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경민 단편 -2
죽은 사람의 계정으로 9,900원이 결제되었다는 알림이 떴다. 7월의 마지막 날이었다. 바닥에 널브러져 있던 언니의 휴대폰을 집어 올렸더니, 액정 위로 팝업창이 선명하게 떠 있었다.
[명상 앱 ‘숨’ 정기 구독이 결제되었습니다.]
살아 있는 사람에게나 필요한 것이 죽은 언니의 휴대폰 화면 위에 붙어있었다. 앱 이름부터 시작해서 마음에 드는 곳이 하나도 없었다. 화면에는 숨을 고르게 만든다느니, 번아웃에서 벗어나게 한다느니 하는 문구들이 줄줄이 적혀 있었다. 그 화면 한쪽 구석에는, 마지막으로 언니가 재생한 트랙 목록이 떠 있었다.
[오늘을 정리하는 명상 : 숲의 맑은 빗소리]
[내일을 준비하는 명상 : 깊은 밤의 바람 소리]
[깊은 수면을 유도하는 음악 : 장작 ASMR 1시간]
그리고 그 아래에, 회색으로 흐릿하게 처리된 문장 하나.
[오늘은 예정된 명상이 없습니다.]
퇴근 후에도, 밥 먹듯 야근을 하고 주말마다 일을 붙들던. 돈 아깝다며 커피 한 잔조차도, 사 먹지도 않던 인간이, 이런 쓸데없는 곳에 월에 9,900원씩이나 쓰고 있었다는 걸 생각하니 실소가 새어 나왔다. 밤마다 이런 앱에 접속해서 내일이란 걸 상상하고 있었다니. 언니는 도대체 어떤 내일을 상상했던 걸까. 그 와중에, 주인이 죽었는데도 서버에 등록된 카드는 주인의 부재를 모르고 기계적으로 돈을 지불하고 있었다. 숨이 끊긴 지 보름이 지났는데, 앱 속에서는 여전히 ‘오늘도 호흡을 정리해 볼까요?’ 같은 문구가 띄어지고 있었을 것을 생각하니, 속이 울렁거렸다.
언니의 죽음도 이 결제 문자만큼이나 건조하고 돌발적이었다. 언니의 사인은 급성 심정지였는데, 제 몸을 죽이고 있다는 것도 모르면서 과로를 멈추지 않았던 어쩌면 언니다운 사인이었다. 언니의 부검을 담당했던 의사는 차트를 넘기며 사무적인 목소리로 말했었다.
“요즘 젊은 분들에게 흔하지는 않지만, 종종 있는 일입니다. 과로가 누적되면 심장이 그냥 스위치 꺼지듯 멈추기도 해요. 이렇게밖에 말씀드리지 못해 정말 죄송하지만. 아마, 고통은 없었을 겁니다. 자는 듯이 갔을 테니까요.”
나는 그 말이 세상에서 가장 기만적인 위로라 같았다. 언니는 5평짜리 옥탑방 한구석, 얇은 요 위에 엎드려 누워있던 채로 발견됐다. 이틀 내내 연락이 되지 않아 내가 문을 따고 들어갔을 때, 이미 언니는 딱딱하게 굳어있었다. 야근과 주말 특근, 그리고 새벽 배송 아르바이트까지. 언니의 몸은 충전할 틈 없이 방전된 건전지처럼 완전히 닳아 있었다. 쉬고 싶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던 인간이, 그 한 번을 쉬지 않고 일하다 영원히 쉬어버리는 방식으로 멈춰 버렸다. 스스로 멈추는 법을 몰라 기어이 고장이 나버린 기계처럼, 언니는 그렇게 죽었다. 그날 가장 소름 끼쳤던 건, 죽은 언니의 머리맡에 놓여있던 바로 그 선풍기였다. 타이머 다이얼이 고장 난 낡은, 신일 선풍기 한 대. 그것만이 언니가 죽은 후에도 달달거리는 소음을 내며 돌아가고 있었다. 마치 언니가 마지막까지 내뱉지 못한 가쁜 숨을 대신 몰아쉬기라도 하듯이, 죽은 자의 머리카락을 살랑거리게 만들던 그 기계적인 성실함이 기분 나쁠 정도로 끔찍하게 느껴졌다. 나는 비명을 지르며 선풍기의 코드를 끌어 뽑았다. 그게 벌써 3주 전의 일이다.
나는 휴대폰을 내려놓고 고개를 들었다. 5평 남짓한 옥탑방이 내 시야에 들어왔다. 방은 마치 소화하지 못하고 위장에 남아 있는 찌꺼기처럼, 군데군데 뒤틀려 있었다. 나무 모양의 타일이 규칙적으로 붙어있는 바닥에는, 100리터짜리 종량제 봉투 다섯 개가 검은 비석처럼 솟아 있었다. 그 안에는 언니가 입던 옷, 낡은 이불, 유통기한 지난 화장품들이 꾸역꾸역 담겨 있었다. 그리고 그 검은 봉투들 사이에, 이질적인 은색 캐리어 하나가 웅크리고 있었다. 그것은 나의 껍데기이자, 내가 이곳에서 이방인이라는 증거물이었다.
“지연아, 힘들면 그냥 모텔 가서 자라. 돈 보내줄게.”
어제 엄마가 전화기 너머로 그렇게 말했다. 엄마는 내가 퇴근 후 틈틈이 언니의 방에 들러 유품을 정리하는 줄 안다. 엄마는 아직도, 내가 지방으로의 좌천이 싫어 3년간 다닌 회사에 사표를 던지고 도망쳤다는 사실을, 지금은 갈 곳이 없어 죽은 언니의 자취방에 숨어들었다는 사실을 꿈에도 모를 것이다. 나는 곰팡이가 핀 벽지에 등을 기대고 앉았다. 숨을 들이마실 때마다 눅눅한 공기가 폐 깊숙이 스며들었다. 나는 언니를 추모하러 온 게 아니었다. 내 실패를 들키지 않으려 도망쳐 온 것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도 결국 언니처럼 된 것 같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기 위해,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은신처인 죽은 사람의 방으로 숨어들었다. 월세 계약 기간이 남은 동안, 나는 합법적인 유령이었다. 죽은 언니의 짐을 정리한다는 명분 뒤에 숨어, 나는 내 인생의 정지를 유예하고 있었다.
“백지연 씨, 다음 달 인사 발령 알지? 이번에 지방 공장으로 가게 될 거야. 뭐야, 표정 왜 그래? 우리 회사의 심장이 어디야? 결국 공장이거든. 거기서 라인 돌아가는 거 직접 눈으로 보고, 사람들 부대끼면서 관리도 좀 해보고. 그게 다 나중에 지연 씨 커리어에 피가 되고 살이 되는 거야. 본사에서 서류만 만지작거리는 거? 그거 반쪽짜리 커리어야. 가서 좀 넓게 보고 와.”
팀장은 그걸 ‘기회’라고 불렀지만, 내 귀에는 ‘유배’로 들렸다. 나는 대꾸하는 대신 사원증을 책상 위에 올려두고 나왔다. 발을 헛디딘 사람처럼 아찔한 추락이었다. 그렇게 결국 도망쳐 도착한 곳이 고작 여기다. 언니가 평생을 맴돌다 증발해 버린 이 좁고 뜨거운 5평짜리 옥탑방. 언니처럼 살지 않겠다고, 넥타이를 매고 하이힐을 신고 그토록 발버둥 쳤는데. 결국 나는 언니가 죽어 나간 그 자리에 웅크리고 앉아 있다. 방 안에는 죽은 자의 곰팡내와 산 자의 땀 냄새가 섞여 눅눅했다. 나는 무릎 사이에 얼굴을 파묻었다. 분명 누구보다 치열하고 악착같이 살았다고 자부했다. 하지만 그 시간이 사무치게 한심해지는 순간, 눈가가 달아올랐다. 나는 눈물을 떨어뜨리고 싶지 않아 고개를 쳐들었다. 그때, 구석에 처박힌 신일 선풍기가 보였다. 오래된 플라스틱 특유의 누런 변색. 안전망 살 사이사이에 낀 회색 먼지 뭉치. 무엇보다 기괴한 것은 놈의 목이었다. 회전축이 부러져 고개를 가누지 못해 언니가 칭칭 감아놓았던 노란 테이프는 시간이 지나 접착제가 녹아내려 검은 콧물 같은 자국을 흘리며 너덜거리고 있었다. 그 모습이 마치, 목에 기브스를 한 환자 같기도 하고, 사고를 당해 뇌사 상태에 빠진 로봇 같기도 했다. 나는 놈과 눈이 마주쳤다고 느꼈다. 테이프로 억지로 고정된 선풍기의 머리는, 바닥에 쭈그리고 앉은 나를 정확히 내려다보는 각도로 꺾여 있었다. 놈의 대가리는 기묘하게 꺾여, 하필이면 내가 앉아 있는 구석을 정면으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기분 탓일까, 멈춰 있는 날개 틈으로 놈이 나를 감시하는 것 같았다. 언니가 아끼던 쌀독을 긁어먹으며 숨어든 주제에 신세 한탄이나 하며 징징대는 꼴이 우습냐고 비웃는 것 같았다. 나는 놈의 시선을 피해 등을 돌렸다. 하지만 등 뒤가 서늘한 것까진 막을 수 없었다.
