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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이 빛나는 밤에 Nov 29. 2023

일과 삶의 균형

한가지 집중하니 나머지 소흘했던 것들이 무너졌다.


뭐가 그리 바빴을까?

내 일상에  집중하느라 잊고 있었다.

그건 핑계였다.

나를 위한 그럴듯한 자기 합리화가 맞았다.

시골에 한번 내려갈 생각은 있었으나 고속도로에 대한 두려움으로 연신 미루고 있었다.


이슬비가 내렸다.

내가 그렇게 생각했는지 추적추적 빗 방울이 옷깃을 스쳤다.

미리 장갑을 준비해서 손이 시리지 않았다.

차가운 바람이, 어느새 휘날리는 눈송이가 달리는 나를 반기는 눈치였다.

마음을 다 잡고 나왔으니 달렸을때의 뿌듯함을 알기 때문에 내 딪는 발걸을은 가벼웠다.

내가 그러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이다.


암 흙 속에 새어 나온 불빛이 반가웠다.

우산 쓰고 나온 이들.

휘날리는 눈발이 거추장 스러운지 바쁘게 움직이는 이들.

 유난히 젊어 보이는 부부가 반대편에서 같은 속도로 달리고 있었다.

그분들은 오른쪽 길, 나는 왼쪽 길. 

잔잔한 시냇물을 사이에 두고 우린 서로 다른 길을 달렸다.


 왠지 모를 동지애라도 느끼며 어느새 반환점에서 맞이할 생각에 마음이 바빴다. 

손이 시려서 안 되겠다.

잠깐 벤치에서 날아가기 전에 떠도는 생각을 정리하느라 꽁꽁 언 손가락 마디가 발걸음을 재촉했다.

 달릴 때는 몰랐으나 보통 추운 날씨는 아닌 모양이었다.


일과 삶의 균형을 찾기가 힘든 일상이었다.

내 거에만 집중하다 보니 소홀했던 부분이 하나, 둘씩 고개를 내밀기 시작했다.

스스로 산책을 했으면 좋으련만 내가  "산책하자고" 말하지 않으니 아들은 집에서

 꿈쩍도 안 하는 일상이 꼴 보기 싫었다.


지난주 일부로 달리기를 중지하고 아들의 시선에 맞춰서 늦은 밤 산책을 권하는 나였다.

망설임 없이 따라나서는 녀석이었다.

 한 공간에 있어도 굳이 서로의 안부를 묻지 않았다.

한동안 저녁 산책길에 서슴없이 털어놓은 아들의 일상을 듣는 재미가 쏠쏠했다.

갈팡질팡 하는 아들의 삶이 늘 걱정되는 나였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달리기의 공백이 나에게는 뭔가 하루 일과 중에 빠진 듯한 목마름과 허전함으로  자리했다.


며칠 전부터 아들의 눈높이를 버리고 과감히 혼자 달리기를 수행하고 있었다.

그랬더니 아들은 아니나 다를까?

밖으로 몸을 내밀  생각조차 없었다.

다 큰 녀석을 내가 언제까지 함께해 줘야 하나?

아니면 그렇게라도 함께 산책하고 아이 내면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야 하나?

고민이 되는 시간이었다.


거동이 불편해서 혼자 생활하기 힘든 엄마가 요양 병원에 입원하 신지 오랜 시간이 흘렸다.

연세가 있으셔서 몸이 아픈 건 당연하다고 내 편한 합리화에 스스로를 위로하는 시간의 연속이었다.

가끔씩 전화할 때면 통화 부재로 연결이 안 될 때도 많았다

어느 날은 격한 통증에


 "살면 뭐 하냐" 

그냥 고생 안 하고 죽으면 좋겠다." 


이런 마음 약한 소리로 자신의 통증을 호소했다.

엄마의 고통의 얼마나 힘들지? 내가 알리 만무했다.


어느 날은 목소리가 쩌렁쩌렁 반가워하시며 삶의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웃으면서 반기시는 엄마였다.

자식인지라 엄마의 변덕스러운 인생에 작게나마 영향을 주고받았다.


힘겨워하며 내 '하루'라는 삶과 투쟁하기 바쁜 일상에서 엄마와의 시간은 뒷전이었다.

갑자기 올라온 뜻밖의 소식에 엄마에 대한 미안한 생각이 스쳤다.


"한림 대 병원 예약 완료" 


가족 카톡 방에 공지 상황이 떴다.

무심했던 시간이 파노라마처럼 스쳐갔다.

큰오빠의 빈자리를 작은오빠와 큰 언니가 분담에서 어깨의 짊어질 무게만큼 지고 가는 삶이었다.

막내라는 이유만으로  한 템포 뒤에서 내 삶에 집중하기 바빴다.


차가운 추위와 벗 삼아 달리는데 엄마 생각이 났고, 그냥도 인생의 무게에 버거워하는 아들이 겹쳐 보였다.

내 삶의 주인공으로 나를 끌어올릴 수는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타인의 인생을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상황에 나도 모르게 자꾸 뒤로 밀어내고

 '회피'라는 단어와 마주했다.


머리로 아는 것과 행동으로 이해하는 것은 천차만별의 효과였다.

인생은 생각처럼 따라주지 않았고 마음처럼 금방 행동이 움직여주지 않았다.

미안함과 야속함의 교차 감정이 달리는 내내 무겁게 만들었다.



5킬로 완주를 끝내자마자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부재중이었다.

무거운 마음 한편을 뒤로하고 얇은 옷차림에 차가운 한기가 온몸으로 저려왔다.


발걸음은 어느새 붕어빵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부모 마음은 그런 거였다.

따뜻한 붕어빵을 아들에게 주고 싶었다.

나도 붕어빵을 무지 좋아했다.

6,000원의 행복을 손에 쥐고 빨라진 발걸음을 재촉했다.


집에 와서 다시 엄마에게 통화를 걸었다.

목소리가 밝아 보였고 온화한 미소로 딸을 반겼다.

부모는 그런 마음이었다.

한참 동안 전화 한 통 걸려오지 않은 자식에게 서운했을 텐데 그런 내색을 보이지 않았다.


낡은 수화기 넘어로 아련하게 들리는 한마디는 '건강 조심하라'는 소리였다.

늘 자식을 걱정하는 엄마의 절규에 마음이 시리게 아팠다.

나는 아직도 내 새끼 걱정하느라 소중한 에너지를 갈아 넣고 있었다.

아픈 엄마의 삶 일 부분에 아직도 자식을 걱정하는 소망이 앞서 있었다.


일주일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용기를 내서 고속도로를 운전하고 엄마한테 가겠다고 말했다.

엄마는 행여나 올 생각하지 말라고 신신 당부했다.

한 번도 고속도로를 운전해 보지 못하는 딸아이가 혹시나 위험한 순간이 올 수도 있으니

 절대 시도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새로운 도전을 하라고 뇌에서는 인지를 했지만 아직 나에게는 겁부터 났다.

딸아이가  곧 방학하니까 그때 함께 가자고 해서 그냥 미루고 있는 상황이었다.

시간은 늘 그 자리에 기다려주지 않는다.

인생도 다 때가 있는 것처럼 모든 것에는 다 시기가 있는 법이었다.


의료기술의 발달로 인해서 엄마의 통증이 병원의 힘을 빌려 많이 약화되길 빌어본다.

삶은 늘 수수께끼였다.

한 올 한 올 얽힌 실타래를 스스로 풀게 만드는 지혜의 여신이었다.

오늘은 내 인생에 가장 젊은 날!

완벽한 인생은 존재하지 않는다.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만족하고 감사하는 인생이 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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