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죽는다.
사람은 태어난 순간부터 누구나 죽음을 향해 다가간다. 노년기의 어르신들은 강한 공감을 할 것이다. 그러나 어린아이들에게 혹은 청소년들에게 이런 말을 한다면 한창 성장할 나이에 쓸데없는 말을 한다며 분노의 대상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 말은 진실이다.
진실이지만 인정하기 싫은 진실이다.
왜 사람들은 죽음을 쉽게 인정하지 않는가. 아마 두려움 때문일 것이다. 삶이 끝나는 것을 죽음이라고 생각하고 두려워하고 있다.
16세기 프랑스를 대표하는 철학자 미셸 드 몽테뉴는 <죽음에 관하여>라는 책에서 '죽음을 받아들이는 법은 곧 삶을 사는 법'을 배우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죽음을 두려움이 아닌 삶의 일부로 바라보고 현재의 삶을 보다 충실히 살아가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한다. 죽음은 우리가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는 안내자일 뿐이라고 말이다.
그의 말대로 죽음을 삻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누구나 죽고 나 자신도 죽는다고 생각한다면 하루 하루가 달라지지 않을까.
<프루스트가 우리의 삶을 바꾸는 방법들>의 저자 알랭드 보통이 '죽음의 위협'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오늘을 사랑하는 방법을 언급했는데 비슷한 맥락일 것이다.
1년간의 사망신고서 접수 업무를 끝으로 나는 다른 곳으로 발령이 났다. 내가 원한 일은 아니었지만 사망신고서를 접수하면서 많은 생각을 했고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원래 표현을 잘 하는 편은 아니라서 혼자서 속으로만 생각했는데 브런치라는 공간을 통해 그동안의 나의 생각을 기록할 수 있어서 또한 정리할 수 있어서 좋다.
한번 생각하고 마는 것이 아니라 기록으로 남기는 일은 결국 나 자신을 위한 일이다.
삶과 맞닿아 있는 죽음을 항시 기억하고 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