“...더워.”
오후 1시. 옥탑방은 공기 자체가 끓고 있었다. 가만히 있어도 셔츠 등판이 땀으로 젖어 장판에 쩍하고 달라붙었다. 손만 뻗으면 선풍기 코드를 꽂을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놈을 깨우지 않았다. 전기가 흐르는 순간 놈이 뱉어낼 그 소리가 끔찍했다. 언니가 죽어있던 이틀 밤낮 동안, 시체 옆에서 홀로 신나게 불러대던 그 기계적인 콧노래를 다시 들을 자신이 없었다. 언니는 이 찜통 속에서 어떻게 버텼을까. 퇴근하고 돌아와 옷을 벗어 던지고, 저 선풍기 앞에 쭈그리고 앉아 있었겠지. 아스팔트 열기만 뿜어져 들어오는 창문 아래서, 돌아가지도 않는 선풍기 목을 어루만지면서, 막연한 내일 타령이나 해대며 말을 걸었을 것이다. 정적 속에서, 바깥의 소음이 거슬릴 정도로 방 안에 울려 퍼졌다. 창밖의 차들은 달리고 사람들은 앞으로 나아가는데, 이 사각의 옥탑방만 시간이 고여 썩어가고 있었다. 마치 저 선풍기 날개처럼. 죽어라 돌아가 봤자 앞으로 1센티도 나아가지 못하고, 제자리에서 먼지만 뒤집어쓰는 꼴. 그게 언니의 인생이었고, 지금 내 꼴이다. 나는 땀으로 끈적해진 손바닥을 바지에 문질러 닦았다. 이 불쾌한 점성이 마치 씻어도 씻어도 지워지지 않는 가난의 촉감 같았다. 이 정적 속에, 놈과 단둘이 있다가는 미쳐버릴 것 같았다. 나는 적어도 여기서 썩을 인간은 아니라고 믿고 싶었다. 그래서 더 화가 났다. 결국 언니가 죽은 자리에 앉아, 언니가 붙들고 살던 선풍기나 노려보고 있는 게 지금 나의 현실이라는 사실이.
그때, 갑작스럽게 위장이 비어있다는 소리가 들렸다. 꼬르륵- 이 비극적인 상황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눈치 없는 생존 신호였다. 적막을 찢는 그 소리가 우스워서, 나는 허탈하게 숨을 내쉬었다. 언니가 죽은 자리에서, 내 인생이 망한 이 시점에, 배가 고프다니. 나는, 바닥에 놓인 휴대폰을 집어 들고 뱅킹 앱을 켰다.
[잔액: 34,200원]
이번 달 생활비이자, 내 전 재산이었다. 지방 발령이 싫어 뛰쳐나왔지만, 고향으로 내려갈 수도 없었다. 서울에서 한번 짐을 싸서 내려가는 순간, 다시는 서울로 돌아오지 못할 것이라는 공포가, 내 발목을 움켜쥐었다. 하물며, 그 미련한 언니도 서울에서 버텨냈는데, 짐을 싸고 낙향하는 건, 내가 언니보다 더 패배자라고 인정하는 꼴 같았다. 그건 죽기보다도 싫었다. 나는 여기서 어떻게든 다시 시작해야 했다. 그러려면 그동안 버틸 돈이 필요했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방을 훑어보다가, 선풍기와 눈이 마주쳤다. 저 흉물스러운 녀석이, 순식간에 매물로 보였다.
“……닦아서 팔자.”
나는 중얼거렸다. 죽은 언니의 방에서 언니가 남긴 유품을 팔아 밥값을 마련한다는 사실이 처참했다. 하지만, 이 고철이라도 ‘작동 잘 됩니다.’라고 써 붙여 올리면, 운 좋으면 팔천 원 정도는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화장대 서랍에서 아세톤과 화장 솜을 꺼내 들었다. 마치 수술을 앞둔 의사처럼 선풍기 앞에 섰다. 상품 가치를 만들려면 먼저 목에 감긴 테이프를 제거해야 했다. 손톱으로 테이프 끝을 긁어냈다. 3년 묵은 접착제는 콧물처럼 질질 늘어지다 툭 끊어졌다. 그 불쾌한 소리와 함께, 3년 전 여름의 기억이 테이프 자국처럼 딸려 올라왔다.
대학을 막 졸업해 갈 곳이 없어 취업 준비 명목으로 언니 등골을 빼먹던 시절. 퇴근한 언니가 누가 버린 선풍기를 들고 집에 들어왔다.
“미쳤어? 누가 버린 걸 왜 주워 와? 언니 거지야?”
내가 악을 쓰자, 언니는 멋쩍게 웃으며 부러진 목에 테이프를 감았다.
“모터는 멀쩡해. 목만 고정하면 쓸 수 있어. 아깝잖아.”
언니의 손놀림은 익숙했고, 테이프 찢어지는 소리는 내 가난한 자존심을 긁어댔다. 그해 겨울 나는 취업하자마자, 다시는 이 구질구질한 옥탑방으로 돌아오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짐을 싸고 떠났다. 하지만, 3년이 지난 지금, 퇴직금 몇 푼을 쥔 백수가 되어 다시 이 선풍기 앞에 서 있었다. 달라진 건, 그때는 언니가 있었고 지금은 없다는 사실뿐이었다.
“지겨워, 진짜……”
나는 테이프 자리를 아세톤으로 문질렀다. 하지만 얼룩은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녹아내린 접착제가 아세톤과 섞이며 검은 젤리처럼 번졌다. 닦을수록 사라지기는커녕 옅고 넓게 퍼졌다. 언니가 남긴 가난의 점성이 내 손에, 내 삶에 스며드는 것 같았다. 문지르면 문지를수록 더 넓게 번지는 저 얼룩. 지워지지 않는 접착제처럼, 언니가 남긴 구질구질한 가난이 내 인생에 끈적하게 붙어있었다. 나는 홧김에 싱크대 밑에서 100리터짜리 종량제 봉투를 꺼내 거칠게 펼쳤다. 눈에 보이는 걸 마구 쓸어 담았다. 낡은 베개, 유통기한 지난 로션. 옷장 문을 벌컥 열자 후두둑, 옷더미 속에서 묵직한 옷걸이가 손에 잡혔다. 회색 기모 조끼였다. ‘(주)윤남테크 생산1팀 백지수’라는 자수가 촌스러운 파란 실로 박힌 근무복. 코를 가까이 대자, 섬유유연제로도 덮이지 않은 납 타는 냄새와 차가운 쇠 냄새가 스쳤다. 화가 치밀었다. 끝까지 저런 옷을 입고 땅만 보며 살다 간 언니가 밉고, 그 언니가 남긴 방 한구석에 처박힌 내 처지가 더 미웠다. 나는 조끼를 바닥에 내던졌다. 발로 한번 짓밟아 뭉개고, 쓰레기봉투 가장 아래로 밀어 넣었다. 봉투를 묶어 구석에 던지고 돌아선 순간, 선풍기가 시야에 들어왔다. 테이프가 군데군데 들뜬 채 목을 꺾고 서 있는 모습. 방금 짓밟아 넣은 회색 조끼의 냄새가 아직 손끝에 남아 있었는지, 선풍기의 굽은 목 위로 그 조끼의 형체가 겹쳐 보였다. 언니가 작업대 위만 내려다보던 그 등이었다. 고개를 들지도 못하고, 하루 내내 땅만 보며 버티던 자세. 선풍기가 떨고 있는 것처럼 보여 순간 소름이 돋았다. 죽은 언니가 다시 돌아와, 그 자세 그대로 이 방 한가운데 서 있는 것 같았다.
“......하나같이 징그러워.”
나는 선풍기를 노려보았다. 내 눈앞에서, 내 인생에서 이 구질구질한 목격자를 치워버려야 했다. 나는 지갑을 챙겨 들었다. 나는 놈의 목을 한 손에 움켜쥐었다. 플라스틱 몸체에서 미지근한 열기가 느껴졌다. 그 미적지근한 온도가 불쾌해서 당장이라도 집어 던지고 싶었다.
“진짜, 병신 같은 년.”
나는 신발을 구겨 신었다. 억울해서라도 버려야 했다. 언니가 미련하게 붙들고 있던 이 희망의 껍데기를 내 손으로 끝장내야 했다. 나는 현관문을 거칠게 열고 나갔다. 훅, 하고 달궈진 복도의 공기가 내 얼굴을 덮쳤다. 나는 선풍기의 부러진 목을 비틀어 옆구리에 끼웠다. 미지근한 플라스틱 본체가 갈비뼈에 닿았다. 3년 동안 언니의 땀을 식혀주었던 기계. 언니의 가장 내밀한 시간을 지켜봤던 유일한 증인. 나는 그 증인을 몰래 처리하러 가는 범죄자처럼 발소리를 죽였다. 계단을 한 칸 내려디딜 때마다 센서 등이 깜빡였다. 불빛의 점멸 아래서 내 그림자가 계단 난간을 타고 길게 늘어졌다가, 바닥으로 처박히기를 반복했다. 놈은 가벼웠지만 무거웠다. 무게는 3킬로 남짓이었지만, 내 팔뚝에 파란 핏줄을 서게 할 정도로는 무거웠다.
