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시화, <내가 생각한 인생이 아니야> 2023,수오서재
이 책을 완독한지 3달이 다 되어가는 것 같은데 지금에서야 글을 쓰기 시작한다. 써야지 써야지 하면서도 책상 독서대에 놓여있는 이 책을 바라보기만 했다. 게으르고 나태한 나는 늘 시간이 없다는 핑계만 대면서.
나는 이 책의 모든 문장에 밑줄을 긋고 싶었다. 그리고 정독하는 내내 감탄이 새어 나왔다. 아 류시화라는 사람은 정말 멋진 사람이구나. 오늘부터 닮고 싶은 작가가 생겼다는 기쁨과 함께 류시화가 쓴 책을 전부 다 읽고 싶어졌다. 지금부터 내가 인상 깊었던 문장과 그의 따른 나의 생각을 간략하게 적어보겠다. [ ]는 책의 인용구 표시이다.
[인생의 가장 큰 선물은 다른 인생-당신과 마찬가지로, 이 인생은 내가 생각한 인생이 아니다. 내가 생각한 세상이 아니며, 내가 상상한 사랑이 아니다. 지구별은 단순히 나의 기대와 거리가 먼 정도가 아니라, 좌표 계산이 어긋나 엉뚱한 행성에 불시착한 기분이 들 정도이다. 삶은 발견하는 것이다. 자신이 기대한 것이 아니라 기대하지 않았던 것을. 인생이 주는 가장 큰 선물은 '다른 인생'이다. 그 다른 인생의 기쁨은 부스러기로 즐기는 것이 아니다.]
내가 상상한 사랑이라기에는 아픔이 너무 크며 내가 생각한 신이라기에는 때로 인간에게 너무 가혹하다. 그러나 이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모든 일들이 나의 제한된 상상을 벗어나 훨씬 큰 그림 속에서 펼쳐지고 있다. 인생은 내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 그래서 인생은 오히려 재밌는 것이다. 다만 자신의 관념과 기준 속에 갇혀 있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나만의 관념대로 바라보지 않고 같은 상황을 어떻게 내가 받아들이는지가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어릴 적 중이염에 시달리고 힘든 고시원 생활도 해보고 연극배우도 하다가 포기해 보고 사기도 당해본 힘든 경험들이 매우 소중한 가치로 느껴진다. 어쩌면 플랜 a는 나의 계획이고 플랜 b는 신의 계획이었다. 신은 길을 보여주기 위해서 길을 잃게 만들며 내게 필요한 것들은 반드시 오게 되어있다. 만약 오지 않는다면 내게 오지 않아도 상관없는 것들이다.
[자신이 혼자이며 이 세계 속 고독한 존재라는 생각은 착각이다. 어떤 영역에서든 우리를 지원하는 소울 그룹이 존재한다는 것이 나의 경험이며 믿음이다. 그들 중에는 육체를 가진 존재도 있고 영적으로만 존재하는 이들도 있다. 어떤 전통에서는 그들의 '수호천사'라고 부르고 '백색 형제단'이라고도 부른다.]
가끔 주눅이 들고 아무도 내 편이 없다고 생각이 들며 나 혼자라고 느껴질 때가 있다. 그때마다 내가 외우는 나만의 주문이 있다. '세상은 내 편이다. 사람들은 나를 도와준다 난 혼자가 아니다'라고. 하나의 존재는 단순한 하나의 존재가 아니라 여러 존재가 연결된 것이다. 하나의 정신 역시 여러 정신이 하나로 모인 것을 의미한다. 즉 세상은 다 연결되어 있다. 내가 친구에게 베푼 것이 돌아오지 않고 배신을 당했다고 생각이 들더라도 내가 베푼 게 꼭 그 사람에게 받는 것이 아니라 기회든 사람이든 어떠한 형태로든 다시 돌아온다고 생각한다. 오늘부터 주문을 외쳐보자 세상은 내 편이라고.
["내가 가장 부러워하는 사람은 '세상의 모든 것에서 아름다움을 보는 사람'입니다." 그렇지 않은가. 모든 것과 모든 곳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지 못하면 우리는 아직 온전히 눈을 뜨지 못한 것이다.(생략) 세상의 아름다움을 발견할 때마다 자신의 아름다움도 동시에 발견한다. 삶이 힘든 시기일수록 마음속에 아름다운 어떤 것을 품고 다녀야 한다. 그 아름다움이 우리를 구원한다. (생략) 상처를 어떻게 치유하는가가 여행의 방향을 결정한다. 예술가에게 상처를 입혀 보라는 말이 있다. 그러면 당신은 당신이 가한 상처가 걸작품으로 탄생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부서진 크레용도 여전히 색을 가지고 있다. 그 부서진 크레용으로 그림을 그릴 수 있다. (생략) 페르시아의 시인이 노래했듯이, 우리는 삶을 악몽으로 바꿀 모든 요소들을 가지고 있다. 그 요소들을 섞지 말라. 또한 우리는 우리의 존재를 기쁨으로 바꿀 모든 요소를 지니고 있다. 그 요소들을 섞으면 된다.]
