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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이 빛나는 밤에 Nov 24. 2023

에덴낙원에서 오빠의 일주년을 추모하다.

시리고 아프다.

감정이 북받치고 숨이 머질 것 같다.

이젠 잊힐 때도 되었는데 차가운 바람이 부는 날이면 어김없이 오빠의 그리움이 가슴 한복판에

허전함과 쓸쓸함으로 다가온다.

오빠는 갔지만 나는 아직도 오빠를 보내지 않았다

영혼이 오빠의 흔적들과 가슴 아리 중이었다.

참 분주한 삶과 마주했다.

억지로 바쁜 스케줄을 만들고 '그리움'이란 단어를 지우고 싶어서 아등바등거렸다.

여유가 찾아오면 곳곳에 오빠가 남기고 간 흔적들로 내 일상을 엉망진창 만든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분주한 삶에서 추억이란 두 글자를 꺼내오고 싶지 않았다.


한마디 말도 없이 떠난 오빠의 빈자리는 세월이 흐른다고 메워지는 게 아니었다.

오히려 보고 싶은 마음, 만나지 못하는 그리움이 눈물로 지새운 밤의 흔적들을 어찌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직접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 아픔을 논하지 말라.


지금이라도 툭 튀어나와서

"막내야, 어디야"

산책 가게 나와라"

이런 외마디 울림이 귓가에 서성거렸다.


오빠의 커다란 빈자리를 각자 메울 수 있는 마음의 크기로 아픔을 견디며 인내하는 중이었다.

꾹 참고 있던 울음보가 한 사람이 터지면 '펑'하고 도미노처럼 쓰러질 줄 알고 있었다.

우린 말없이 서로의 아픔을 껴안는 중이었다.


일주년 행사로 교회 식구 참석으로 추모 예배를 드렸다.

남을 위해 아낌없이 희생하고 배려하는 오빠의 마지막 모습이 감동과 아름다운 자체였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오빠의 빈 공간을 그리기 위해 바쁜 일상을 뒤로하고

함께 슬픔을 위로해 주는 귀한 자리를 베풀었다.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

오빠는 내 가슴속에 추억 한 자락을 남겼다.

오빠가 잠들고 있는 에덴 낙원의 끝 가을은 고요하고 쓸쓸했다.

한적한 낭만을 뿜어내는 애처로운 자연의 몸부림이 겨울을 밀어내는 느낌이었다.

싱싱했던 풀들이 시린 추위에 못 이겨 무색무취의 적막함만 남겼다.

연약한 자연은 추위에 투쟁 중이었다.


우리의 인생도 오르막과 내리막의 힘겨우기를 견뎌야만 더 튼튼한 성장의 기쁨을 누릴 수 있다.

자연의 섭리도 마찬가지였다.

추운 겨울을 이겨내면 싱싱한 봄의 무대가 펼쳐 쳤다.

쉽게 주어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리운 오빠는 먼저 갈 준비를 다 하고 아련히 사라졌다.

바쁘다고 잊고 지냈던 몇십 년의 공백을 떠나기 2년 동안 열심히 업적을 남기고 추억을 선물해 줬다.

가족여행으로 울릉도 여행을 추진해서 행복의 열매를 남겼다.

제주도 한 달 살기로 교회 분들과 우리 가족을 요일 별로 초대해서 여행의 즐거움을 선물했다.

내 고향 감바우에서 우리 가족이 한데 뭉칠 때는 신나는 댄스에 막춤과 탱고까지

눈치 보지 않고 떠들며 흥을 냈던 시절이 그립다.

시골 앞마당에 모닥불 피워놓고 한우고기와 자연산 송이버섯을 아낌없이 구매해서  온 가족이 함께 먹고 놀았다.

화합의 장을 마련하고 웃음의 도가니로 지친 삶에 기지개를 켰다.


좋은 것만 보면 가족과 함께 누릴 환경을 만드는 분위기 메이커였다.

혼자 많은 것들을 주고 갔기 때문에 오빠의 빈자리는 시간이 갈수록 크게 느껴진다.