빌라 입구 앞에는 편의점이 있었다. 정석대로라면 저기에 들어가서 3,000원짜리 폐기물 스티커를 사야 했다. 하지만 편의점 유리문 앞에서 나는 발을 멈췄다. 통장 잔고 3만 원. 3,000원이면 내 전 재산의 10분의 1이었다. 편의점 도시락 하나, 아니면 컵라면 두 개를 살 수 있는, 내 피 같은 돈을 죽은 언니가 남긴 쓰레기를 치우기 위해 써야 한다는 사실이 억울했다. 나는 잠깐 주위를 들러보았다. 분리수거장 쪽에는 아무도 없어 보였다. 나는 편의점을 지나쳐 곧장 쓰레기장으로 향했다. 산더미처럼 쌓인 종이 박스와 터진 비닐봉지들. 나는 숨을 죽이고 쓰레기 더미 가장자리에 선풍기를 내려놓았다. 선풍기 안전망이 떨리며 철그렁하고 요란한 소리를 냈다. 나는 황급히 몸을 돌렸다.
“어이, 아가씨!"
등 뒤에서 쩌렁쩌렁한 고함이 날아와 내 뒤통수를 때렸다. 경비실 창문이 열려 있었다. 러닝 차림의 경비원이 부채를 흔들며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걸 그냥 두고 가면 어떡해?!”
나는 멈칫했다. 순간 얼굴이 확 달아올랐지만, 곧바로 미간을 구겼다. 내가 범죄자라도 된 것처럼 소리를 지르는 저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나는 고개를 뻣뻣하게 들고 쏘아붙였다.
“나중에 붙일 거예요. 지갑을 안 가져와서.”
“거짓말하고 있네. 손에 든 건 뭔데?”
경비원이 라이트로 내 손을 비췄다. 아차 싶었다. 지갑을 손에 쥐고 있었다. 하지만, 정곡을 찔렸다는 수치심은 순식간에 분노로 바뀌었다. 나는 지갑을 쥔 손을 등 뒤로 감추며 목소리를 높였다.
“아, 지금 사러 가려던 참이라고요! 왜 사람을 도둑 취급하고 그러세요?”
“사러 갈 사람이 쓰레기장에 먼저 던져? 내가 그리고 아까 아가씨가 편의점 앞에서 어슬렁거리는 것도 봤는데, 왜 자꾸 거짓말을 해!”
내 행동을 다 지켜보고 있었다는 사실에 수치심이 들었다. 동시에 내 안에 남은 자존심의 파편들이 아우성쳤다. 그래, 고작 3,000원. 그 돈이 없어서, 아니 아까워서 벌벌 떨었던 내 찌질함이 저 늙은 경비원에게 들켰다는 사실이 견딜 수 없었다.
“아저씨가 뭔데 남을 감시해요? 할 일 없어요?”
“뭐? 너 몇 살인데 말을 그렇게 해?”
경비원이 창문을 열고 나올 기세로 소리쳤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걸음을 멈추고 구경하기 시작했다. 그 시선들이 내 살갗을 따갑게 찔러왔다. 지금이라도 “죄송합니다”하고 스티커를 사 오면 끝날 일이었다. 하지만 내 빌어먹을 자존심은 그걸 허락하지 않았다. 저 경비원이 보란 듯이 3,000원을 결제하는 것도, 그렇다고 잘못을 인정하는 것도 싫었다. 가난한 게 죄는 아니지만, 가난한데 성격까지 나쁜 건 죄인걸까. 나는 입술을 깨물며 바닥에 내려놓았던 선풍기를 거칠게 낚아챘다.
“안 버려요! 됐죠?”
“허, 거, 성질머리 하고는....”
경비원의 혀 차는 소리가 등 뒤에 꽂혔다. 나는 보란 듯이 일부러 발소리를 쿵쿵 거리며 돌아섰다. 다시 4층까지 올라오는 계단은 내려갈 때보다 몇 배는 더 길고 가파르게 느껴졌다. 선풍기의 무게가 30킬로는 되는 쌀 포대처럼 내 어깨를 짓눌렀다. 분해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3,000원이 아까운 내 처지도, 그걸 들킨 쪽팔림도, 결국 도로 이 고물을 들고 올라가는 내 꼴도 다 혐오스러웠다. 현관문 앞에 섰을 때, 나는 땀과 독기에 젖어 중얼거렸다.
“누가 버린대? 돈 받고 팔 거야. 내가 보란 듯이 팔아치운다.”
나는 도어락 비밀번호를 신경질적으로 눌렀다. 그 소리가 유난히 경박하게 복도를 울렸다. 나는 도망치듯 현관 안으로 들어섰다. 등 뒤에서 철문이 닫히자마자, 밀폐된 옥탑방의 공기가 훅 끼쳐왔다.
“씨발...”
공기가 아니라 뜨거운 물속에 처박힌 기분이었다. 낮 동안 달궈진 옥상 시멘트의 복사열이 천장을 뚫고 내려와 방 안에 꽉 차 있었다. 숨을 쉴 때마다 덥고 눅눅한 수증기가 폐부를 찔렀다. 에어컨도, 선풍기도 돌지 않는 5평짜리 밀실. 이곳은 사람이 사는 방이 아니라 거대한 에어 프라이어였다. 나는 들고 있던 선풍기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집어 던지고 싶었지만 참았다. 부서지면 팔 수 없다. 그 거지같은 계산이 이성의 멱살을 잡았다. 바깥의 열기를 머금은 플라스틱 몸체는 불덩이처럼 뜨거웠다. 내 손바닥에 묻어난 그 미지근하고 축축한 감촉이 소름 끼쳤다. 나는 젖은 티셔츠를 펄럭이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앉자마자 엉덩이로 장판의 끈적한 열기가 올라왔다. 인중과 등줄기에서 땀이 비 오듯 쏟아졌다.
“미친 날씨, 진짜...”
언니는 이 더위를 어떻게 견딘 걸까. 이 찜통 속에서 선풍기 하나 끌어안고 버티다 심장이 터진 건가. 생각할수록 미련해서 화가 났다. 나는 땀에 젖어 미끄러지는 손으로 스마트폰을 켰다. 팔아야 했다. 이 지긋지긋한 더위와 싸우려면, 당장 편의점에 뛰어가 얼음 컵이라도 사서 씹어 먹으려면 돈이 필요했다.
[글쓰기]
입력창이 떴다. 턱 끝에 맺힌 땀방울이 액정 위로 툭 떨어져 번졌다. 나는 땀을 닦아낼 생각도 하지 않고, 욱하는 심정으로 자판을 두드렸다.
· 제목 : 신일 선풍기
· 가격 : 8,000원
· 내용 : 언니가 죽어서 팔아요. 찜통 같은 방에서 이거 하나 껴안고 살다가 뒤졌어요. 더워 죽겠는데 소리까지 시끄러워서 미쳐버릴 것 같아요. 꼴도 보기 싫으니까 제발 좀 가져가세요.
다 쓰고 나서 화면을 노려보았다. 속은 시원했다. 이게 사실이니까. 이게 내 진짜 마음이니까. 하지만 ‘등록’ 버튼을 누르지는 못했다. 나는 이마에 흐르는 땀을 손등으로 거칠게 훔쳐냈다.
“누가 사겠냐, 미친년아.”
이따위 글을 올리면 동네방네 미친년이라고 소문만 날 게 뻔했다. 나는 동정도 비난도 아니고, 당장 내 목구멍을 적실 시원한 물 한 병 살 돈이 필요했다. 지우기 버튼을 꾹 눌렀다. 다다다다- 글자들이 하나씩 지워졌다. 죽었다는 말도, 뒤졌다는 말도, 미치겠다는 비명도 사라졌다. 욱해서 쏟아냈던 감정들이 지워지자, 화면에는 다시 차가운 공백만 남았다. 나는 머리를 쓸어 넘기고, 감정을 싹 뺀 채 다시 글을 썼다.
· 내용 : 연식 좀 있습니다. 목 부분 부러져서 테이프로 고정했어요. 외관은 험하지만, 모터 짱짱하고 작동 잘 됩니다. 막 쓰실 분 가져가세요.