삶에서 감탄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지나가는 길에 우연히 본 꽃에도 이쁘다고 감탄을 하고 부드러운 빵을 먹을 때도 맛있다고 감탄을 하며 사랑하는 사람과 시간을 보내고 있는 현재에도 감탄을 하고 퇴근길 잿빛의 하늘에도 감탄을 하는 사람이라면 모든 것에 감사함을 느끼는 사람일 것이다. 그리고 내가 그동안 피해의식을 가지고 나의 인생을 비극으로 바라보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인생을 하나의 코미디 또는 연극이라고 생각해 보자. 그리고 나 자신을 기쁜 장면을 찍고 있는 배우라고 생각해 보자. 그러면 인생이 조금은 가벼워질 것이다.
['네가 사랑하는 것은 모두 언젠가는 사라져 버릴지도 몰라. 하지만 그것들은 반드시 다른 형태의 사랑으로 돌아올 거야' (생략) 창작에 몰두하는 것 못지않게 다른 인간과 연결되는 것. 다른 영혼에게 관심을 기울이는 것 역시 중요한 일이다. 민족 학자이며 정신분석학자인 클라리사 핑콜라 에스테스는 말한다. "우리의 임무는 세상 전체를 한꺼번에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손이 닿을 수 있는 부분부터 손을 뻗어 나가는 것이다. 한 영혼이 슬퍼하는 다른 영혼을 돕기 위해 하는 작고 조용한 일은 큰 의미를 갖는다."]
십여 년 전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에 난 이렇게 생각했다. 아버지가 나비던 나무던 하늘의 별이던 어떠한 형태로든 내 주변에 남아있을 것이라고. 그리고 언젠간 나도 가족들도 내 친구들도 반려견 팝콘이가 세상을 떠날 때 우리는 원자의 에너지이기 때문에 꼭 다시 만날 거라고. 내가 늘 하는 기도 내용은 같다. 제가 지혜로운 사람을 될 수 있도록 해주시고 기부와 봉사를 하며 사랑을 많이 베풀 수 있도록 해달라고 말이다. 결국 삶에는 사랑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사람을 통해 상처받지만 결국엔 사람을 통해 상처를 치유받으며 모두 나약한 존재이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여행의 안내자이며 모두가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 그게 꼭 거창한 기부와 봉사가 아니더라도 이웃들에게 친절을 베풀고 미소로 대하는 것 또한 사랑을 베푸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게 관심을 기울이고 사랑을 해야 한다.
['최고의 시간이자 최악의 시간이었다. 지혜의 시대이자 어리석음의 시대였다. 믿음의 세월이자 의심의 세월이었다." (생략) 지금 '절벽 끝'에 몰려 있다고 불행한 것만은 아니다. 그것은 우리를 갑자기 절실하게 만든다. (생략) 무엇인가 절실하게 갈구한 모든 순간이 날개였다. 그 절박함과 간절함이 내게는 날개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에게 결핍은 나의 원동력이자 동기부여였다. 그리고 고통 속에서 나의 내면이 단단해졌고 상처를 직면하게 하는 일련의 과정이었다. 결핍은 나에게 도전할 수 있는 힘을 주었다. 인생사 새옹지마라고 했던가. 나를 힘들게 했던 사람들과 경험들에게 "그동안 고마웠습니다"라고 말하고 싶다. 더불어 마음이 불안한건 실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꿈이 너무 간절하기 때문이다라는 명언과 함께.
[모든 괴로움의 원인은 자신의 생각을 사실로 믿기 때문이다. (생략)
고통받는 사람에게 그 고통이 생각이 지어낸 허상임을 알아 차라기만 하면 기쁨으로 가득하게 될 것이라고 함부로 충고해서는 안 된다.]
칼 융이 말했던가. 우리는 아무것도 치유받지 못한다. 그저 놓아주는 것뿐이라고. 가끔 이러한 고통과 상실을 왜 나에게 줬을까. 어떠한 교훈이 있으셔서 주셨겠지라며 의미를 찾아본다. 내게 필요한 것들은 반드시 온다. 만약 오지 않는다면 내게 오지 않아도 상관없는 것들이라고 생각하며. 오늘도 나는 느린 회복 길을 걸어간다.
[비현실적인 것이 왜 문제인가? 모든 사람이 현실적이어야 하는가? 그런 세상은 숨 막히지 않겠는가? 현실을 제대로 보려면 현실 밖으로 떠나 봐야 한다." (생략) 세상에는 사실보다 믿음이 앞서는 사람이 많다. 어떤 것이 사실이기를 바라기 때문에 그것이 사실이라고 믿는 사람들이다.]