저 담장 너머로 오빠가 걸어올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호두과자, 귤, 갈치, 빵, 떡, 송이버섯, 소고기, 산삼

오빠의 손을 안 거쳐 간 물건이 없다.

텅 빈 냉장고는 오빠의 그리움을 안고 산다.


돈이 많다고 그렇게 많은 것들을 주고 떠나지 않았을 것이다.

오빠의 나눔과 진심으로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은 헌신이었다.

자신을 먼저 챙기는 삶이 아니라 가족과 이웃을 챙기는 배려였다.

오빠는 천국행 열차에서 못다 한 꿈을 꾸고 있을 것이다.


남아 있는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오빠의 죽음 앞에서 절실히 느꼈다.

사람은 언제 죽을지 아무도 몰랐다.

태어날 때는 순차적으로 태어났지만 죽음은 순서가 없었다.

한 치 앞도 모르는 우리의 인생사 너무 욕심부리며 아동 거리고 살지 말자.


단지 두렵거나 나이에 한계를 두고 하고 싶은 것들을 미루지 말자.

지금 할 수 있는 사소한 것들에 도전하고 살자.

내일이라도 '죽음'이란 두 글자와 마주할 때

'참 잘 살다 갔다'

후회 없이 마지막손을 놓아주자.

가장 가까이 있는 가족에게 표현하고 살자.

말하지 않아도 아는 건 아무것도 없다.

오빠에게 쑥스러워서 '사랑한다'라는 말 한마디 못하고 우린 작별을 고했다.

따뜻한 밥 한 끼 대접하지 못했고.

다정한 손 한번 잡아주지 못했다.


너무 많은 것을 받을 줄 알았지 정작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오빠는 아무 때나 베풀고 간 사람이어서 그게 당연할 줄 알았다.

인생은 당연한 게 아니었다.

놓치고 나니 후회되는 일 투성이었다.


다시는 후회라는 두 글자를 붙들지 않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에 집중하고 살자.

오빠가 남기고 간 인생까지 더 열심히 살자.

그게 오빠가 남기고 간 교훈이었다.


깊어지는 가을밤에 마음껏 오빠의 그리움에 취한 날이다.

오늘은 마음껏 슬퍼해도 된다.

오빠는 갔지만 나는 오빠를 보내지 않았다.

오빠는 내 가슴속에 영혼이 잠들었다.


한 번뿐인 인생 후회라는 단어를 남기지 말고 두려움과 친구 하며 살자.

두려움은 내가 만들어낸 허상일 뿐이다.

부딪치고 나면 생각만큼 힘들거나 고통스럽지 않다.

어쩌면 별거 아닌 일에 나 스스로 한계를 정하며 산다.

우리는 무한한 잠재력을 아직 꺼내지 않았을 뿐이다.

내 안의 가치를 마음껏 발휘하며 살자.



추모예배를 드리고 가족들과 '세상에 모든 아침"에서 못다 한 그리움에 취했다.

오빠의 아련함을 잊은 듯 맛있는 음식과 쓰디쓴 인생을 논했다.

살아있는 사람은 각자의 드라마를 쓰느라 안간힘을 썼다.

죽은 자의 몫까지 열심히 살다 가자.!

만남은 훈훈한 이야깃거리를 낳고

헤어짐은 애절한 아쉬움을 남겼다.

우린 지친 삶을 풀어헤치고 서로에게 힘과 위로를 남겼다.

가족은 사랑이고 끈끈한 가래떡 같았다.


함께 할 수 있는 가족이 있어 참 행복하고 감사한 시간이었다.

아픔은 함께 나누면 반으로 줄고

기쁨은 두배로 행복을 끌고 왔다.

감정은 서로에게 전염력이 강한 마약이었다.


추운 바람에 꿋꿋하게 꽃 몽우리를 준비하고 있었다.

강한 시련에도 버틸 힘이 있다.

모진 풍파를 이겨냈을 때 단단하고 견고해지는 법이다.

그깟 추위 따위야!

그깟 두려움과 불안 따위야!

아무도 내 인생에 결정권은 오직 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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