· 가격: 8,000원
가격을 적는 칸에서 잠시 손이 멈췄다. 이 날씨에 에어컨도 없는 방에서 버티는 값. 도시락 두 개 값. 나는 눈을 질끈 감고, ‘등록’ 버튼을 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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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휴대폰을 바닥에 던지듯 내려놓고 뒤로 벌러덩 드러누웠다. 한여름에 보일러를 켜놓은 것 같이 방바닥이 뜨끈했다. 천장의 곰팡이가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선풍기도 멈췄고, 언니도 멈췄는데, 이놈의 더위만 멈추질 않는다. 온몸의 수분이 땀으로 다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몇 시간이 지나도 알림은 오지 않았다. 나는 휴대폰을 외면한 채 눈을 감았다.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잠은 오지 않았고, 올 것 같지도 않았다. 등줄기에 땀이 차서 얇은 셔츠가 장판에 쩍 달라붙었다. 나는 끈적한 느낌에 질색하며 몸을 뒤척였다. 이 방의 공기는 수분을 잔뜩 머금고 있어, 땀이 증발하지 않고 그대로 몸에 들러붙었다. 나는 마치 소금물에 절여지는 미역처럼 눅눅하게 젖어 들어갔다. 그때, 내 귓속에서 달달달거리는 규칙적인 소음이 환청처럼 울렸다. 분명 선풍기는 멈춰 있었다. 하지만 그 규칙적인 소리가 내 귓속에서 멈추지 않고 울렸다. 더위 먹은 뇌가 비명을 지르는 건지, 불안해진 심장 박동 소리인지 알 수 없었다. 그 소리는 마치 선풍기 모터 소리 같아서, 나는 귀를 베개로 틀어막았다. 하지만, 그 소음은 내 안의 것이었는지 귀를 아무리 틀어 막아보아도 들렸다. 그 시끄러운 소리에 나는 생각을 멈추고 싶었다. 도망치듯 눈을 질끈 감았다. 나는 기계가 강제로 전원을 끄듯, 의식을 놓았다. 그렇게 꿈도 없이, 그저 뜨겁고 끈적한 물속에 잠겨버리듯 얕은 잠에 빠져들었다. 내일의 일이나 8,000원에 대한 초조함은 잠시 잊혔다. 다만, 몸이 너무 무거워 가위에 눌린 것 같았던 것 같다.
아침이 되었지만, 더위는 물러가지 않았다. 나는 끈적한 이불을 걷어차고 일어났다. 눅눅한 공기가 온몸을 감쌌다. 나는 찬물로 대충 세수하고, 어제 올린 선풍기 게시글을 다시 확인했다. 관심 0, 채팅 0. 애석하게도, 내 절박함은 세상에 닿지 못했다. 나는 찬물로 대충 세수하고, 캐리어에서 구김이 덜 간 흰색 블라우스를 꺼내 입었다. 그때, 적막을 깨고 날카로운 알람 소리가 울렸다.
[오후 2:00 - 청평물산 1차 화상 면접]
현실이 문을 두드렸다. 나는 멍하니 액정을 바라보았다. 그래, 산 사람은 살아야 했던가. 비록 죽은 사람의 방에 땀을 흘리며 썩어가고 있을지라도, 나는 세상 밖으로는 '멀쩡한 척' 얼굴을 내밀어야 했다. 그제서야 부랴부랴 전투적으로 방을 치우기 시작했다. 치운다기보다는 밀어낸다는 표현에 더 가까웠다. 면접관의 모니터에 비칠 가로세로 30센치미터의 사각형 프레임. 딱 그만큼의 무균실을 확보하기 위해 나는 언니의 유품이 담긴 검은 봉투들을 발로 걷어찼다. 묵직한 봉투들이 화장실 문 앞으로 쓸려나갔다. 책상 위에 어지럽게 널려 있던 언니의 약봉지와 체납 고지서들은 서랍 속에 구겨 넣었다. 배경이 될 벽지는 하필 습기를 머금어 거무죽죽하게 곰팡이가 슬어 있었다. 나는 급하게 블라우스를 옷걸이에 걸고, 그것을 교묘하게 벽에 걸어 얼룩을 가렸다. 상의는 다림질 잘 된 흰색 셔츠, 하의는 무릎 나온 회색 트레이닝복. 그 기형적인 차림새가 나의 현재였다. 자리에 앉아 화면을 키자, 노트북 카메라의 불빛이 초록색으로 바뀌었다. 화면 속에 '단정한 지원자'가 나타났다. 나는 입꼬리를 한껏 끌어올렸다. 사용하지 않던 안면 근육이 파르르 떨렸다.
“네, 안녕하십니까. 지원자 백지연입니다.”
모니터 너머 면접관들은 매끈한 회의실에 앉아 있었다. 그들의 세상은 에어컨 바람이 부는 듯 쾌적하고 밝아 보였다. 반면 내 세상은 앵글 밖으로 밀려난 죽음의 찌꺼기들과 악취로 가득했다. 그 괴리감이 나를 아찔하게 만들었다.
“공백기가 좀 있으시네요? 6개월 동안 구직 활동 외에 특별히 하신 게 있습니까?”
중년의 남성 면접관이 내 이력서를 훑으며 물었다. 나는 책상 아래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주먹을 꽉 쥐었다. 그 6개월 동안 나는 지방 발령을 피해 도망쳤고, 자존감을 갉아먹으며 방황했고, 지금은 죽은 언니의 쌀독을 파먹으며 기생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준비된 인재'의 톤으로 대답했다.
“네, 그 기간 동안 저는 부족한 직무 역량을 보완하기 위해 관련 자격증을 공부하며...”
거짓말이었다. 입에서는 매끄러운 단어들이 쏟아져 나왔지만, 내 시선은 자꾸만 모니터 너머의 사각지대, 카메라가 비추지 않는 구석을 향했다. 그곳에 선풍기가 있었다. 아까 내가 급하게 발로 밀어버린 탓에 벽에 처박힌 놈은, 여전히 그 삐딱한 각도로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테이프로 감긴 목이 나를 향해 묘하게 비틀려 있었다.
‘웃기고 있네.’
놈이 덜덜거리며 비웃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언니가 과로로 죽어갈 때 아무것도 하지 못했던 주제에, 너는 지금 살겠다고 그따위 거짓말을 하고 있느냐고. 언니의 시신이 누워있던 그 자리 위에서, 언니의 불행을 프레임 밖으로 치워버리고 짓는 그 미소가 역겹지 않냐고 내게 묻는 것 같았다.
“위기관리 능력이 뛰어나시군요.”
면접관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경련이 일 것 같은 입꼬리를 유지하며 대답했다.
“감사합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침착함을 잃지 않는 것이 제 장점입니다.”
등줄기로 식은땀이 흘러내려 트레이닝복 밴드를 적셨다. 면접은 20분 만에 끝났다. 접속 종료 버튼을 누르자마자 노트북의 열기가 훅 끼쳐왔다. 나는 셔츠 단추를 뜯어내듯 풀고 털썩 바닥에 주저앉았다. 등줄기로 식은땀이 흘러 트레이닝복 밴드를 적셨다. 긴장이 풀리자 가려두었던 곰팡이 냄새가 다시 콧속을 찔렀다. 나는 등 뒤의 벽에 머리를 기대었다. 달궈진 벽의 석고 보드가 뜨끈했지만, 움직이는 것보다 나았다. 나는 고개를 돌려 선풍기를 보았다. 놈은 여전히 그 자리에서, 나의 비겁한 쇼를 빠짐없이 지켜보고 있었다.
‘뭘 봐. 너도 공범이면서.’
‘언니의 죽음을 묵인한 너나, 언니의 죽음을 이용해 숨어든 나나.’
나는 놈에게서 시선을 거두었다. 놈에게 소리 지를 기력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젖은 셔츠가 몸에 달라붙어 불쾌했지만, 갈아입을 힘도 없었다. 몸이 텅 빈 것처럼 쓰려왔다. 땀을 너무 많이 흘려서일까. 속이 울렁거렸다. 방바닥의 열기가 가슴팍을 짓눌렀다.
“......배고파.”
입에서 튀어나온 말은 욕설도 분노도 아닌, 지독하게 원초적인 허기였다. 나는 이 뜨겁고 끈적한 방에서 살아남기 위해, 다시 움직여야 했다. 나는 비틀거리며 벽을 짚고 일어섰다. 시선은 자연스럽게 냉장고를 향했다. 시원한 물이라도 마셔야 했다. 나는 비틀거리며 냉장고로 향했다. 냉장고 문을 열었다. 모터 돌아가는 소리와 함께 서늘한 냉기가 얼굴로 쏟아졌다. 이 지옥 같은 방에서 유일하게 시원한 곳이었다. 나는 잠시 냉장고 문에 이마를 대고 열기를 식혔다. 냉장실은 텅 비어 있었다. 말라 비틀어진 채소들과 유통기한 지난 어묵, 그리고 생수 반 병이 전부였다. 나는 그 생수통을 꺼내 들고 목을 꺾어 물을 마셨다. 차가운 물이 목을 넘어가니, 이제야 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갈증은 가시니, 오히려 허기가 더 또렷해졌다. 이제 진짜 위장에 뭔가를 넣으라고 더 시끄럽게 울부짖는 느낌이었다. 나는 한숨을 내쉬며 냉동실 칸을 열었다. 성에가 잔뜩 낀 안쪽에 검은 비닐봉지 하나가 웅크리고 있었다. 돌덩이처럼 꽝꽝 언 네모난 얼음 블록. 비닐을 벗겨내자, 거무튀튀한 해조류가 박혀 있는 누런 얼음덩어리가 드러났다. 미역국이었다. 나는 말없이 냄비를 꺼내 얼음덩이를 털어 넣고, 가스 불을 켰다. 파란 불꽃이 냄비 바닥을 핥았다. 얼음이 녹기 시작했다. 언니의 시간이 녹고 있었다. 고체였던 얼음이 액체로 변해가면서, 방 안에 묘한 냄새가 퍼지기 시작했다. 오래된 들기름 쩐내와 미역의 비릿한 바다 냄새. 그것은 식욕을 자극하기보다는, 어딘가 상한 것 같은 불쾌함을 동반했다. 나는 숟가락으로 국물을 휘저었다. 문득, 언니의 생일이 지난달이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이 미역국, 언니가 제 생일날 혼자 끓여 먹고 남은 걸까. 축하해 줄 사람도 없는 좁은 방에서, 스스로를 달래려고 미역을 불리고, 국간장으로 간을 맞추고, ‘생일이니까’라고 중얼거리며 적당히 장식해본 한 끼. 혼자 국을 떠먹던 언니의 뒷모습이 떠오르는 순간, 속이 더부룩해졌다.