친구들이 주식 이야기를 할 때 나는 재테크에 관심이 없고 판타지 소설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지나가는 개미를 보며 "개미는 무슨 생각을 할까?"라고 엉뚱한 질문을 던지기도 하고 우리가 사는 세상이 어쩌면 허상이지는 않을까라는 상상도 한다. 그리고 감성적인 내 모습에 오글거린다고 표현하는 사람도 종종 있다. 그럴 때마다 내 주변 사람들은 내게 현실적이게 살라고 충고를 하거나 세상 물정 몰라 사기를 잘 당할 것 같다고 말한다. 그러면 나는 주눅이 들었고 나에게 정말 문제점이 있는지 자아성찰을 하였다. 소설가를 꿈꾸는 사람에게 상상력은 매우 위대한 능력이라는 사실을 망각한 채. 나는 나의 단점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사실 장점이다는 사실과 저자의 말이 큰 위안이 되었다.
[대학 신입생 때 종교와 철학에 목말라하던 나는 (생략) 수도자의 삶을 살겠다는 꿈을 이루지 못한 나는 늘 그 세계가 그립고, 가톨릭 수사나 불교 승려나 원불교 출가자를 볼 때마다 마음에 잔물결이 일었다. 홀로 바랑을 메고 걸어가는 수도자를 보면 함께 걸어가고 싶었다.]
[내일은 내가 이 세상에 없을지도 모르지만 끝까지 가보는 것.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성실함이다. 어차피 나는 죽음에 패배하기 위해 태어났다. 하지만 아름답게 패배하는 것은 나에게 달린 일이다.]
어릴 적 나의 유치원 소풍 단체사진을 보면 나는 부처님처럼 가부좌 자세를 하고 있고 초등학생 때는 엄마에게 죽음과 천도재에 관한 책을 사달라고 졸랐다. 중학생 시절에는 학교 시험공부는 안 하고 영성과 죽음에 관한 서적들만 읽었다. 그래서 철학과를 희망하였고 어머니에게 원불교 성직자가 간절한 장래희망이라고 말하였다. 어머니도 그걸 매우 원하셨다. 지금 또한 원불교 교무님이나 신부님, 수녀님을 보면 동경하는 마음이 올라온다. 나와 닮은 모습이 있는 저자를 보니 내적 유대감이 생기며 반가웠다. 그리고 나는 늘 죽음을 생각한다. 메멘토 모리,네가 죽을 것을 기억하라. 죽음을 생각하면 감사함이 생기고 늘 나를 깨우치게 만들어준다. 우리는 언제 죽을지 모르며 내일 내가 이 세상에 없을지 몰라도 나는 계속해서 도전하며 살고 싶다.
[나는 불행한 인간이 아니다. 단지 불행한 순간이 있을 뿐이다. 나는 우는 인간이 아니다. 단지 우는 순간, 웃는 순간이 교차할 뿐이다. 불행한 사람, 화난 사람, 과거의 어떠한 사람이 나라는 고정된 생각은 스스로를 가두는 감옥이다.(생략) 나에게 다가오는 모든 순간이 나 자신이 된다.]
["생각대로 되지 않는 건 정말 좋은 일이야.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 일어나니까" (생략) 매일 '디행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을 찾는다.(생략) '기쁨 찾기 놀이'라고, (생략) 아무리 불행한 상황일지라도 기뻐할 무언가를 찾는 놀이이다. 기쁨 찾기 놀이는 억지로 지어낸 자기 위안이 아니라 삶을 전체적으로 보는 시각이다. (생략) 단호한 낙관주의는 행복에 없어서는 안되는 요소이다. 우리가 의식하든 의식하지 못하든 고난을 지탱하는 것은 기쁜 일을 발견하는 마음이다. (생략) 노래 부를 일이 없다고 많은 이들이 말한다. 새는 해답을 갖고 있어서 노래하는 것이 아니라 노래를 갖고 있기 때문에 노래하는 것이다. (생략) 동화가 필요한 순간이 바로 그때이다. '학자처럼 공부하고 동화의 주인공처럼 살라'는 말은 소중한 금언이다.]
그동안 나는 내 자신을 불쌍하다고 생각했으며 자기연민과 피해의식이 강한 사람이였다. 그리고 이 모든건 나의 관념이 만든 문제였다. 그래 정말 다행이다. 생각지도 못했던 일들이 나에게 생기고 내가 계획한 인생대로 흘러가지 않아서 참 다행이라고. 나는 매일 감사일기를 쓴다. 그리고 그 감사함이 큰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두 발이 있어서 걸을 수 있음에 감사하고 따뜻한 집과 이불이 있어서 감사하고 두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있음에 감사하며 마실 수 있는 물이 있음에 감사하다고 말이다. 우리 모두 감사함을 찾고 동화 속 주인공처럼 살아보자. 그리고 내가 그동안 나의 정신의 무게를 매우 무겁게 살아왔다는 사실을 자각했다. 세상은 체험하고 여행하러 온 것이라는 사실을 모른 채. 가볍고 즐겁게 인생을 체험하자. 그리고 기뻐하자. 우리가 서로 다투고 미워하기에는 우리의 여행은 짧다. 깃털의 가벼움이 아니라 새의 가벼움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