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저녁노을

2. 앰뷸런스는 사이렌을 드높이 울리며 차가운 새벽도심을 달렸다

by 신관복

희끄무레 먼동이 터오고 있었다. 토요일이었다. 소스라치며 잠에서 깨어나 반사적으로 휴대폰을 손에 쥐었다.

아빠 곁에서 꼬박 밤을 새운 아들과 통화하며 서둘러 그에게로 갈 채비를 했다.

아빠가 엄마 오지 말라고 하는데...

아빠가 산소마스크를 쓰고 있고 숨을 쉬기 힘들어한다고 했다.

그 힘든 와중에도 그는 나를 보살피고 있었다. 그의 곁에 있으면 내가 쓰러질 가봐 최대한 나를 집에 붙들어 두려고 애쓰고 있었다.

담당주치의 박준용교수가 콜을 받고 전공의와 함께 응급실로 내려와 환자의 상태를 살피고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진행하겠다고 했다. 등 뒤쪽에 주삿바늘을 찔러 폐에 차있는 물을 두 차례 뽑아냈다. 상태는 호전되지 않았다.

급성 패혈성쇼크라고 했다.

며느리와 함께 병원에 도착해 아들을 밖으로 불렀다. 보호자용 출입목걸이를 착용하고 그에게로 달려들어갔다.

여보, 나 왔어.

눈을 가늘게 뜨고 그가 나를 보며 말했다.

알룩이.

괜찮아, 여보 괜찮아.

그의 온몸을 감싸 안으며 그에게로 몸을 밀착시키고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내가 열아홉 살부터 그와 함께 한 35년의 세월이 압축되어 지금 그를 껴안고 있는 이 순간에 끼어 몸부림치고 있었다.

2022년 5월 7일 오후 2시였다.


그는 자주 오른팔을 들어 목뒤에 받쳐놓은 백포뭉텅이를 머리 위로 밀어 올리는 동작을 반복했다.

숨쉬기 힘들어하는 고통이 그 동작에서 배어 나왔다.

바로 코앞 담당간호사에게 왜 우리는 입원실로 올라가지 않느냐고 상황설명을 요청했다.

아드님께 다 설명드렸는데 다시 원하시면 요청하겠습니다.

앳되고 내 아들 나이밖엔 안 보이는 여의사가 찾아와 조용히 상황을 설명했다. 이미 환자의 혈액이 염증수치가 너무 높아 회복불능이라고 했다. 입원실로 침대를 옮기려면 산소통도 같이 옮기고 다른 장치들도 다 같이 옮겨야 하는데 그러다가 환자에게 심정지가 올 우려가 있어 이동을 못하고 있다고 했다.

아들이 아빠를 보고 싶어 했다. 잠깐 밖으로 나와 아들과 교대했다.

응급실 앞 간이의자에 앉아 하늘을 쳐다보았다. 서쪽하늘에 진한 석양이 비껴있었다. 금세 어둑어둑해지며 사람이며 차들이 서둘러 귀갓길에 오른 병원 앞 도로는 스산하고 어지러워 보였다.

안젤라고모에게 전화했다. 주말이어서 여수집에 갔다가 지금 올라오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아이민에게 전화했다. 숨을 죽이고 남편의 상황을 들었다. 코로나19 상황으로 단동아파트에 갇혀 한 달 동안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국경을 넘어올 턱이 없었다.

심형에게 전화했다. 마음을 굳게 먹고 침착하라고 했다. 채비하고 오겠다고 했다.


나는 다시 그의 온몸을 껴안고 그의 얼굴에 내 얼굴을 대고 말했다.

당신 너무 훌륭하고 멋진 남자였고 남편이었고 아빠였다고, 그리고 너무 고맙고 미안하고 사랑한다고.

그는 듣고 있는 것 같았다. 내 말에 실눈을 뜨고 약간의 반응을 보이군 하던 그가 이젠 실눈을 뜨지 않았다.

안 들려? 여보, 이젠 아예 못 듣는 거야?

그의 몸을 부여잡고 그에게 밀착되어 있는 나에게 네댓 명의 의사와 간호사들이 달려와 말했다

보호자분, 환자분 5월 7일 10시 30분에 사망하셨습니다.

나는 아니 아직도 이렇게 따뜻하고 코밑에서 더운 바람이 흘러나오고 있는데 아직은 아니라고 했고 의료진은 알았다고 좀 더 같이 계셔도 된다고 하며 물러났다.

수분동안 그렇게 나를 기다린 의료진이 환자분 정리해드려야 한다고 잠깐만 휘장밖에 나가 있어 달라고 했다.

응급실 복도의자에 앉아 아이민에게 전화했다. 말은 못 하고 통곡만 했고 아이민은 숨을 죽이고 나의 통곡과 푸념소리를 듣기만 했다.

평생 의료인으로 근무해 온 안젤라 고모는 오빠 돌아가셨으니 언니 정신 차리라고 했다.

그의 가장 가까운 벗인 심형은 응급환자호송차량을 준비해 보냈다고, 어느 장례식장을 예약했으니 그쪽으로 오라고 침착하게 나를 이끌었다.

정신을 차리고 남편에게 허둥지둥 달려갔다. 이미 깨끗하게 정리되어 조용히 누워있는 그를 다시 안으려는 순간 선뜩해진 그의 몸에 흠칫 놀랐다. 내가 늘 알던 그의 따뜻한 몸이 아니었다. 서서히 식어가고 있었고 팔다리가 점점 굳어져가고 있었다.

그의 얼굴을 다시 한번 쓸어보았다. 고통이 없는 평온한 얼굴이었다.

KakaoTalk_20230403_121235480_02.jpg 1995년 봄의 우리 가족사진을 유화로 남기다 "중앙동물원기념"

응급실 안전요원이 저쪽 뒤문으로 모시는 것이 어떻겠냐고 하는 말을 귀등으로 흘리며, 고생하셨습니다 라며 머리 숙여 배웅하는 의료진에게 목례를 하며 이송용침대에 옮겨 눕힌 그를 앞세우고 응급실 정문으로 나와 아들 며느리와 함께 장례식장에서 보낸 앰뷸런스에 올랐다.

내가 조수석에 앉고 남편을 차량가운데에 이송침대 그대로 태우고 아들 며느리가 그의 양옆에 앉았다.

앰뷸런스는 요란한 사이렌경적을 울리며 차갑고 쓸쓸한 새벽도심을 누비며 달렸다.

나는 눈을 크게 뜨고 앞쪽만 응시하고 있었고 뒤쪽에서 아빠를 부르며 우는 아들 며느리의 처절한 울움소리가 내 귀에 멈춤 없이 들려왔다.

2022년 5월 8일 새벽 2시였다.

섬찟하도록 붉은 저녁노을처럼 그의 마지막은 아름답고 강렬했다. 그는 서서히, 조용히, 평온하게 심장의 고동소리를 멈추었다.

KakaoTalk_20230403_115312681.jpg

다시 5월을 맞으며.

당신에게 이 글을 삼가 바친다.


2023년 4월 3일 신관복 드림.



keyword
작가의 이전글저녁노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