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 어느 날, 중학교를 다니고 있었을 적에 부모님과 함께 매장에서 새로 살 가방을 찾고 있었다. 남들의 이목을 끄는 화려한 외양에 대해서는 워낙 거리감을 크게 느꼈던지라, 현란한 무늬나 눈에 확 들어오는 색상 혹은 큰 글자가 박힌 상품들은 후보군에서 제외되었다. 온라인 마켓 앱에서 물건을 고를 때 본능적으로 가격 오름차순 정렬로 품목을 보는 유전자의 영향으로, 고가의 상품 역시 잠재적 리스트에서 제외되었다.
지금과 예전의 사고방식은 많이 다르지만, 까다롭지 않은 척을 하면서도 별의별 이유를 대며 선택지를 거부하곤 하는 습관만큼은 변함이 없었다. 심사숙고 끝에 정한 몇 개의 후보는 내면의 복잡한 잣대를 적용했을 때 별반 차이가 없어 보였다. 한정된 예산 앞에 하나만을 고를 수 있었지만, 그 어떤 것도 소년의 마음을 다른 것보다 강하게 잡아당기지 못하고 있었다.
아들이 소위 '결정장애' 증세를 보이자, 보다 못한 부모님께서 추가로 몇 가지 기준을 제시해 주셨다. 한 번 사더라도 오래 쓸 수 있는 것을 골라라, 책과 노트를 되도록 많이 넣을 수 있는 것을 골라라 하는 식의 조언을 듣고 나니 여러 조건을 만족하는 후보는 하나뿐이었다. 결국 평범하게 생긴, 그래도 실용성은 있어 보이는 검은 가방이 새로운 친구로서 동행을 시작하게 되었다.
값을 치르고 매장의 코너를 지나쳐 나올 때만 하더라도 내심 최종 결정에서 탈락시킨 2등 후보의 매력에 대한 미련이 남아 있었던 것은 또렷이 기억한다. 그러나 매장을 나온 시점에 좋든 싫든 새 친구와 함께 해야 한다는 사실은 정해져 있었다. 그 날 저녁 수학 참고서를 가방에 넣어 월요일 일정을 준비했을 때, 내일은 무언가 다른 일이 생길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이 들었다.
물론 가방이 바뀌었다고 일상이 바뀌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학생의 일상은 수업시간과 등하교 시간에 의해 규정된 엄청난 관성이 있지 않은가. 지난 주 월요일에 있었던 일이 다시 그 주 월요일에 재현되듯이 하루가 지나갔고, 그 다음 날 역시 비슷한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친한 급우 몇 명이 등 뒤에 일어난 변화를 알아차려 주었지만 그것 외에 바뀐 것은 없었다.
하루 위에 하루가 겹쳐지고, 또 그 위에 하루가 겹쳐지는 무덤덤한 일상 속에서 어느덧 새 친구는 곁에 있는 것이 당연한 존재가 되었다. 묵묵히 자신의 품 안에 책과 노트를 담아 어깨에 두 팔을 늘어뜨린 채로 늘 곁에 있어주는 것이 그의 일이었다. 같은 일이 반복되면 불만을 터뜨릴 법도 했지만 그는 날씨가 덥든 춥든 불평 한 마디 내뱉는 일이 없었다. 말을 알아듣기를 기대할 수는 없었어도 항상 고마움을 느끼고 있었다.
함께 나이를 먹어갔지만 친구는 피부가 상하거나 할 일이 없었기에 그 점을 부러워한 적도 있었다. 겉모습이 변하지 않았으니 그가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직관적으로 알기는 어려웠다. 비가 오는 날 우산으로도 등 뒤가 넉넉하게 가려지지 않아 가방 안에 든 책이 젖을 때면, 어린 마음에 주의를 충분히 기울이지 않은 자신보다 빗방울로부터 책을 최선을 다해 보호하려 했던 친구에게 더욱 짜증을 부리기도 했다.
고등학생이 되어서도 벗을 잘못 만난 친구의 고난이 이어졌다. 그가 감당해야 할 책의 무게는 점점 무거워지기만 했으며, 급우의 수가 늘어나면서 책상 옆에 걸려 있을 때 발에 차이는 일도 늘어났다. 무려 3년이나 연중 무휴로 지냈으나 일상에 무뎌진 고교생은 유감스럽게도 친구에게 고마움을 표하는 법을 잊은 것 같은 태도를 보였다. 시험 스트레스로 눈에 보이는 게 없었다는 구차한 한 마디 외에는 변명의 여지도 없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살면서 가장 느리게 지나간다고 느꼈던 고3으로서의 한 해는, 대학교 최종 합격 통지가 날아온 순간 사실상 끝이 났다. 수험생은 학수고대하던 캠퍼스 라이프가 가까이 왔음에 기뻐했고, 비록 입 밖으로 내진 않았지만 친구는 당분간 무거운 짐을 들어야 할 일이 없음에 기뻐했을 것이다. 그렇게 3개월 간의 휴식을 가지고 우리는 첫 서울 생활을 하기 위해 서울행 열차에 몸을 실었다.