“씨발. 궁상.”
냄새는 점점 더 심해졌다. 미역국 특유의 고소한 냄새 대신 시큼하고 눅진한 곰팡이 냄새가 코를 찔렀다. 아마 상하기 직전에 얼려서 맛이 변했거나, 냉장고에서 꺼낸 후 몇 번이고 재냉동을 반복했을 것이다. 먹지 말아야 했다. 내 직감은 이것이 부패한 것이며, 먹으면 반드시 탈이 날 것이라고 경고했다. 나는 밥통으로 가서 남아 있던 찬밥을 퍼 왔다. 허기가 이성의 경고를 덮어버렸다. 통장 잔고 3만 원. 면접은 끝났고, 당장 8,000원짜리 선풍기가 팔릴 기미도 없었다. 이 냄비 속 미역국은 언니의 삶도, 추억도 아니었다. 오늘을 버티게 해줄, 거의 유일한 열량 덩어리였다. 나는 살아야 했기에, 김치도 없이, 반찬도 없이, 누런 국물에 만 밥을 한 숟가락 크게 떠서 입에 넣었다. 짜다. 소태처럼 짰다. 혀가 얼얼해질 정도였다. 국물은 미지근하고, 미역은 미끌거리지도 않고 툭툭 끊겼다. 그 덩어리들이 혀를 스치고, 목구멍을 타고 내려가는 동안 나는 이상한 감각에 사로잡혔다. 언니의 눅진한 삶의 조각들을, 내가 씹어 삼키고 있다는 기분. 언니가 아끼고 아껴 남겨둔 생의 찌꺼기를, 동생이라는 년이 나타나 걸신들린 것처럼 파먹고 있었다. 두 숟가락, 세 숟가락. 소화가 되지 않았다. 위액과 침이 뒤섞여 식도 중간에 덩어리처럼 걸려 있었다. 역한 냄새가 코를 찔렀지만 멈추지 않았다. 살아야 하니까. 이 찜통 같은 더위를 버티려면, 3,000원 때문에 경비원과 싸울 힘이라도 내려면, 죽은 사람의 열량이라도 뺏어와야 했으니까.
“욱… 우웨엑!”
반쯤 먹었을 때였다. 짠맛과 비린내, 곰팡이 냄새가 한꺼번에 역류하며 위장이 뒤집혔다. 이것은 음식이 아니었다. 부패한 언니의 시간이었다. 내 몸은 그 비참한 생존 방식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했다. 입을 막고 화장실로 달려갔다. 나는 변기를 붙잡고 위장의 모든 것들을 게워냈다. 누런 국물과 불은 밥알이 한순간에 쏟아졌고, 목구멍이 화끈하게 타올랐다. 눈물과 콧물이 뒤섞였다. 변기 물을 내리자, 소용돌이 속으로 사라지는 미역국이 마치 언니의 남은 흔적을 내가 직접 버리는 듯했다. 헐떡이며 변기 옆에 기대어 있다가, 벽을 짚고 겨우 일어섰다. 세면대에서 찬물을 틀어 그대로 들이켰다. 잔여물들을 치우고 나니 이제야 겨우 정신이 돌아왔다. 거울 속 얼굴은 땀과 눈물로 엉망이었고, 속은 텅 비었다. 나는 남은 힘으로 겨우 몸을 이끌고 거실로 나와, 널린 이불 옆에 털썩 주저앉았다. 근육이 풀리면서 몸 전체가 가라앉았다. 벽에 기대 숨을 몰아쉬었다. 팔을 드는 것조차 큰일처럼 느껴졌다. 그때, 바닥에 던져둔 휴대폰이 둔탁하게 떨렸다.
[오늘도 고생 많았어요. 이제 숨 고르는 시간을 가져볼까요?]
언니가 매일 봤을 그 문구였다. 방금 토사물로 숨이 막혔는데, 숨을 고르라니 우스웠다. 나는 팔을 뻗어 알림을 지웠다. 앱은 지우지 않았다. 아마, 죄책감 때문이었던 것 같다. 또 한 번 짧은 진동이 울렸다. 이번엔 [당근]일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몸은 움직이지 않았다. 팔이 다시 바닥에 툭 떨어졌다. 눈만 휴대폰을 향해 갔지만, 손은 따라가지 못했다. 천천히, 목을 지탱하던 힘까지 빠져나갔다. 뜨거운 벽에 머리가 기대지고, 시야가 서서히 꺼졌다. 방 안의 열기와 피로가, 내 의식을 통째로 눌러 꺼뜨렸다.
얼마나 지났을까. 눈을 뜨니 창밖의 빛이 누렇게 기울어 있었다. 몸은 끈적했지만 열기는 조금 빠진 듯했다. 나는 바닥에서 휴대폰을 끌어당겼다. 액정 위에 말라붙은 땀 얼룩이 보였다.
[당근마켓 - 채팅 두 건]
축 늘어진 몸을 이끌고 거실로 나갔다. 땀에 젖은 손가락으로 화면을 켜고, 가장 위의 대화방을 눌렀다. 외제차 핸들에 손을 올린 남자의 프로필이 떠 있었다. 채팅을 열자, 그가 되돌려 보낸 선풍기 사진이 화면을 채웠다. 문제는 선풍기가 아니었다. 검은 플라스틱 표면에 비친 내 다리 실루엣이 흐릿하게 드러나 있었다.
[다리 예쁘시네요.]
[혼자 사시나요?]
[영상 주시면 3만 원.]
3만 원. 선풍기를 사는 게 아니라, 나를 값으로 매기고 있었다. 나는 바로 차단하고, 게시글 사진을 전부 지웠다. 손바닥에 식은땀이 배었다. 분노는 뜨거웠지만, 몸은 이미 비어있었다. 얼굴을 감싸 쥐고 숨을 고르고, 남은 대화방을 열었다.
[모터 뚜껑 나사산만 필요합니다. 2천 원에 파시나요?]
2천 원. 이번엔 감정이 일기조차 않았다. 8,000원짜리 절박함을 부속 단위로 잘라 2,000원으로 부르는 사람들. 선풍기는 이제 하나의 물건도, 하나의 사연도 아니었다. 부속, 나사, 모터. 잘라 팔 수 있는 가격표뿐. 나는 휴대폰을 휙 던졌다. ‘착’하고 휴대폰이 장판에 달라붙는 소리가 났다. 고개를 들어 선풍기를 바라보았다. 벽 쪽에 밀린 채, 부러진 목을 늘어뜨리고 서 있는 모습이 마치 기운 빠진 짐승 같았다. 이젠 나를 비웃는 것처럼 보이지도 않았다. 놈은 내 적이 아니었다. 8,000원짜리 절박함을 대신 짊어진 채 시장 한가운데서 난도질만 당하고 있는 우리 자매의 또 다른 희생자였다. 나는 욱신거리는 몸을 억지로 일으켰다. 무언가에 끌리듯 비틀거리며 놈에게 다가갔다. 이윽고, 선풍기 앞에서 멈춰 섰다. 움직이지 않는 물체 하나를 앞에 두고 이렇게 오래 머무는 건, 조금 우스운 일일지도 모른다. 누가 옆에서 그 말을 대신해줬다면, 나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고, 그래서 나는 아무 말 없이 그 앞에 그대로 서 있었다. 선풍기는 오래된 모델이었다. 가느다란 다리는 삐딱하게 기울고, 모터 쪽은 손때와 먼지가 뒤섞여 흐릿하게 바래 있었다. 그중에서도 시선이 멈춘 곳은 목이었다. 힘이 빠져 어느 방향에도 기댈 수 없는 자세. 버티다 버티다 결국 내려앉은 듯한 꺾임. 아까는 저 꺾인 목이 나를 비웃는 것 같아 징그러웠는데, 지금은 다르게 보였다. 그냥, 고장 난 거였다. 스스로 지탱할 힘이 다 빠져서, 억지로 고정해 둔 테이프 하나에 의지해 간신히 머리를 들고 있었던 거였다. 손끝이 전원 버튼 위에서 멈췄다. 더워서였다. 정말 더워서. 그렇게 정리하면 깔끔했다. 하지만 손가락은 금방 움직이지 않았다. 놈을 깨우면, 놈이 뱉어낼 그 소리가 내 방어막을 깰까 봐 두려웠다. 언니가 죽어있던 이틀 밤낮 동안, 시체 옆에서 홀로 신나게 돌아가며 불렀던 그 기계적인 콧노래. 나는 마른침을 삼켰다.
“......그냥 더워서야. 그 외엔 아무것도 아니야.”
