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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H Mar 21. 2022

살아있어 감사합니다.

과거와 미래는 희로애락

  유치원과 초등학교 당시 친구와 놀 적을 추억해보면 절로 미소 짓게 된다. 호기심으로 무장하여 오지를 탐험하는 영화 속 주인공처럼 어디를 가든 누구와 함께 하든 즐겁고 당당했다. 성장을 하며 우리는 이성을 배우게 된다. 살아가기 위해 지켜야 할 도덕적 의무 안에서 자유가 주어진다. 30대 청년이 '뽀로로'라는 애니메이션을 보지 않는 것처럼, 성숙하다는 것은 '수준 높은 행위와 사고방식'을 지키는 일이 된다. 이따금 나는 지인들을 만나 동심과 추억을 안주삼아 과거에 대한 썰을 나눌 때가 참 좋다. 책임에 짓눌려 자유를 잃은 듯한 벅찬 현실을 치유케 해주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가 어릴 때와 변함없는 모습으로 농담을 해올 때면 우리가 정말 나이를 먹기는 한 걸까? 의아할 적도 있다. 규칙적으로 흘러가는 일상 속에 지칠 때면 과거의 좋은 추억들을 그리워하는 건 인간의 본능인 것 같다. 일상 속 스트레스는 대게 사람과의 관계에서 일어난다.  업무로 맺어진 회사 동료, 등급으로 나뉘는 학교 친구 등 사회에서 맺어진 관계의 특징은 '경쟁'이다. 어릴 때는 '경쟁'이란 개념도 순수했다.  운동을 잘하고, 노래를 잘 부르고, 친구가 많아 부러워하며 나도 더 잘해야지라는 '열정'으로 자극되었다.


하지만 학교를 다니고, 회사를 다니며 순수한 열정은 처절한 생존으로 변질되었다. '저 친구를 넘어서야만 성공할 수 있어', '저 사람보다 일을 잘해야 회사에서 살아남을 수 있어' 등의 이기심 말이다. 심리학적으로는 풀이하여 남들보다 높아지려는 욕구 타인을 통제하려는 욕구가 나에게는 큰 장벽이 되었다. 공부를 잘해 엄마에게 칭찬받고 싶었고, 회사에선 업무를 잘하여 꼭 필요한 사원이 되고 싶었다. 그럴수록 의심과 열등감이 마음 안에 스며들어왔다. 회사 동료가 가볍게 던진 말에 날을 곤두세우며 무슨 의도인지 고민하였고, 친구의 성공을 진심으로 기뻐해주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있었다. 어느 날 나는 1년 3개월을 다닌 비누 공장을 말없이 그만두었다. 월급도 250만 원에 추가 근무 수당 또한 짭짤하였으며, 내부 분위기와 사람들도 정말 좋았다. 정작 나를 힘들게 한 건 외부의 무언가가 아닌 나의 마음에 있었다. 나보다 사회 경험이 출중한 사원이 입사하며 나의 존재감이 떨어짐을 느낀 순간 나는 퇴사를 무의식 속에 결정했다. 누구나가 나여야만 가능한 개성을 존중받고 인정받기 원하지 않는가? 실제로 나를 무시하지도 않고, 잘해주었음에도 '분명 저 사람은 나의 자리를 위협하는 사람'일 거라는 의심은 확신으로 흘러갔다. 회사를 그만두었을 당시 나의 마음은 미래에 대한 허구로 가득 찼다. 내가 이 회사가 아니면 다닐 곳이 없는 줄 알아? 다른 곳에 가서도 충분히 인정받고 존중받으며 일을 할 수 있어! 라며 찝찝한 마음을 달랬다. 부당하게 착취당하여 정당한 이유를 가진 선택이 아니라 나의 비도덕적인 행위에 대한 이유를 꾸며내기 급급했다. 말도 안 하고 그만두었기에 핸드폰에 불이 날 듯 전화와 문자 카톡 알림이 울려댔다. 마치 죄인처럼 이래도 괜찮은 걸까?라는 불안한 마음이 드는 한편, 불티나게 나를 찾는 다급한 관심들에 기뻐하는 나를 보며 소름이 돋았다.


퇴사 후 해방감과 다른 일을 찾아보겠다는 의욕의 불씨는 너무나 쉽게 꺼져갔다. 당당하게 말을 하고 그만두었더라면 찝찝함이 없었을 텐데 나의 마음을 숨긴 채 도망치듯 나온 것이 나의 현실임을 인정하는 순간 눈물이 쏟아졌다. 시간이 지나며 나의 인생에서 한 줄에 획을 그은 이 사건은 좋은 술안주가 되었다. 퇴사 후 회사가 점점 번창하는 모습에 후회를 하게 되고, 떳떳하지 못한 죄책감은 나를 따라다니는 그림자가 되었다. 과거는 떠올리면 웃음 짓게 만드는 좋은 추억도 있고, 기억하기 싫은 아픈 상처도 있다. 미래를 꿈꾸다 보면 희망이라는 설렘도 있고, 뭐든 안될 것 같은 불안도 있다. 과거와 미래는 현재를 살아가며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는 '희로애락'이다.




