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주 전쯤에 있었던 일이다. 나의 반려견 팝콘이의 건강검진이 있는 날이었다. 전날 금식을 시키고 오전 일찍 동물 병원을 방문하여 주치의 선생님에게 잘 부탁드린다는 인사와 함께 병원 문을 나섰다. 대략 2-3시간이 걸린다는 이야기에 집 앞 스타벅스에서 독서를 하며 시간을 때우다가 팝콘이를 데리러 가면 되겠다는 생각으로 따뜻한 바닐라 라테를 시키고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리고 40분 정도가 지났을 무렵 동물 병원에서 전화 2통이 와있었다. 다시 전화를 걸어보니 팝콘이의 심장소리에서 색색거리는 소리가 들리니 오늘 마취는 불가능할 것 같고 큰 병원으로 옮겨 심장검사를 해야 될 것 같다는 내용이었다. "네 알겠습니다." 통화를 끊고 난 후 차분한 나의 대답과는 다르게 나의 심장은 빠르게 요동치고 있었다.
점심시간이 지나고 나서 방문하라는 말에 30분을 더 카페에서 기다렸다. 그리고 그 30분이라는 시간 동안 나는 두려움 속에 있었다. '심장병이라니 너무나도 건강한 아이인데, 죽게 되면 어떡하지. 나는 우리 아이 없으면 안 되는데' 생각을 점점 하게 될수록 끔찍하고 아찔해졌다. 점심시간이 지나고 급한 발걸음으로 동물 병원으로 향하였다.
주치의는 심장 단계를 설명하며 최악의 상황에서는 폐수종과 사망까지 이를 수 있다고 하였다. 이미 슬개골과 방광도 살짝 안 좋은 상태였기에 심장이라는 부위는생각지도 못한 날벼락을 맞은 기분이었다. 심장병의 원인을 곰곰이 혼자 생각하다가 내가 입을 열었다. "선생님 산책할 때 저희 아이가 저를 지켜주려는 마음이 강해서 매우 짖고 평소에 흥분을 자주 하는 편인데 이것도 하나의 원인이 될 수 있나요?" 그러자 의사는 "그럼요 앞으로 최대한 흥분하는 상황을 만들지 않도록 해주시고 격한 산책도 피해주세요"라고 말하였다.
그러자 괜히 나 때문에 병이 더 빨리 와서 더 아픈 게 아닐까라는 죄책감이 올라왔다. 진료가 끝나고 감사하다는 인사와 함께 계산을 하려던 찰나에 인포에 있는 간호사와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그러다 손에 땀이 나며 울컥 눈물이 나오려는 것을 간신히 참으며 입을 열었다 "선생님 저는 팝콘이 없으면 진짜 안돼요. 남들이 보기에는 유별나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저는 정말 얘밖에 없어요. 저의 전부이자 저의 우주에요. 힘겹게 처음 서울살이 시작하고 의지할 곳 하나 없을 때부터 지금까지 9년 동안 저와 단둘이 지내면서 우리 아이가 없다는 생각을 하니 끔찍해요." 나는 계속 빠르게 두근거리는 심장을 쓸어내리며 말을 마쳤다. 그러자 간호사는안타까운 표정으로 "그럼요. 보호자님이 팝콘이 많이 아끼는 거 저희도 다 알죠"
집으로 돌아온 후 바로 큰 병원으로 전화를 걸어 내일 오전 시간으로 심장초음파 검사를 예약하였다.
그리고 잠이 들기 전까지 계속 심란한 마음을 스스로 달래며 '별일 아닐 거야'라고 주문을 외웠다.
그리고 침대 이불 속에 누워있는 아이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팝콘아 엄마가 미안해"
다음날 심장초음파 결과는 다행히도 B1 단계라서 앞으로 관리가 매우 중요하니 심장 영양제를 먹으며 정기적인 초음파 검사가 필요하다고 했다. 여기서 더 악화되면 B2 단계부터는 처방약을 먹어야 한다고 했다. "너무걱정했는데 정말 감사합니다. 너무 감사합니다" 나는 주치의에게 여러 번 감사의 인사를 하며 병원 문을 나섰다. '앞으로 쇼핑을 줄이고 나에 대한 지출을 줄여서 혹시 모를 팝콘이 수술비 적금을 들어야겠다'라고 다짐하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해는 져있었고 다소 흐린 회색빛 구름들이 보였다. 꼭 어제의 내 마음 같았다.
그리고 며칠 후 아이의 스케일링이 끝나고 마취로 인해비틀거리며 걸어오는 팝콘이를 바라보니 마음이 아팠다. 저 작은 아이가 잘 견뎌내어 기특하다는 마음과 함께. 그리고 차라리 내가 대신 아팠으면 좋겠고 나의 수명이라도 나눠주고 싶었다.
문득 이러한 생각이 들었다. 아 이런 게 사랑인 걸까. 대가 없이 내 것을 주어도 아깝지 않은 것. 그리고 이미 지나갔지만 내가 정말 사랑했던 연인이 떠올랐다. 아 내가 그 사람을 정말 사랑했었구나. 그리고 내가 나중에 결혼을 해서 내 아이를 낳으면 이런 마음이겠구나. 그럼 우리 엄마도 이런 마음이었을 텐데 왜 나를 미워하셨을까. 그래 어찌 됐든 사랑하는 대상이 있다는 것은, 사랑을 한다는 것은 엄청난 축복이며 아름다운 것이구나. 그러나 그 행복에도 대가가 따르겠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계속 사랑을 해야하고 사랑이 제일 중요하며 사랑 없이는 살 수 없구나.
우리는 각자 사랑하는 대상이 다르고 인생의 가치도 다르다. 누군가에게는 인생의 가치가 명예와 부일 수도 있고 제일 사랑하는 대상이 가족 또는 연인일 수도 있다. 그리고 내가 제일 사랑하는 대상과 가치는 무엇인가 자문을 한다면 난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나의 반려견 팝콘이고 평온하고 소박하게 사는 것이라고 말할 것이다. 나는 청소년기 때부터 가족들과 사이가 좋지 않았고 지금까지도 부모님에게 큰 애정이 없는 편이다. 그렇다고 해서 친구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그런지 팝콘이는 나의 전부이자 나의 우주이다.
우리는 누구나 다 죽는다. 그리고 나는 죽음을 늘 생각한다. 10년 전 아버지를 떠나보낼 때에도 어떠한 원자 형태로든 아버지가 내 곁에 남아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앞으로 친구들과 가족들이 그리고 내가 세상을 떠날 때도 우리는 잠깐 있다가 가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대체로 죽음에 대해 덤덤한 편이다. 그리고 내가 천국의 계단에 도착했을 때 팝콘이가 꼬리를 흔들며 나를 마중 나올 거라는 상상을 하거나 사랑하는 연인과 이별했을 때에도 “우리는 다음 생에 또 만날 거잖아”라고 생각하며 나만의 위로 방식으로 마음을 달랬다. 그러나 머리로는 다르게 내가 사랑하는 대상과 이별하고 느껴지는 상실감은 무척이나 큰 고통이 따른다.
죽음은 늘 나를 깨어있게 만들어준다. 그래서 옆에 있는 가족들이 더 소중하게 느껴지고 사랑의 표현을 아끼지 말아야겠다는 다짐과 함께 감사함이 더 커지는 것 같다.
우리 모두 사랑하는 이들과 오랫동안 건강하게 보내기를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