나는 주문을 외우듯 중얼거리고, 손가락에 힘을 주었다. 툭, 버튼이 눌렸다. 잠시 정적. 그리고, 모터가 낮은 가래 끓는 소리를 내며 깨어났다. 진동이 방바닥을 타고 발바닥으로 전해졌다. 덜컹거리는 목을 겨우 가누며 날개가 돌기 시작하자, 바람이 얼굴을 덮쳤다. 시원하지 않았다. 좁은 방에 고여 있던 열기를 그대로 머금은, 미지근하고 텁텁한 먼지 냄새만 나는 바람이었다. 하지만 땀에 젖은 이마에 그 바람이 닿는 순간, 온몸의 긴장을 풀렸다. 의지와는 상관없는, 몸의 정직한 반응이었다. 이 덥고 끈적한 방에서 숨을 쉬려면, 썩은 동아줄이라도, 고장 난 선풍기라도 돌아가야 했던 것이었다. 나는 눈을 감고 그 낡은 바람을 맞았다. 헛웃음이 새어 나왔다.
“......씨발.”
그 말은 분노보다는, 그저 땀으로 범벅이 된 나를, 그리고 덜덜거리며 돌아가는 저놈을 인정해버릴 수밖에 없는 사람의 가장 작은 항복 같은 소리였다. 나는 그 뒤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선풍기 소리만이 방 안을 가득 채웠다. 달달달- 그 규칙적인 소음이, 이상하게 심장 박동 소리처럼 들렸다.
다음 날 아침. 눈을 떴을 때, 방 안에는 눅눅한 적막만이 감돌고 있었다. 나는 쓰레기봉투들 사이에 깐 이불 위에서 멍하니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예고 없는 초인종 소리가 적막을 찢었다. 심장이 쿵, 하고 바닥으로 떨어졌다. 올 사람이 없는데. 집주인인가? 나는 이불을 몸에 감은 채 엉금엉금 기어가 벽에 붙은 인터폰 화면을 켰다. 노이즈 섞인 흑백 화면 속에 작업 조끼를 입은 여성이 보였다.
“누구세요?”
잠긴 목이 잘 나오지 않아 헛기침을 섞어 물었다. 스피커에서 치직거리는 잡음 섞인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예, 10시에 예약된 청소 업체입니다.”
청소? 아. 오늘이었나. 엄마가 말했었다. ‘지연아, 정 힘들면 대충 담아만 둬. 마지막엔 업체 불러서 싹 뺄 거니까.’ 그게 오늘이었던가. 날짜 감각 없이 이 방에서 썩어가느라 방을 비워줘야 하는 날이 온 줄도 몰랐다.
“자, 잠시만요! 금방... 금방 나갈게요!”
나는 다급하게 소리치고 인터폰을 껐다.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렀다. 헐렁한 티셔츠 한 장에 속옷 차림. 머리는 산발이었고, 방바닥에는 캐리어가 입을 벌린 채 널브러져 있었다. 나는 허둥지둥 바닥을 훑었다. 어제 벗어 던져둔 트레이닝 바지가 구석에 처박혀 있었다.
“어디 갔어, 진짜...”
나는 한 발로 콩콩 뛰며 바지에 다리를 쑤셔 넣었다. 마음이 급해 발이 자꾸만 바짓단에 걸렸다. 가까스로 허리춤을 올리고, 바닥에 널린 속옷들을 발로 차서 캐리어 안 으로 차 넣었다. 심호흡을 한 번 하고, 도어락을 열었다.
“아이고, 주무시고 계셨나 보네. 따님 되시나?”
문을 열자마자 땀을 뻘뻘 흘리는 아주머니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뒤에 선 남자도 짐 나를 수레를 끈 채 가볍게 목례를 건넸다. 그들의 얼굴은 햇볕에 건강하게 그을려 있었고, 땀에 젖은 작업복에서는 쉰내 대신 묘한 활기가 느껴졌다. 방금 일어나 꾀죄죄한 내 모습과, 아침부터 정직하게 몸을 움직여 온 그들의 건강함이 너무나 선명하게 비교되었다. 나는 저도 모르게 옷깃을 여몄다.
“어머니께서 오늘 싹 비우면 된다고 하셨는데. 짐 정리는 다 되신 거죠?”
아주머니의 시선이 방 안 구석에 쌓인 검은 봉투들을 향했다. 찡그림이나 혐오감은 없었다. 그저 오늘 해야 할 일을 확인하는 베테랑의 덤덤하고 긍정적인 눈빛이었다. 나는 그 시선이 오히려 더 부끄러웠다. 유품 정리를 핑계로 이 쓰레기 더미 속에 기생하고 있었던 나의 게으름을, 저 성실한 사람들에게 들킨 것만 같았다.
“아... 네. 다 담아놨어요. 가져가시기만 하면 돼요.”
“고생했네, 아가씨 혼자서 저 많은 걸 다 정리하느라. 그럼 나오시죠. 우리가 얼른 해치워줄게.”
아주머니의 말투는 살가웠다. 나는 도망치듯 방 안으로 들어와 펼쳐진 캐리어 지퍼를 잠갔다. 이 좁은 방에서 3주를 숨어 지냈는데, 쫓겨나는 건 3분도 걸리지 않았다. 캐리어 손잡이를 잡고 일어서려는데, 구석에 처박힌 선풍기가 눈에 들어왔다. 목이 부러져 테이프로 칭칭 감긴, 어젯밤 내가 마주 보고 켰던 놈.
“저건? 저것도 버려드려?”
따라 들어온 아저씨가 선풍기를 가리키며 물었다. 친절함이 섞인 물음이었다. 무거운 건 우리가 들어주겠다는 호의. 하지만 나는 반사적으로 선풍기 목을 움켜쥐었다. 저들에게는 저것도 검은 봉투 속으로 들어가야 할, 수명이 다한 폐기물로 보일 것이다. 하지만 어젯밤 나는 놈이 뱉어내는 미지근한 바람 앞에서 항복했다. 고장 난 채로도 기어이 돌아가는 저놈이나 망가진 채로 어떻게든 살아보려는 나나, 다를 게 없다고. 그래, 그러니 이건 쓰레기가 아니었다. 나의 유일한 동료에 가까웠다.
“아, 아니요. 이건... 가져갈 거예요.”
“그래요 그럼. 아가씨, 근데 여기 먼지 많이 나니까 잠깐 나가 계셔야 할 것 같아. 한 2시간 정도 걸릴 텐데, 근처 카페라도 가서 시원한 거 좀 마시고 와요.”
아주머니가 내 등을 가볍게 토닥이며 길을 텄다. 카페라는 그 평범한 단어가 내 가슴을 찔렀다. 쫓겨나서 갈 곳이라곤 찜통 같은 계단참밖에 없는 내 처지를, 저들은 상상조차 못 할 것이다.
“아, 참. 아가씨 번호 하나만 줘요.”
아주머니가 작업복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며 말했다.
“날도 더운데 밖에서 마냥 기다리지 말고. 끝나면 바로 문자 넣어줄 테니까, 그때 맞춰서 들어와요.”
그 살가운 배려가 고마우면서도 따가웠다. 나는 쭈뼛거리며 번호를 불러주었다. 아주머니는 익숙한 손놀림으로 번호를 저장하곤 씩 웃어 보였다.
“입력했어. 푹 쉬고 와요.”
“여보, 큰 봉투부터 싣자. 이불이지?”
“어. 내가 들 테니까 당신이 구루마 가져와.”
