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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H Mar 13. 2023

아빠 산소에 다녀오며

 아빠 산소 앞에서 굳어버렸다. 분명 살면서 힘들었던 슬픔을 쏟아 낼 각오를 하고 만나러 갔는데, 아빠 산소 앞에서 나는 다시 어렸을 때 내가 되었다. 장손으로 울지 않고 꿋꿋이 버텨야 하는 무게감과 다른 가족들의 애통함 속에 나까지 울어버리면 모든 게 무너져 내릴 것 같은 무거운 책임감이 아직도 내 발을 잡고 있구나.. 돗자리를 깔고 엄마는 경전을 읆었다. 그 모습마저 왜 이리 화가 났을까? 엄마가 나누는 대화와 내가 나누고 싶었던 대화의 기대가 달랐다. 나는 명언과 좋은 글귀를 나누고 싶지 않았다. 그저 아빠와 아들 간의 일상의 대화를 나누고 싶었고, 살면서 단 한 번도 내비치지 않은 힘든 일들을 하소연하고 싶었으며, 보고 싶다고 소리치고 싶었다. 엄마는 앞 전에 화내고 애통해하는 과정을 거치며 이미 마음속에서 아빠를 떠나보냈지만 나는 그렇지 않았다. 내겐 아빠가 하나님이었고, 보이지 않은 곳에서 때론 나를 감시하고 책망하고 격려해 주는 든든한 조력자였다. 


얼굴과 목소리도 기억나지 않은 사람을 닮기 위해 무궁무진한 상상을 해본 사람이 있을까? 나는 그러했다. 살아생전 아빠가 어떠한 사람인지에 대한 정보를 긁어모아 머릿속으로 오만가지 아빠의 상을 그려왔다. 적게는 열 가지 많게는 스무 가지의 아빠의 인격과 형상이 내 안에 자리했다. 한 가지 닮은 것으로는 만족할 수 없었다. 내가 그려놓은 수 만 가지 아빠의 상을 본받기 위해 노력했다. 노력하고 노력했지만 좌절하고 또 좌절했다. 그림을 잘 그렸던 아빠인데 나는 그림의 영 소질이 없었다. 글씨를 잘 쓰던 아빠인데 내 글씨체는 유치원 생이 써놓은 지렁이 같았다. 아이들을 내 아이처럼 돌봐주던 아빠인데 내게는 그럴만한 품이 없었다. 공구를 잘 다루며 뭐든 뚝딱 잘 만들던 아빠인데, 톱질하나 제대로 하지 못하는 나였다. 꽃을 사랑하며 동네에서 가장 이쁜 정원을 가꾼 아빠인데, 내게는 디자인에 대한 센스가 없었다. 이른 아침부터 성실히 동물들을 기르고 풀을 뽑던 부지런한 아빠인데, 나는 밤을 좋아했다. 


나는 어렸을 때처럼 산소 앞에서 소리 내어 말하지 못하고 벙어리가 되었다. 자동적으로 속으로 대화를 하기 시작했다. 나 왔다고 잘 지냈냐고? 여전히 속으로도 내 감정과 생각을 아빠와 정직하게 나눌 수 없었다. 옛날처럼 담배 한 개비를 꽃아 주고 산소를 쓰다듬으며 형식적인 행위들을 했다. 그렇게 멍 때리고 있다가 문득 근방 동네를 구경하고 싶었다. 그곳은 아빠와 엄마, 할머니, 삼촌, 고모, 내가 살던 곳이었으며, 내가 태어난 고향이었다. 또한 태어남과 동시에 나의 자아가 죽은 영혼이 묶여있는 땅이었다. 아빠의 죽음과 엄마의 우울, 알코올 중독 삼촌의 학대 어렸을 적 상처가 고스란히 저장되어 있는 곳을 차를 타고 돌았다. 2~3살 남짓에 일인데 나의 아픔이 있던 공간의 대한 그림이 뚜렷하게 그려졌다. 저 집에서 내가 학대를 당했으며, 저 집에서 삼촌이 야구방망이를 들고 엄마와 나를 죽이려 했으며, 저 집으로 엄마와 도망을 갔었지... 주변은 외지에서 온 이방인들로 세련된 주택들이 새로 지어져 있었지만, 어렸을 적 상처 입은 공간들은 그때의 디자인과 풍채가 여전했다. 저곳들도 없어졌었더라면 좋았겠다는 생각과 동시에 있는 그대로 남아있다는 안도감 두 가지의 감정이 교차했다. 과거를 털어내고 현실을 살기 위해 찾아간 애증의 곳이었지만 더욱이 혼란을 가져온 시간이었다. 다시 아빠 산소에 돌아오니 갑작스레 차가운 바람이 불었다. 나도 모르게 엄마에게 이렇게 말했다. '엄마 아빠가 이제 가래' 신 내림을 받은 사람처럼 그만 가보라는 아빠의 밀어냄을 느꼈다. 엄마가 말했다. '아들 이제 그만 놓아줘, 당신이 편히 떠나지 못하니 아들도 당신의 한에 묶여있다고' 전율이 돋았다. 그만 가고 싶었다. 갑작스레 불어 온 바람처럼 나의 감정도 소용돌이쳤다. 엄마의 한 마디가 정곡을 찌른 것 같았다. 

울고 싶었다. 하나 30년의 생을 살아오며 내가 악착같이 지켜낸 건 절대 울지 않기로 다짐한 나와의 약속이었다. 그만 집에 가고 싶었다. 엄마가 먼저 내려가고 아빠에게 인사를 하고 떠났다. 함께 애도하고 떠나보내면 마음이 편해질 줄 알았는데, 같은 핏줄이지만 엄마와 나는 다른 사람이었으며 다른 방식의 회복이 필요함을 느꼈다. 나 스스로가 떠나보내야 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온 귀중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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