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는 평안가의 노을 비낀 창가에서 단잠을 잔다.
아기는 내가 안고 있을 때나 눕혀 놓았을 때나 항상 벽에 걸려 있는 그림이나 사진들을 유심히 바라보곤 했다. 아기의 눈길은 무엇을 아는 듯한, 생각이 깊은 눈길이었고 표정은 아기답지 않은 진지하면서도 완강한 표정이었다.
우리 유현인 이담에 화가가 되려나 봐, 그림이 좋은지 머리를 돌려가며 이렇게 유심히 바라보네. 뭐 아는 것 같은 표정이잖니.
아가아가 어서 자자
자장자장 어서 자자
둥근 둥근 돌다리 아래
아빠오리, 엄마오리
예쁜 나~ 새끼오리
너무 좋아 헤엄치네
파아란 물 맑은 물
찰랑찰랑 흘러가네
둥근 둥근 돌다리 건너
타박타박 꽃길 걸어
해님이 숨기 전에
어서어서 집에 가자
내가 그림을 바라보며 아기를 재우면서 대강 이런 말을 노래처럼 두런두런 얘기하면 원체 순한 아기는 스르르 잠들곤 한다.
멍하니 아무 생각 없이 창밖을 내다보거나 집안을 왔다 갔다 할 때엔 나도 모르게 멈춰 서서 그가 그린 이 그림을 뚫어지게 바라보곤 한다.
굴뚝이 하늘을 향해 쓰윽 솟은 아담한 2층 집 뒤로 푸르른 나무와 붉은 단풍잎 나무들이 뒤섞여 서있는 아름다운 숲이 펼쳐져 있는데 위쪽이 둥그렇게 생긴 출입문을 열고 나오면 정원에 펼쳐진 녹색의 잔디밭 가장자리에는 온갖 화초들이 저마다의 색색의 꽃을 만개하며 화려함을 뽐내고 있고 왼쪽 등나무 우거진 정자에는 하얀 그네가 매어져 흔들거리고 있다. 출입문에서 정원의 녹색잔디밭 가운데를 가로지르는 돌길을 따라 얼마간 나오면 집 앞을 감돌아 흐르는 파란 시냇물 위로 둥근 돌다리가 있는데 돌다리 위에 서서 바라본 시냇물에는 오리네 세 식구가 유유히 헤엄치며 장난치고 있다. 이 맑은 시냇물의 시원은 집 왼편 저쪽 하얀 구름 아래 시뿌옇게 솟아있는 멀고 먼 산속 그 어떤 바위짬이리라.
갑자기 지팡이를 짚고 몇 날 며칠을 걸어 깊고 깊은 산속의 그 바위로 찾아가 억겁의 세월 동안 쉼 없이 솟아오르는 시원의 생명수를 마시고 싶은 생각이 강렬하게 치밀어 올랐는데 끝도 없는 생각을 여기서 끊어냈다.
나의 반신 초상만 그리는 그에게 자주 전신 그림을 그려달라고 말하곤 했다. 포즈를 취해 보이면서, 해님이 눈부신 어느 초가을날에는 짙은 녹색의 잔디정원으로 그를 몰고 나가 이런 배경으로 이런 자세의 나를 그려달라고 조르며 억지로 스케치를 그리게 한 적도 있었다.
아마 막연하게 알고 있는 유럽의 르네상스 시대의 그림들 속에 살아있는 아름다운 여인들에 대한 동경이었는지 아니면 그 여인들처럼 그림으로 영생하려는 허망하고 엉뚱한 이기적 마음이었는지, 후자가 더 강했을 것이다.
그래, 그래 다 그려줄게.
그러나 그려야 하는, 아니 그리고 싶은 그림이 아직 많은데 몸이 말을 안 들으니 그림 그리는 시간이 너무 촉박했고 좋은 날들에는 이런 날들을 많이 많이 느끼고 숨 쉬고 싶은데 그 또한 허락된 그런 날들이 너무 짧아 그는 늘 물처럼 너무 빨리 흐르는 날들에 대해 불만이었고, 화창하고 순한 좋은 날씨가 오면 또 이런 날씨에 불만이었다.
날씨는 왜 이렇게 좋은 거야, 나직한 그의 말을 못 들은 척 나는 일부러 큰 소리로 딴 얘기를 하곤 했다. 철쭉이 곧 피어 정원이 화사해질 거라는 등, 작약은 올해엔 벌써 큰 꽃망울을 매달고 있는 중이라는 등, 그러면 작년보다 작약이 더 크고 화려하게 필 거라는 등, 근데 작약은 피면서 져서 아쉽다는 등, 목수국은 한결같을 거라는 등등.
지난 12월 서울로 다시 올라가기로 결심하고 퇴근 후시간이나 주말에는 가지고 올라갈 짐들을 하나하나 간추리며 보냈다. 오래된 나와 그의 옷가지들과 잡기책들 안 쓰는 물건들을 박스에 담다가 2층 맨 끝 방의 한쪽 벽에 서있는 하얀 캔버스들에 눈길이 갔다. 위쪽에 먼지가 쌓여있었다.
그는 버릇처럼 말하곤 했다.
지금 남아있는 이 캔버스들만 다 그리면 좋겠다...
위쪽 먼지를 닦아냈다. 그리고 다른 벽 쪽에 다시 가지런히 세워놓았다. 이 남겨진 하얀 캔버스들과 유화물감들, 그리고 그림 그리던 화구들은 그대로 여기에 남겨둘 것이다. 접이식 낚시의자에 앉아서 오래도록 그려지고 있는 그림들을 들여다보고 또 캔버스에 시선을 고정시키고 멀리, 가까이 왔다 갔다 하던 그의 허상을 이 방에 화구들과 남겨놓고 나는 떠날 것이었다.
“平安家 “
그가 떠나기 전 4개월 전에 나에게 선물한 이 그림을 그가 떠난 후 이 세상에 온 그의 손녀아기가 유심히 바라보고 있다. 아마 아이의 맑은 눈동자 속에 오래도록 이 그림을 들여다보며 앉았던 그의 눈길이 담겨있을 것이다.
그리고 아기는 이 소박하게 아름다운 2층집 창가에서 사위어가는 붉은 노을빛을 투명한 얼굴에 받으며 평온한 꿈나라로 가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뒤 산 아늑한 단풍나무아래서 한 번도 마주한 적 없는 할아버지를 만나는 단꿈을 꾸고 있을지도 모른다.
2024년 2월 18일 신관복 쓰다.
더 씀
아들은 나의 이 보잘것없는 글들을 읽을 때마다 엄마 글은 항상 슬프다고 했다. 좀 웃기고 재밌는 글을 쓸 수 없냐고 했다. 그렇게 하마 라며 노력하겠다고 했다. 다음 글부터는 읽다가 풉 하고 웃는 글을 쓰리라 다짐하기도 했다. 그런데 쓰다 보니 또 무거운 글이 되고 말았다. 나는 잠들기 전 좋아하는 작가의 소설을 읽는 게 습관이 되었는데 읽다가 혼자서 푸후후후 하고 웃는 적이 많다. 그때마다 존경스럽다 이런 대작가들이.
내 마음속에는 늘 울음만 차있는 것인가, 그래서 내 글은 무겁고 슬픈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