부부는 익숙하게 손발을 맞췄다. 아저씨가 검은 봉투를 번쩍 들어 올리면 아주머니가 수레 쪽으로 당겨 받았다. 힘든 기색 하나 없었다. 서로 믿고 의지하며 삶을 꾸려가는 사람들 특유의 단단한 리듬이 느껴졌다. 턱, 턱. 봉투들이 수레 위로 쌓이는 소리마저 경쾌하게 들렸다. 언니의 옷이, 이불이, 30년의 흔적이 짐짝처럼 들려 나가고 있었다. 누군가는 삶을 포기해서 남긴 쓰레기를, 누군가는 삶을 살아가기 위해 활기차게 치우고 있었다. 나는 그 건강한 에너지에 질식할 것 같아서 도망치듯 복도 계단으로 내려왔다. 위이잉, 현관문 틈으로 청소기 돌아가는 소리가 날카롭게 새어 나왔다. 나는 계단참 구석에 쪼그리고 앉았다. 무릎에 고개를 파묻었다. 얇은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나의 마지막 은신처가 강제로 철거당하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자, 엉덩이가 배기고 다리가 저려왔다. 바로 등 뒤에서 들리는 기계 소음 때문에 머리가 울렸다. 여기서 2시간을 버티는 건 무리였다. 오르내리는 이웃들이 힐끔거릴 것도 뻔했고, 무엇보다 문 하나를 두고 청소하는 소리를 듣고 있는 게 고문 같았다. 나는 뻐근한 무릎을 짚고 일어섰다. 갈 곳은 없었지만, 어디든 가야 했다. 1층 현관을 나서자마자 훅, 하고 뜨거운 공기가 덮쳐왔다. 정오의 태양이 아스팔트를 녹일 기세로 내리쬐고 있었다. 나는 아파트 단지 가장 구석, 재활용 분리수거장 옆에 있는 벤치로 향했다. 사람들이 잘 지나다니지 않는, 그늘 한 점 없는 사각지대였다. 땀을 뻘뻘 흘리며 은색 캐리어와 선풍기를 벤치 옆에 내려놓았다. 처음 10분은 견딜 만했다. 하지만 30분이 지나자 엉덩이가 배겨왔고, 1시간이 지나자 숨이 턱턱 막혔다. 지나가던 유모차를 끄는 여자가 나를 힐끔 쳐다보고 지나갔다. 대낮에 짐 가방을 들고 놀이터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있는 젊은 여자. 영락없이 집에서 쫓겨났거나 가출한 꼴이었다. 여자의 시선이 내 옆에 숨겨둔 선풍기에 잠깐 머물렀다. 나는 괜히 휴대폰을 보는 척하며 고개를 숙였다. 시간은 끈적하고 느리게 흘렀다. 나는 바닥을 기어가는 개미 떼를 멍하니 내려다보다가, 스마트폰 배터리가 닳는 것을 지켜보다가, 다시 4층 창문을 올려다보기를 반복했다. 창문 너머로 들리는 청소기 소리는 멈출 기미가 없었다. 저 소음이 멈춰야만 다시 내 굴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나는 처분되이 보류된 짐짝처럼 가만히 숨을 죽였다. 기시감이 들었다. 타인의 시선을 피해 숨죽이고 있는 이 기분. 할 일이 없어 시간만 죽이고 있는 이 무력감. 3주 전, 장례식장 로비에서도 이랬다. 친구 하나 없이 텅 비어있던 빈소. 부고를 돌리기 위해 열었던 언니의 연락처 목록에는 [물류팀], [퀵서비스], [쿠팡] 같은 건조한 단어들만 나열되어 있었다. 관계마저 비용으로 치부하며 잘라냈던 언니의 20대. 그때 그 적막했던 장례식이나, 지금 땡볕 아래서 청소가 끝나길 기다리는 이 시간이나 다를 게 없었다. 저 위에서 낯선 부부가 락스 물로 언니의 냄새를 지우는 동안, 나는 이 고물 선풍기를 붙잡고 땀을 흘리며 두 번째 장례를 치르고 있는 셈이었다. 그림자가 짧아져 갔다. 등줄기에 땀이 흘러내려 속옷이 축축하게 젖었다가 마르기를 반복했다. 목이 타들어 갔지만 카페는커녕 편의점에 가서 차가운 물 한 병 마시는 돈마저도 아까웠다. 나는 입안에 고인 미지근한 침을 삼키며 버텼다. 내가 가진 건 시간뿐이었지만, 그 시간마저 나를 괴롭히는 데 쓰이고 있었다. 지이잉 소리를 내며 영원히 울리지 않을 것 같던 휴대폰이 짧게 진동했다. 화면을 켜자, 오후 12시 15분이었다. 꼬박 2시간이 지나 있었다. 다시 4층. 도어락 비밀번호를 누르고 문을 열자마자 훅 끼쳐오는 냄새가 있었다. 락스 냄새. 코가 맵고 눈이 시릴 정도로 독하고 하얀 냄새. 신발을 벗고 들어선 방은 텅 비어있었다. 바닥에 굴러다니던 머리카락도, 구석에 쌓여있던 검은 봉투들도, 특유의 퀴퀴한 생활 냄새도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하얗게 질린 벽지와 물청소를 마쳐 축축하게 젖은 장판만이 번들거리고 있었다. 그곳은 이제 누구의 방도 아니었다. 언니를 짓누르던 가난도, 내가 숨어 지냈던 도피의 시간도. 묵은 짐들과 함께 싹 쓸려 내려갔다. 속이 트이는 기분이었다. 마치 체증처럼 꽉 막혀 있던 명치가 시원하게 뚫린 것 같았다. 그래, 언니는 이 좁은 방, 이 무거운 짐들 속에서 질식했던 거다. 이렇게 다 비워내고 나니 비로소 보였다. 이 방이 원래는 이렇게 환하고 네모난, 그저 평범한 공간이었다는 것을. 나는 텅 빈 방 한가운데로 걸어 들어갔다. 발소리가 텅, 텅, 하고 가볍게 울렸다. 들고 있던 선풍기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아무것도 없는 하얀 방 한가운데, 목이 부러져 테이프로 감긴 낡은 선풍기 한 대가 덩그러니 놓였다. 이제 남은 건 나와 이 녀석뿐이었다. 무겁게 짓누르던 것들은 모두 사라졌다. 나는 캐리어를 벽에 기대어 두고, 방 한가운데 주저앉았다. 사방이 하얗게 비어 있으니, 오히려 내 몸의 감각이 선명해졌다. 락스 냄새가 폐부 깊숙이 들어와 묵은 공기를 밀어냈다. 머리가 맑아졌다. 그리고 동시에, 아랫배 깊은 곳에서 꼬르륵, 하는 소리가 울렸다. 방이 비워지자, 내 위장도 비워졌음을 그제야 깨달았다. 언니의 상한 미역국을 토해내고 텅 비어버린 속. 복잡했던 마음도, 무거웠던 부채감도 이 방처럼 깨끗하게 지워졌다. 시선을 둘 곳이 없어 습관처럼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화면에 알림이 떠 있었다.
[‘오후의 평온’을 찾을 시간입니다.]
언니가 죽은 후에도 매일같이 도착하던, 기계적인 안부 인사. 나는 홀린 듯 앱을 실행했다.
[재생: 숲속의 빗소리]
휴대폰 스피커에서 인위적인 빗소리가 흘러나왔다. 가구 하나 없는 방이라 그런지 소리가 벽을 타고 더 맑게 울렸다. 락스 냄새가 진동하는 하얀 시멘트 방 안에서 듣는 '숲속의 빗소리'. 그것은 기괴한 부조화였다. 하지만 나는 더 이상 비웃거나 화내지 않았다. 그저 물끄러미 화면을 바라보았다. 언니는 이 가짜 숲소리에 귀를 막고, 곰팡이 핀 현실을 견뎠을 것이다. 그것은 언니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버팀이었다. 1분 정도 그 소리를 가만히 듣고 있었다. 이제 이 방에는 곰팡이 냄새도, 언니의 고단함도 없다. 락스 냄새가 모든 것을 지웠다. 그러니 이 가짜 위로도 이제 소명을 다했다. 나는 화면을 터치했다.
[일시 정지]
빗소리가 뚝, 끊겼다. 방 안에는 다시 맑은 정적과 위이잉 돌아가는 바깥의 실외기 소리만이 남았다. 나는 [구독 해지] 버튼을 눌렀다.
[정말 해지하시겠습니까?]
앱이 질척거리며 물었다. 나는 망설임 없이 버튼을 눌렀다.
“됐어. 이젠.”
나는 휴대폰을 바닥에 툭 던져두었다. 슬프지도, 후련하지도 않았다. 그저 팽팽하게 당겨져 있던 고무줄이 툭 끊어진 듯, 전신의 근육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나는 비틀거리며 그대로 맨바닥에 옆으로 누웠다. 물청소를 마친 장판은 아직 덜 말라 차갑고 축축했다. 하지만 뺨에 닿는 그 서늘한 습기가 오히려 좋았다. 땡볕 아래서 달궈진 살갗을 식혀주는 쿨링 패드 같았다. 텅 빈 방. 하얀 벽지. 락스 냄새. 가구 하나 없는 이 네모난 공간에 누워 있으니, 묘하게 아늑했다. 등 뒤에 배기는 쓰레기봉투도, 코를 찌르는 곰팡이 냄새도 없었다.
‘시원하다.’
그 단순한 감각 하나만 남기고 의식이 멀어졌다. 스르르. 눈꺼풀이 닫혔다. 꿈도, 후회도, 미련도 없는 깊고 까만 잠이었다.
지이잉- 바닥을 긁는 진동 소리가 고막을 때렸다. 나는 화들짝 놀라 눈을 떴다. 바닥을 더듬어 휴대폰을 켰다.
[오후 6:02]
헛웃음이 터졌다. 12시 조금 넘어서 누웠으니, 꼬박 대여섯 시간을 기절해 있었던 거다. 맨바닥에서, 이불도 없이, 시체처럼. 입가에는 침이 고여 있었다. 나는 손등으로 입술을 쓱 문질러 닦았다. 상체를 일으키자 굳어있던 어깨에서 우두둑 소리가 났다. 눈앞에 가득 찬 하얀 벽지가 낯설어, 그 순간 여기가 어딘가 했다. 창밖의 해는 이미 길게 누워, 방 안 깊숙이 노란 볕을 드리우고 있었다. 한 시간? 아니면 두 시간? 얼마나 잤는지 감이 오지 않았다. 등은 배기고, 방 안은 오후의 열기로 후끈했다. 머리가 이상할 정도로 맑았다. 지난 3주 동안 푹신한 이불 위에서도, 에어컨 바람 아래서도 늘 가위눌린 듯 선잠을 잤었는데. 이 맨바닥에서 땀을 흘리며 잤는데도 몸이 가벼웠다. 마치 젖어있던 솜이 바짝 마른 것처럼, 속이 보송보송하게 개운했다. 그때, 바닥에 엎어진 휴대폰이 다시 한번 몸을 떨었다.
[당근!]
경쾌한 알림음이 고요한 방 안을 울렸다. 나는 기지개를 켜듯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새로운 채팅이었다.
