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 어머니는 지금까지 약 40여 년 동안 독실한 원불교 교도이십니다. 그래서 저는 유년기 시절부터 어머니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자랐습니다. 모태신앙인 저의 이름은 원불교에서 지어준 법명이며 저는 엄마 손을 잡고 꾸준히 교당을 다녔습니다. 그리고 원불교 성직자가 되어달라는 엄마의 꿈을 이뤄드리기 위해 원불교 학과를 진학하려던 중 저에게 사춘기가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그제야 제가 정말 원하는 꿈은 유치원교사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이 사실을 엄마에게 털어놓았습니다. 엄마는 제게 실망을 금치 못하셨고 그 이후로 저희 모녀사이는 멀어졌습니다. 그리고 저는 마침내 유아교사가 되었고 원불교 원광 유치원에서도 근무하고 원불교 청년 밴드부 보컬 활동도 병행하며 나름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작년 결혼을 약속한 남자친구와의 이별, 대인관계에서 오는 상처 그리고 금전적 사기까지 당해 무척이나 힘든 날들을 보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공황장애였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가슴이 조여오는 통증을 하루하루 느끼며 지내다 보니 신에게 매달려 무작정 기도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집 근처 성당을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수녀님에게 말하였습니다.
"안녕하세요 수녀님 제가 성당을 처음 왔는데 어떻게 하면 되나요? 앞으로 저도 여기서 기도할 수 있나요?"
수녀님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시며 친절하게 알려주셨습니다. 그리고 저는 예비신자 교리반에 들어가게 되었고 미사가 시작하기 전 홀로 고요히 기도하는 시간들이 저에게 큰 위안이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미리 계획해놓은 로마 여행 날이 다가왔고 저는 혼자서 운 좋게 바티칸까지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열흘이라는 여행 일정으로 인해 예비신자 교리반에 결석이 생겼고 주임 신부님은 올해는 포기하고 다음에 있는 예비 신자반을 다시 등록하라고 하셨습니다. 이 소식을 전달해 주신 수녀님과 통화를 끊고 저는 화가 나고 속상했습니다.
"결석은 보충수업으로 때우면 되거나 숙제를 내주시면 열심히 할 자신 있는데 나보고 다시 7개월을 기다리라고? 난 당장 세례를 받고 싶은데 어느 세월에 기다리라는거야 정말"
그리고 저는 우연히 성당에서 만난 신자분에게 속상한 마음에 하소연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분은 저에게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그것 또한 하느님의 뜻이겠지요. 그래도 젊은 청년이 혼자서 성당 열심히 다니는 모습이 너무 이쁘네요. 퇴근하고 오신 것 같은데 저희 딸은 제가 가자고 해서 안 가요"
따뜻한 미소를 보이시며 위로해 주신 그 신자분의 말 한마디가 저의 속상한 마음을 녹여주었습니다.
그런데 정말 생각해 보니 바티칸 여행으로 인해 세례가 늦어진 덕분에 저는 25년 만에 돌아온다는 희년에 세례명을 받을 수 있는 행운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세례를 받은 그날은 저에게 신기하고도 평생 한 번뿐인 매우 소중한 경험이었습니다. 신부님은 저의 이마에 성유를 발라주셨고 성수를 내려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 대모님과의 소중한 인연도 이어주셨고 그동안 고생해 주신 봉사자분들에게도 감사하였습니다. 신부님과 수녀님 그리고 7개월 동안 함께 수업을 들은 예비신자분들과 함께 단체사진을 찍으며 축복과 기쁨이 가득한 순간을 함께 하였습니다. 저는 비로소 오늘부터 옛 삶의 저는 완전히 죽고 하느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난 것입니다. 그리고 세례명 잔다르크처럼 용감하고 정의롭게 인생을 살아가야겠다는 다짐도 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제 인생에 제가 하느님을 믿을 것이라고는 전혀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심지어 7개월 동안 교리교육을 받는 과정에서 포기하고 싶은 마음도 생겼습니다. 그리고 수녀님이 하시는 말씀을 듣고 겉으로는 수긍하는척하였지만 속으로는 '하느님이 정말 있을까? 아니 어떻게 홍해가 반으로 갈라지고 어떻게 부활을 하지? 처녀가 어떻게 잉태를 해?'라며 끊임없는 의구심과 불신으로 가득했습니다. 그리고 아직 저는 불교의 가치관이 남아있어서 사후세계는 천국과 지옥이 아닌 윤회가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조금 더 크기도 합니다. 그리고 길거리에서 하느님은 당신을 사랑한다며 전도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이해 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성경을 정독하는 저의 모습과 묵주기도를 하며 '아 하느님을 더 빨리 알았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라는 회한을 하는 저의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모든 예비신자 교육이 끝나면 마지막에 신부님과 일대일로 찰고라는 면담을 하는 시간을 가집니다. 신부님은 저를 보시며 다소 걱정되는 듯한 표정을 지으시며 입을 여셨습니다.