하지만 우리 둘 모두 기대와는 다른 삶을 목도해야 했다. 고등학교 교과서 두 개를 합친 것보다 무거운 전공 도서 한 권의 무게는 새내기와 그 친구의 삶을 무겁게 짓눌렀다. 종이를 가득 메운 영어를 이해하고 연습문제를 풀어 제출해야 했던 대학생은 이전과 차원이 다른 난이도에 고통을 받았고, 곳곳의 강의실과 열람실을 함께 다니느라 두꺼운 책을 몇 권이고 짊어져야 했던 친구 역시 겪어본 적 없는 수준의 무게를 감당해야 했다.
시간이 지나 일상을 함께 하는 책이 전공 서적에서 공무원 수험서로 바뀌고, 그것이 다시 전공 서적으로 바뀌는 동안에도 그는 변함없이 동고동락하는 존재였다. 친구가 짊어질 중량은 대체로 다가올 시험의 중요도, 중압감의 크기와 닮아 있었다. 상황이 어떻든 우리는 당연한 듯이 함께하며 어제와 같은 오늘을 걸어갔고, 그 덕분인지 다행히 여러 번의 시험에서 크게 탈이 난 적이 없었다.
쏜살같이 지나가는 시간의 흐름에 같이 몸을 맡긴 우리는 어느새 첫 만남으로부터 10년이 지난 2022년에 도달했다. 중학교부터 시작해 무려 세 무대를 함께 올라선 친구의 살갗에 변화가 생겼다는 것을 처음 알아차린 것이 올봄이었다. 트러블 하나 없었던 그 표면에 미세한 균열이 생겼다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하지만 시험기간에 갇힌 이는 변화의 중요성을 간과하는 잘못을 저질러버렸다.
여느 날과 같이 열람실로 향하여 지정한 좌석에 앉아 전공 책을 꺼내려던 때에, 그동안 애써 부인해 왔던 내면의 무심함과 문제 해결을 뒤로 미루는 행위의 무책임함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순간이 찾아왔다. 주의를 집중하지 않아도 눈에 확연히 보일 정도로 균열이 커진 것이었다. 함께한 시간이 벌써 10년이 되었음을, 그리고 10년 동안 그가 감당해온 고생의 크기를 그때만큼 절절히 알아차렸던 때가 없었다.
시험기간을 뒤로 하고 본가로 내려온 자식의 모습을 본 부모님은 10년 전과는 많이 달라진 얼굴을 한 친구를 보고 상당히 놀라워하셨다. 심하게 초췌해진 그를 업은 채로 캠퍼스 이곳저곳을 돌아다닌 아들의 모습을 상상하면서 충격을 받으신 것도 같았다. 내구성과 소위 가성비를 중요시하는 어른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에도, 이제 그는 나와 더 동행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판단이 섰던 듯했다.
일을 하면서 통장에 적힌 숫자가 제법 커졌다는 사실은 애석하게도 그와의 이별을 재촉했다. 10년 전 빠듯하기만 한 예산제약에 부딪혀 파트너를 최대한 신중히 선택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고뇌했던 중학생은 이미 오래 전에 사라지고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 곁에 있는 오래된 친구를 만나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던 이는, 기묘하게도 10년 만에 작별을 위해 같은 매장으로 향했다.
깊은 고민 끝에 앞으로 오랜 시간을 함께할 새 친구를 발견했다. 백팩은 아니었지만 그 역시 공교롭게도 검은 가방이었다. 그토록 긴 시간을 함께하는 동안 오랜 친구의 잔상이 인상에 각인되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직원 분 앞으로 가서 새 파트너와 함께할 권리를 얻게 된 때, 맞이한 친구보다 보내줄 친구 생각이 먼저 떠오른 것 역시 그 때문이었을 것이다.
집으로 돌아온 뒤 옛 친구는 필통과 노트를 새 친구에게 넘겨주었다. 10년 만에 모든 것을 내려놓은 그의 얼굴에는 후련함과 애수가 안타까운 비율로 섞여 있었다. 그리고 이쪽에서는 아쉬움과 죄책감이 동일한 비율로 섞인 표정을 내보였다. 좀 더 배려를 해주었다면 그와 학교 생활을 함께 마쳤을 것이라는 후회가 밀려들어왔다. 존재 자체에 감사를 표할 방법을 몰랐던 어린 시절의 잘못을 뉘우치며 그의 은퇴식을 성심껏 치러주었다.
그가 떠난 자리엔 비슷한 피부색을 가진 새 친구가 앉아 있다. 의식적 혹은 무의식적으로 그를 떠올리곤 한다. 때로는 새 친구보다 더 많은 책도 거뜬히 들어주었다는 이유로, 때로는 가방을 늘 같은 곳에 두는 습관이 남아있음을 이유로 그를 추억하는 것이다. 헤어짐의 여운이 남기는 파장은 과연, 함께한 시간의 길이와 비례했다.
늘 그래 왔듯이 매정한 시간은 기억에 조금씩 풍화작용을 가할 터이다. 옛 벗과 함께한 시간만큼 또 다시 시간이 흐르면 작별의 여운도 점점 빛이 바래가고 희미해질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압박에 저항하는 것이 친구된 도리이지 않겠는가? 그가 빗속에서 책을 지켜주려 애썼듯이, 세월의 흐름 속에서 값진 추억을 지키려 애쓰며 떠나간 그의 좋은 벗으로 남아 있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