[선풍기 아직 있나요? 구매하고 싶은데요.]
아, 맞다. 선풍기. 나는 헝클어진 머리를 대충 쓸어 넘기며 답장을 쳤다. 어제 같았으면 “상태 아주 좋아요” 같은 거짓말이라도 보탰겠지만, 지금은 그러기도 귀찮았다.
[네, 있어요. 근데 글에 쓴 대로 목이 부러져서 테이프로 감아놨어요. 고개 못 들어요. 바닥만 봅니다.]
솔직하게 적어 보냈다. 살 테면 사고 말 테면 말라는 심정이었다. 잠시 후, 답장이 왔다.
[작동은 잘 되나요?]
[바람은 잘 나와요. 소리는 좀 커요.]
[그럼 됐습니다. 제가 지금 근처인데 바로 가지러 가도 될까요?]
생각보다 싱거운 반응이었다. 목이 부러졌든, 소리가 크든 상관없다는 말투. 나는 시간을 확인했다. 오후 6시. 밥 먹기 딱 좋은, 혹은 늦은 시간.
[네. 삼윤 아파트에요. 오시면 연락 주세요. 나가 있을게요.]
채팅방을 닫았다. 거래가 성사되었다.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아까처럼 다리가 후들거리거나 현기증이 나지 않았다. 발바닥에 힘이 단단하게 들어갔다. 나는 구석에 놓인 선풍기를 바라보았다. 덩그러니 놓인 낡은 기계. 이제 이 방에서 데리고 나가야 할 유일한 짐.
“가자.”
나는 선풍기 목을 한 손으로 덥석 움켜쥐고, 다른 한 손으로는 캐리어를 끌었다. 이상하게 발걸음이 가벼웠다. 1층 현관을 나서자, 아직 식지 않은 지열과 함께 저녁 특유의 냄새가 훅 끼쳐왔다. 어디선가 풍기는 찌개 냄새, 생선 굽는 냄새, 그리고 퇴근하는 사람들의 땀 냄새. 나는 선풍기 목을 옆구리에 낀 채 두리번거렸다. 아파트 입구 화단 쪽에, 헐렁한 면바지에 베이지색 티셔츠를 입은 여자가 서 있었다. 어깨에는 커다란 에코백을 메고 있었다.
“저기, 선풍기...”
내가 말을 걸자 여자가 고개를 돌렸다. 동그란 안경 너머로 보이는 눈매가 순했다.
“아, 식집사님?”
여자의 시선이 내 옆구리에 낀 선풍기로 향했다. 나는 선풍기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붉은 석양 아래서 보니 누렇게 뜬 플라스틱과 덕지덕지 감긴 테이프 자국이 더 도드라져 보였다. 예전 같았으면 부끄러워서 몸으로 가렸겠지만,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채팅으로 말씀드린 대로예요. 목 부러져서 테이프로 고정했어요. 각도 조절 안 되고, 계속 바닥만 봅니다.”
나는 덤덤하게 하자를 읊었다. 여자는 쭈그리고 앉아 선풍기 헤드를 조심스럽게 만져보았다.
“전기는 들어오죠?”
“네.”
“그래도 확인은 해봐야 하니까. 저기 꽂아봐도 될까요?”
여자가 가리킨 곳은 1층 엘리베이터 옆에 있는 공용 콘센트였다. 말투가 나긋나긋했다. 나는 선풍기를 들고 가서 코드를 꽂았다. 버튼을 누르자 낡은 날개가 힘겹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퇴근하는 사람들이 오가는 로비에 둔탁한 모터 소리가 울려 퍼졌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힐끔거렸지만, 나는 굳이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바람이 바닥으로 쫙 깔리며 여자의 운동화 끈 근처를 훑었다. 여자는 바람에 손을 대보더니, 사람 좋게 웃으며 말했다.
“어유, 소리가 좀 우렁차네요.”
“연식이 있어서요. 대신 바람은 세요.”
나는 뻔뻔하게 대꾸했다. 여자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코드를 뽑았다. 모터가 꺼지자 날개가 천천히 멈췄다. 여자는 지갑을 열어 천 원짜리 몇 장을 꺼냈다.
“상관없어요. 어차피 베란다 바닥에 놓고 쓸 거라. 고개 숙인 게 더 낫네요.”
여자는 딱 그 말만 남기고 돈을 건넸다. 왜 바닥에 놓고 쓰는지, 무엇을 위해 쓰는지 구구절절한 설명은 없었다. 까다롭게 굴거나 가격을 깎으려 들지도 않았다. 그저 덤덤하게 거래를 마쳤다.
“잘 쓸게요.”
여자는 선풍기 목을 소중하게 움켜쥐고 돌아섰다. 멀어지는 여자의 등 뒤에서, 선풍기의 부러진 목이 덜컹거렸다. 나는 여자가 사라질 때까지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내 손에는 꼬깃꼬깃한 지폐 뭉치가 쥐여 있었다. 언니가 남긴 마지막 유산이자, 오늘 나의 저녁 밥값. 나는 돈을 주머니에 찔러 넣었다. 어느새 해가 완전히 넘어가고, 가로등이 하나둘 켜지고 있었다. 매미 소리는 잦아들고, 아파트 단지 곳곳에서 그릇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아파트 단지를 빠져나와 큰길로 걸어 나왔다. 여전히 뜨거운 바람이 불었고 매미 소리가 쏟아졌다. 하지만 더 이상 숨이 막히지는 않았다. 도로변에는 저녁 장사를 시작한 식당들이 문을 열고 있었다. 돼지국밥, 김치찌개, 순두부... 그제야 내 몸속 깊은 곳, 텅 빈 위장이 신호를 보냈다. 꼬르륵. 어제 느꼈던 메스꺼운 허기가 아니었다. 그것은 무언가를 채워 넣고 움직이고 싶다는, 살아있는 몸의 정직한 아우성이었다. 나는 눈앞에 보이는 낡은 기사식당으로 들어갔다. 유리문에 붙은 메뉴판 가격이 보였다.
[된장찌개 8,000원]
약속이라도 한 듯, 내 주머니 속 지폐의 합과 같았다. 언니가 테이프를 감아가며 지켜낸 그 선풍기의 값이, 딱 1인분의 밥값인 것이다. 미닫이문을 열고 들어서자 후끈한 열기와 음식 냄새가 훅 끼쳐왔다. 혼자 밥을 먹는 택시 기사들, 뉴스 소리, 달그락거리는 식기 소리. 나는 구석 테이블에 캐리어를 세워두고 자리에 앉았다.
“된장찌개 하나 주세요.”
주문하는 목소리가 떨리지 않았다. 곧이어 뚝배기에서 끓는 찌개와 고봉밥이 나왔다. 보글보글 끓어오르는 붉은 국물. 어제 억지로 삼키려다 토해냈던 차가운 미역국과는 달랐다. 이것은 김이 펄펄 나는, 산 사람의 음식이었다. 나는 숟가락을 들었다. 뜨거운 국물이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자 식도가 찌릿하게 울렸다. 입천장이 데일 것처럼 뜨거웠지만 멈추지 않았다. 나는 땀을 뻘뻘 흘리며 밥을 국물에 말아 밀어 넣었다. 입안 가득 밥알이 씹혔다. 맛이 있다거나 없다는 감상은 사치였다. 그저 위장으로 무언가 뜨겁고 묵직한 것이 채워지고 있다는 감각만이 선명했다. 우아함도 없이 게걸스럽게 밥을 먹었다. 땀방울이 뚝뚝 떨어져 밥상 위로 번졌다. 살 것 같았다. 아니, 살고 있었다. 바닥이 보일 때까지 긁어먹고 나니, 등줄기에 땀이 흥건했다. 더위 때문인지, 뜨거운 밥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나는 물컵에 남은 물을 단숨에 들이켰다.
“잘 먹었습니다.”
나는 주머니에서 꼬깃꼬깃한 천 원짜리 여덟 장을 꺼내 카운터에 올려두었다.
“예, 안녕히 가세요.”
주인 할머니는 돈을 세어보지도 않고 서랍 통에 툭 던져 넣었다. 철컹. 금전 등록기가 닫혔다. 언니의 3년, 그 구질구질했던 테이프의 흔적이 아무렇지도 않게 식당의 현금 통 속으로 섞여 들어갔다. 그걸로 됐다. 특별할 것 없는 거래였다. 언니는 나에게 밥 한 끼를 먹였고, 나는 그 힘으로 다시 걸으면 된다. 나는 캐리어 손잡이를 잡았다. 선풍기 무게만큼, 딱 3킬로 정도 가벼워진 짐을 끌고 나는 식당 문을 밀었다. 다시 거리였다. 해가 완전히 저물어, 거리는 푸르스름한 어둠에 잠겨 있었다. 가로등이 하나둘 켜지고 있었다. 갈 곳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찜질방으로 갈지, PC방으로 갈지, 아니면 터미널로 갈지. 아무런 계획도 없었다. 하지만 겁나지 않았다. 배가 불렀으니까. 나는 캐리어 바퀴를 굴렸다. 드르륵, 드르륵. 경쾌한 바퀴 소리가 밤거리에 울려 퍼졌다. 나는 인상을 한 번 찌푸리고, 그냥 걸었다. 여전히 지독한 여름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