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에게) 할 말이 없을 뿐.
"원래 말이 없어요?”
“조용한 분이네요”
이 말은 내가 어렸을 때부터 고등학교 다닐 때까지 명절에 친척들을 만나거나 부모님의 친구들을 만날 때면 많이 듣던 말이다. 물론 직장생활을 하는 지금도 어색한 사이의 누군가와 만날 일이 있을 때 상대는 나에게 그런 말을 한다. 지금도 나는 말을 하는 쪽이 아니라 듣는 쪽이다. 나의 머릿속에는 물음표보다는 느낌표나 마침표로 가득하다. 더군다나 함께 있는 사람들이 나와 친분이 없는 사람이라면 더욱.
사람들은 보통 나를 말이 없거나 무뚝뚝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의 대화 틈에서 나는 그저 듣고 있을 뿐이다. 사실 어렸을 때는 내가 말이 없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어른들이 ‘말이 없네’라고 내게 자주 말을 했고 나는 어느새 말이 없는 아이가 되어 있었다고 생각한다.
지금에서야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나는 말이 없는 사람이 아니라 할 말이 없는 사람이었다. 지금까지의 일들이 머릿속을 스치면서 조금 억울하다는 생각까지 든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공감대라는 것이 있어야 말이 잘 통한다. 나는 나와 관련된 것이 없는 사람에게는 궁금한 것이 없었던 것이다.
사회생활을 하려면 처음 보는 사람과 대화를 잘 이어나가야 한다. 모르는 사람과의 대화 기법에는 상대방에 대한 취미, 학교 등을 알아가면 대화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한다. 물론 동의는 하지만 나는 억지로 누군가와 친해지고 싶은 마음은 없다. 사람을 만날 때 자연스럽게 만나는 것이 좋다. 조금씩 상대를 알아가면서 가까워지는 방법을 선호한다. 그러려면 시간이 좀 걸리긴 하지만 오래 만난 사이일수록 관계가 더 깊어진다고 믿는다. 오래된 술일수록 향이 깊어진다는 말이 있다. 숙성된 술처럼 오래된 사이일수록 관계가 더 깊고 짙어진다는 말이다.
이제는 나에 대해 잘 모르는 누군가가
말이 없네요라고 말한다면
말이 없는 게 아니라 할 말이 없는 거예요.라고 말한다.
자칫, 건방져 보일 수 있으니 말을 삼켜야겠다.
최근에 우연히 본 글이 하나 생각난다.
배우 윤여정이 영화 '계춘할망'으로 만난 김고인이 '싹싹하지 않아서 마음에 들었다'는 말을 했다. 일반적으로 어른들 앞에서 씩씩해야 하는 것이 정석인 양 강요했던 우리 사회에 김고은은 색다른 시각을 제시했다는 것이고 이를 윤여정은 좋게 받아들인 것이다.
나이 많은 어른 앞에서 어색해하는 그 자연스러운 것을 우리는 언젠가부터 잊고 지냈었다. 나의 모습에 빗대면 처음 만나는 사람 앞에서 일부러 밝은 척하여 어색함을 억지로 물리치고 싶은 생각이 없다. 할 말이 생각나면 생각나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자연스럽게, 천천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