"집안이 전부 다 독실한 원불교 집안이시네요. 혼자서 천주교 신자여도 정말 괜찮으세요? 혹여나 어머님이 싫어하시지는 않으신가요?"
신부님의 물음에 저는 웃으며 말하였습니다.
"혹여 엄마가 알게 되어 실망하셔도 상관없어요. 종교의 자유가 있으니까요. 그리고 결국에 종교의 본질은 다 똑같지 않을까요. 제가 원불교를 다니던 성당을 다니던 제가 타인에게 봉사하고 기부하며 사회에 이바지하며 살아가고 싶은 신념만큼은 변함이 없으니까요."
누군가 저에게 '너 정말 하느님 믿어?'라고 묻는다면 ' 솔직히 아직은 잘 모르겠습니다'라고 답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건 기도할 때 늘 마지막에 제가 하느님을 생각하고 늘 가까이할 수 있도록 은총을 내려달라고 기도합니다.
어릴 적 저희 부모님은 잦은 부부 싸움을 하셨는데 그럴 때마다 5층에 사시는 할머니가 항상 내려오셔서 울고 있는 저희 언니들과 저를 안아주며 달래주셨습니다. 5층 할머니는 신앙생활을 매우 열심히 하시는 가톨릭 신자셨는데 늘 성호경을 긋는 모습이 신기하고 멋있어 보였습니다. 저는 친외가 할머니, 할아버지 모두 일찍 돌아가셔서 네 분 다 얼굴을 본 적이 없는데 5층 할머니가 우리 할머니였으면 좋겠다고 늘 생각하였습니다. 5층 할머니는 키가 매우 작으셨는데 마음만은 늘 온화하고 온유하신 분이셨습니다. 지금은 연세가 꽤 되셨을 텐데 건강하게 잘 지내고 계시는지 궁금합니다.
매주 미사를 드리러 갈 때마다 느끼는 경건하고 차분한 성당의 분위기는 한 주 동안 고되었던 저의 마음을 달래줍니다. 늘 온화하게 맞아주시는 수녀님, 그리고 성직자라는 꿈을 이루지 못해서 그런지 더 동경심이 드는 신부님, 묵주알의 촉감, 정결한 미사포, 엄숙한 오르간 소리, 나를 성찰하게 되는 기도문까지 모든 것이 좋습니다.
이번 주는 그동안 하고 싶어 했던 청년 성가대에 꼭 입단해야겠습니다. 청년들의 만남이 설레어지는 저녁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기도하면서 구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이미 그것을 받은 줄로 믿어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마르코복음 11장 24절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오늘도 무사히 하루를 마무리할 수 있음에 감사드립니다.
제가 지금처럼 늘 감사생활을 할 수 있도록 저에게 은혜를 내려주소서
제가 지은 죄를 생각하며 타인의 죄도 용서할 수 있도록 저에게 지혜를 내려주소서
저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제게 능력 주시는 자안에서 제가 용기 내어 할 수 있도록 해주소서
저의 계획과 하느님의 계획이 다를지라도 주님께 모든 것을 맡길 수 있도록 지혜를 내려주소서
하느님을 늘 생각하고 복음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간구합니다.
고난을 관철하고 약자들을 도우며 살아갈 수 있도록 은혜를 주소서
저를 애휼히 여겨주시고 화평의 여정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충만하고 감사생활을 할 수 있도록 저를 강복하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
항상 기뻐하라 쉬지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