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진아 너 소개팅 받을래?’
점심시간이 지나고 다시 업무를 하며 막 식곤증이 올 때쯤 혜수에게 메신저가 왔다.
‘뭐 하는 사람인데?’
‘내 초등학교 동창인데 경기도 하남에 있는 소방관에서 근무해. 나도 10여 년 동안 안 보긴 했는데 SNS으로 그동안 꾸준히 연락해 왔고, 얘가 또 귀엽고 아담한 스타일을 좋아한대’
혜수는 작년 여름쯤 러닝 크루 소모님에서 만난 동갑내기 친구이다.
같은 동네이기도 하고 서로 직장도 가까웠고 둘 다 고양이를 키우는 등 공통점이 많아 우리는 빠른 시일 내로 친해졌다.
소개받을 남자분의 사진을 확인하니 나름 깔끔한 인상에 호감이 가는 얼굴이었다. 그리고 알겠다는 나의 의사가 끝나기도 무섭게 혜수는 바로 소개팅 남자와 단톡방을 팠다.
우리 셋은 만나는 장소와 시간을 정하며 신나게 이야기를 나누던 중 혜수는 질문을 던졌다.
‘얘들아 그럼 우리 2차랑 3차는 어디로 갈까?’
순간 내 머릿속에 물음표들이 생겼다. 소개팅 자리인데 왜 주선자가 3차까지 동행하는 거지.
그래 본인도 오랫동안 안 봤다고 했으니 소개팅 남자랑도 대화하고 싶을 거야.
그래도 그렇지. 중간에 눈치껏 빠져야 하는 거 아닌가.
나와 동갑이었던 소개팅 남자도 메신저에서 별다른 반응이 없었기에 내가 예민한 건가 싶은 생각과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소개팅이 하루 남은 날이었다.
혜수는 나에게 내일 어떤 옷을 입을 거냐며 총 3장의 다른 옷 스타일 사진을 보내달라고 했다.
나는 세심하게 신경 써주는 주선자인 친구를 보며 내 소개팅이 정말 잘되기를 바라는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투피스를 입고 나오라며 나의 의상까지 정해준 혜수는 나에게 사진 4장을 보냈다.
각기 다른 색깔의 다양한 의상 사진들이었는데 내일 본인이 입고 나갈 옷을 정해달라는 이야기였다. 나보다 더 들떠 보이는 혜수를 보며 평소에도 워낙 외향적인 친구인지라 사람들과의 약속에 설레나 보다고 생각했다.
결국 혜수는 무릎 위가 보이는 다소 짧은 검은색 치마를 골랐다. 그리고 2차와 3차의 장소는 본인이 정했다며 신논현역에 위치한 이자카야 위치를 단톡방에 공유했다.
전신거울을 보며 옷매무새를 다듬는 나의 모습을 옆에서 조용히 바라보던 여동생이 물었다.
“이게 얼마 만의 소개팅이야? 근데 왜 이렇게 표정이 뾰로통해있어?"
나는 여동생의 질문에 그동안 찝찝했던 마음을 털어놓았다.
이야기를 마친 나에게 여동생은 황당해하는 표정을 지으며 말을 덧붙였다.
“언니 아무리 좋은 게 좋은 거라지만, 주선자가 그 소개팅남에게 관심이 있어 보이는데 아무래도 좀 이상해. 거기 나가지 마.”
여동생의 이야기를 듣고 그동안 나의 혼란스럽고 찝찝했던 마음이 정리가 되었다.
그리고 용기를 내어 혜수에게 메신저를 보냈다.
‘혜수야 아무래도 나 소개팅 안 나는 게 맞을 것 같아. 너희 둘이 안 본 지도 오래됐다고 하니 너희 둘만 보는 게 맞는 것 같아. 네가 끝까지 자리같이 해주는 것도 이해가 안 가고.’
그리고 한참 뒤에 혜수에게 답장이 왔다.
‘난 그런 의도가 아니었는데 기분이 나빴다면 미안해. 그럼 내일은 우리 둘끼리 볼 테니 다음에 또 날 잡아서 셋이 보자.’
나는 혜수의 답장을 읽고 나서도 한참이나 핸드폰 화면을 바라보았다.
다음날 나는 소개팅 남자분에게도 두 분이서 좋은 시간을 보내라며 메신저를 보냈다.
그리고 같이 셋이서 봤으면 좋았을 텐데 아쉽다는 소개팅 남자분의 답장을 보고 나는 답장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오후 11시쯤이었을까. 집 거실 소파에 누워 티브이를 시청하고 있었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혜수였다. 나는 반갑지 않은 마음이 들어 무음으로 바꾸고 휴대폰을 뒤집어 놓았다.
시간이 지나고 휴대폰을 확인하니 혜수에게 메신저가 와있었다.
‘영진아 나 그 친구랑 밥 먹고 이자카야 갔다가 집으로 가는 길이야. 너 아직도 화 안 풀린 거지? 전화 좀 받아봐. 대화 좀 나누자.’
나는 혜수의 메신저를 보고 차단 버튼을 찾아 눌렀다.
그 이후로 나는 러닝 크루 모임을 탈퇴했고 혜수와 우리 집은 도보 15분 거리임에도 불구하고
한 번도 그 친구와 우연히라도 마주치지 않았다.
지금쯤 뭐하고 살라나. 잘 살고 있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