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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H Mar 21. 2022

'나'

내가 누구야?

  가끔  자신이 어색해질 때가 있다. 나의 마음은 내가 제일  알듯이 살아왔지만 머리로 이해하고 있는 모습과 다르게 돌발적인 문제들이 터질 때면 말이다. 누구나가 나의 부족한 부분을 인정하기 싫어할 것이며 달라지고 싶다는 절실함이 있다. 눈치를 보느라 자신의 감정을 숨겨야 하는 사람, 타인의 마음을 공감해주지 못하는 사람, 누군가에게 의존적인 사람, 외적인 요소로 자신감이 저하된 사람  수치스러운 나의 모습을 인정하기란 굉장히 힘들다.  이유는 아무리 노력해봐야 달라지지 않는다는 현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남들 앞에 서면 땀이  오듯 쏟아지는 사람이 아무리 다짐해도 똑같이 땀이나고 얼굴이 붉어지는 것처럼 말이다. 자기소개서를 작성할 때를 떠올리면 우리는 장점과 단점, 취미와 같이 내가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으로만 나뉘어 나를 설명한다. 그렇다면 독서와 영화감상, 글쓰기를 좋아하고, 운동, 채소를 싫어하는 것이 나일까? 물론 그것도 나의 일부이다. 하지만 나의 핵심이라 이야기하기에는 모호하다.


내 안에는 무언가를 하고 싶어하는 본능과 이렇게 해도 괜찮을지를 상황에 맞게 판단하는 이성이 있다. 남들 앞에서 부끄러워 땀이 나는 것은 본능, 당당해질 거라는 다짐과 함께 변화하고자 하는 의지는 이성이다. 본능적인 나를 선택하고 살 것인지, 이성적인 나를 선택하고 살 것인지가 나의 삶에선 가장 큰 질문이었다. 다이어트를 예를 들어본다면 살을 빼서 이뻐지고 싶은 소망과 먹고 싶은 즐거움을 놓치기 싫은 욕구가 있다. 주말에 친구가 여행을 가자고 한다면 여행을 가고 싶은 나와, 집에서 쉬고 싶은 내가 있다. 문득 나는 어느 것이 나일까? 어느 쪽을 선택해야 옳은 선택일까?를 고민하게 되었다. 본능에 충실해지는 것이 정직한 삶일까?, 이성적으로 판단하여 현명한 선택을 하는 것이 참일까? 일상에서 흔하게 있는 상황을 마주하며 고민해볼 수 있다. 나는 두 가지의 방법을 다 경험해보았다. 본능에 충실해져 다이어트고 뭐고 하루 종일 먹고 마시며 자유를 만끽해보고, 철저한 음식관리로 20kg을 감량한 적도 있었다. 극단적인 두 가지의 선택 모두 행복하지는 않았다. 나의 욕구에 잠식되었을 때는 불어나는 몸무게와 떨어지는 자신감에 위축되었다. 반대로 닭가슴살만 먹고 공복을 유지할 때면 무엇을 위해 이렇게 참아내야 하는지 스트레스가 똑같았다. '성취'함을 통해 나의 꿈들을 실현하는 삶과 '즐거움'을 통해 나의 인생을 즐기는 삶이라 예를 들 수 있지만 여기에는 공통된 불행이 존재하는 것이다.


나를 알아가기

  나를 알아가기 위해선 좋고, 싫음, 추구하는 가치와 생각들이 명확해져야 한다.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다는 것은 내 안에 중심이 똑바로 서지 않았다는 증거일 수 있다. 나는 젊은 나이에 많은 경험들을 했다. 홀로 해외에 나가 국제 ngo인턴, 천연비누공장, 각종 아르바이트, 공동체 생활, 지금은 인력 사무소를 나가 막일을 해보고 있다. 나를 알아가기 위해선 다양한 경험들이 필요하다. 경험을 해보지 않고 길을 정해 앞만 보고 달려가는 인생은 열정이 없다. 무언가를 성취하기 위해서만 매달리면 진정한 나를 모를 수밖에 없다. 이미 그려놓은 이미지에 도달하기 위한 노력은 타고난 자아를 발견하는데 걸림돌이 된다. 사실 개인의 인생은 이미 정해진 운명 같은 것은 없지 않을까? 살아가면서 배워가면서 생각해보면서 나는 어떤 사람이고 싶은지, 나는 누구인지가 점점 명확해지는 것 같다.