자존감이 떨어질수록 쥐구멍을 깊게 판다.

  과거의 뼈 아픈 실패를 경험한 사람은 현재 같은 상황 속에서 똑같은 실수를 하지 않을까 두려움에 떨게 된다. 나 또한 회사에서 불편한 상황을 이겨내지 못하고 멋대로 퇴사한 후 트라우마가 생겼다. 어디를 가든 사람을 맑고 투명하게 대할 자신이 없어졌다. 나의 마음이 이기심으로 가득 차 있음을 직감한 순간부터 편하게 관계 맺는 법을 잊어먹었다. 친구에게 오랜만에 연락이 올 때면 덜컥 겁부터 났다. 친구들은 번듯한 회사를 다니며 자기 앞가림은 물론이고 연애를 하며 청춘의 꽃을 피우고 있었다. 도대체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걸까? 라는 고뇌에 빠져 홍대 거리를 하루 종일 걸었던 적도 있다.


20살을 누구나 부푼 꿈을 안고 맞이하지 않는가? 태어나서 처음 '자유'라는 해방감을 느낄 나이가 20살이라 생각한다. 10시 이후에도 바깥 문화를 즐길 수 있고, 술과 담배를 당당하게 구매하러 갈 수 있으며, 운전을 하여 원하는 목적지로 향할 수도 있다. 나 역시도 무엇이든 마음만 먹으면 다 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가득했었다. 하지만 자신 있게 계획하고 그리던 꿈들이 하나씩 좌절되어가며 현실이라는 냉혹함에 어퍼컷을 맞았다. 번듯한 직장에 취직하기 위해선 스펙과 학벌이 귀중했고, 로또를 맞지 않는 이상 서울에 내 집 마련은 불가능했으며, 한 직장에서 꾸준하고 성실하게 다니는 것조차 굳건한 동기 없이는 힘들었다. 비누공장을 퇴사한 후 자존감이 정말 바닥을 쳤다. 부정적인 생각 속에 '어차피 죽을 인생 내 멋대로 살자'라고 다짐했다. 죽음을 떠올리니 내가 왜 죽기 살기로 돈을 벌어야 하나? 의문이 들며 오로지 눈과 귀가 즐거운 욕구에 충실해졌다. 새벽 4시까지 게임을 하고 TV를 보고 다음 날 오후 3시가 되어 일어났다. 퇴직금으로 먹고 싶은 배달음식을 왕창 시켜먹으며 쓰레기는 쌓여만 가고 치울 의지조차 없는 백수가 되었다.


이러한 사이클의 맛이 들려 나는 3년이라는 시간을 집 안에서만 보낸 적도 있다. 처음 한 달간은 여기가 천국이라 느낄 만큼 좋다. 월요일에 편의점에 앉아 출근하는 사람들을 구경하고 있자면 내가 인생의 승리자가 된 것 같다. 저 사람들은 무엇 때문에 조급하게 살아갈까? 현자라도 된 것 마냥 여유롭게 월요일의 운치를 즐겼다. 그렇게 3개월 정도가 지나도 출근하는 사람들을 바라보고만 있는 내 모습을 보고 치가 떨리게 된다. 나는 언제쯤 새로운 의지를 품고 재기할까? 반성을 하게 된 순간부터 집 문을 걸어 잠그고 사회와 담을 쌓았다. 나는 생각을 하지 않고, 감정을 느끼지 않는 귀신처럼 집안을 떠돌아다녔다. 불안이 내 마음을 노크할 때마다 이 악물고 게임에 집중한 것이다.


 방구석에서 지내는 모습을 안타깝게 바라보는 엄마의 시선에도 극도로 예민해졌다. 아무리 미워도 아들 밥을 챙겨주고 걱정이 되어 조심스레 물어본 한마디 한마디가 나를 비웃는 것만 같았다. 엄마가 집에 들어오면 방문을 굳게 잠그고 거실로는 나오질 않았다. 오랜 시간을 그렇게 생활해본 사람이라면 공감할 것이다. 가장 편하게 대화할 수 있는 가족에 눈치까지 보게 되면 그곳이 바로 지옥이다. 대한민국 어디에도 마음 편하게 두 다리 뻗고 지낼 '집'이라는 둥지를 상실한 것이다. 상실에 의미에는 공간적 의미뿐만 아니라 가족이라는 삶의 이유도 함께 있었다.


'실수해도 돌아갈 수 있는 따듯한 고향이 사라진 것만 같은 느낌, 지구에 나 혼자 남은 듯한 공허함은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었다. 함께 식사하고 하루의 일상을 편하게 나눌 수 있는 누군가와의 대화가 너무나 그리웠다. 쥐구멍 끝까지 숨어보며 비로소 소소한 일상이 사실 나의 삶에 가장 중요한 엔진임을 깨달았다.'



