” 장난으로 그랬는지 진담으로 그랬는지는 본인밖에 모르겠지만 여하튼 상상도 못할 일을 했다. 지금 같으면 중징계를 받았겠지만, 워낙 옛날이라 웃음으로 끝났다. 더 웃긴 건 이런 시험에도 0점 받은 학생들이 수두룩 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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