현재 나는 노가다를 하면서 냉정한 사회를 경험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회사라는 공동체 구성원들 간에 연대와 돌봄이 없는 개인의 하루 일과와 일당만이 전부인 곳이다. 현장에 배정받아 나가서 하는 일이란 남들이 하기 싫어하는 지저분한 일도 있고, 청소하는 기계처럼 부림 당하기도 일쑤다. 대우도 좋지 않고, 일을 잘하는 사람과 못하는 사람 간의 차별도 심하다.  하루마다 일당이 주어지니 방탕한 일상에 빠지기도 쉽다. 좋지 않은 모습을 뒤로하고 내가 끌렸던 이유는 누군가는 해야  일이여 서다. 아무리 더럽고 좋지 않은 사람들도 많은 곳이지만 기계가 대체할  없는 노동을 하고 있는 곳이 노가다 현장이였다. 또한 냉정한 사회 안에서 연약한 나의 내적 마음들을 강화시키기에 적합했다. 욕을 하고 강한척 하는 것이 아닌, 삶을 살아가다 보면 부딪히며 싸워야  적도 있다는  배웠다. 예를 들어 현장에서 다쳤는데 당당히 병원비를 요구할  있어야 하고, 부당한 노동에 이의를 제기해야 한다. 모든  수긍하고 둥글게 살아가다 보면 나를 잃어간다는  깨달았다. 심리학적으로 보면 자기주장이다.  마음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정직해져야 한다. 상사의 눈치를 보고 회사에 비전에  인생을 거는 형태는 결코 행복할  없었다. 나와 같은 세대를 살아가는 젊은 청춘들에게 생각의 전환을 이야기해주고 싶다. 공무원과 대기업을 포기하면   가지의 직업들이 나를 기다린다는 것을 말이다.  안에서  빠지게 일을 하라는 것이 아니라 경험해보므로 쌓이는 내적 스펙을 중요시하길 바라는 마음이다.


나는 나야!

  다양한 경험들을 통해 나는 너도 아니고, 회사도 아니고, 돈도 아니야, 나는 나다. 단순한 말이지만 이걸 이해하고 인정하는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20살이 되어 사회에 냉정함에 자존감이 바닥을 치게 되고, 무엇을 하여 먹고살지를 고민하다 돈을 벌기 위해 남의 시중을 들게 된다. 자존감을 회복하고 사회와 맞서 당당히 어깨   있는  자신을 만들어가는 과정은 정말 험난했다.   말한 본능과 이성   가지가 나의 전부가 아니었다. 본능과 이성 무엇이 나일까를 고민하는 진짜 내가 있었다. 무엇을 결정하고 변화하고자 노력하고 고민하고 조율하는  자신이 정말 나였다. 무엇으로 규정하고 어떤 사람이라는 단어로 표현할  없는 가지각색의  자신 말이다. ' ' 발견하는 순간 자아의 중심이 우뚝 솓았다. 친한 친구라면 양심이 어긋나는 거짓말을 해오던 내가 당당하게 NO라고 대답하는 순간이었다. 회사 상사와 친한 친구와 나보다 나이가 많으신 어른들에게  가치를 표현할  있다는 자신감과 자유가 생겼다. 얼마나 어려운가? 술을   마셔도 사장님이 한잔하러 가자하면 속이 뒤집어질 때까지 술을 마시고, 친한 친구가 난해한 부탁을 해올 때면 거절하기 힘이 들고, 어른들이 편입된 정치적 견해를 늘어놓을 때면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라고 대답할  있는 용기 말이다. 사회생활과 사회성이라는 개념 자체가 왜곡되었다고 생각한다. 요즘 중학생 친구들만 보아도 건달처럼 선배님 호칭을 붙이며 깍듯이 인사를 하는 모습을 종종 본다. 이게 정말 행복한 인간관계인지 질문하고 싶다. 학교에서부터 시작되어 군대, 회사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사회의 노예가 되어가는  아닐까?  테두리에서 자유로워야지만 진짜 나를 찾을  있다. 다이어트를 해야 할까? 말아야 할까? , 나는 이걸 좋아하나? 싫어하나? 무엇이 옳고 그른  없다. 어떠한 것이든 내가 선택할  있는 자유와 나의 선택을 믿고 도전하고 부딪히는 삶이 내 자신 그 자체다. 세상에서 요구하는 모든 것이 정답일 수는 없다. 부디 개인의 가치와 개성이 존중받는 세상이 오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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