다르게 생각해보기 (편견)

  마음에 들지 않는 외모, 남들보다 더딘 업무수행능력, 사람들 앞에서 말도 못 꺼내는 소심함 등 '자존감'은 '자신감'과 유사하다. 대부분이 자존감이 없다는 말을 자신감도 없고 우울하고 부정적 등 좋지 않은 이미지라 생각한다. 나는 천성은 고칠 수 없는 개성이라 믿는다. 내성적인 사람은 외향적인 사람이 될 수 없으며 활발한 사람이 우울할 수도 없다. 나도 내성적인 성격이 너무나 싫어 활발한 척 살아갔던 시간이 많았지만, 남들은 속일 수 있어도 내 안의 양심은 속일 수 없었다.


물론 소심한 성격이 마음에 들지 않거나 꿈을 이루기 위해 방해가 된다면 얼마든 노력으로 극복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조용한 사람이 활발한 성격을 가진 사람으로 다시 태어났느냐? 아니라 생각한다. 외적으로는 노력을 통해 변화할 수 있으나 고유의 내적 성격은 우리의 인품 안에 남아있다. 보통 활발하고 천진난만한 이들은 내성적인 사람을 부러워하지 않는다. 하지만 내성적인 사람은 활발하고 독특한 이들을 부러워하며 닮고 싶어 한다. 나는 바로 이것이 편견의 중요한 딜레마라 생각한다. '소심한 것은 좋지 않은 성격이야',  '나도 활발한 성격이었다면 더 잘 살았을 텐데'라는 편견이 자존감을 증진시키지 못하는 원인이 된다.


하지만 사회가 개인을 바라보는 시선도 '편견'과 '변화'에 초점을 두고 있다. 소심하면 소심하지 않게 행동해라, 속도가 더디면 빠르게 할 수 있도록 노력해라, 사회성이 부족하면 사회성을 키워라 등 정답을 제시하며 그 안에서 완벽해지길 바란다. 물론 업무의 속도가 더디다고 월급을 작게 주진 않지만 우리는 여기서 다른 누군가와 비교를 당하게 된다. 잘하는 사람과 못하는 사람이라는 부서가 생기는 것이다. 잘하는 사람에게는 칭찬과 관심을 주고 못하는 사람에게는 무관심한 방치로 온도 차가 벌어진다. 이렇듯 회사에선 성과에 대한 물질적 보상만 있는 것이 아니다. 회사에서 큰 실수를 하면 기분이 우울해지고 상사와 동료에게 칭찬을 받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사람은 누구나 소속된 구성원 안에서 사랑받길 원하며 기여할 수 있는 존재가 되길 바란다. 실수를 하여 사람들이 나를 좋지 않은 사람이라 바라볼 때 우리는 소속 된 공동체에서 자기 효능감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다. 나는 내가 쓸모없고 무가치한 존재라고 느껴지는 순간 회사 자체가 싫어진 적이 참 많다. 급여는 평범해도 일하는 사람들과의 관계가 편안하면 오래 다닐 수 있었지만 험악한 분위기를 조성하는 곳에선 월급을 아무리 많이 줘도 오래 다니기가 힘들다.


하지만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선 적당한 조화를 이룰 수 있어야 한다. 세상과 회사는 내 입맛대로 맞춰주는 곳이 아니기에 우리는 스스로가 변화를 도모해야 한다. 이러한 패턴들을 고치기 위해선 본능적 욕구와 이성을 잘 분배할 줄 알아야 한다. 타인의 반응에 극도로 예민해지면 세상 어디에서도 정착할 수 없는 떠돌이가 된다. 대접받고 사랑받으면 그곳이 지상낙원이지만 불화가 없는 삶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하고 타인과 부딪히며 아픔을 겪는다. 나 또한 비누공장에서 제품을 생산하며 완벽한 업무수행을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전 날 친구와 다툼이 있거나, 잠을 설쳐 컨디션이 다운되어있을 적엔 종종 하자가 있는 비누를 만들어냈다. 완벽하게 만들어내자는 의지는 다짐할 수 있었지만 변화무쌍한 상황들에는 무력했다.


본능과 이성을 적당히 분배한다는 것이 완벽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가 아니란 것을 깨달았다. '어쩔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용기와 가능한 것을 바꿀 수 있는 지혜'가 해답이었다. 실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되 나 자신을 부정적으로 학대하지 않는 태토가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도와주었다. 그래야만 실수와 실패가 나의 커리어로 쌓여갔다. 이렇듯 자존감을 증진시키는 길은 다르게 마음먹어보고 다르게 대처해보며 마음의 근육을 기르는 일이다. 앞 서 말한 소심한 성격을 장점으로 변화시켜볼 수도 있다. 소심한 사람은 대게 신중하고 꼼꼼하고 배려심이 깊다. 사회복지처럼 누군가를 도와주는 일이나 디테일하게 제품을 검품 해야하는 자리에서 빛이 난다. 뮤지컬 배우가 있으려면 무대와 관객이 있어야 하듯이 누구나가 빠질 수 없는 세상의 구성원이다. 소심함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면 나만의 개성이 될 수 있듯이, 편견을 부수면 '존재하는 것만으로 감사한 삶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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