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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이 빛나는 밤에 Dec 02. 2023

부모라는 짐은 이미 무겁다.

자식을 믿어주고 기다려주자.


보모라는 단어 만으로도 등에 큰 보따리를 지고 사는 것 같다.

내 인생....

잘 이끄는 것만으로도 너무 벅차다.

아이의 인생을 모른 척 지나치기 힘듦 삶이었다.


어제의 짧은 에피소드를 가슴에 묻었다.

잠깐의 영상이 지워진 흔적을 불 쑤시게처럼 건드렸다.

지나영 교수님의 5분의 짧은 영상이 강하게 스파크를 남겼다.


"저 누구인데요. 왜 아무개가 전화를 안 받아요"

어제 현장에서 바쁘게 포장 엄무를 하며 정신이 없는 순간에 한 통의 전화와 마주했다.

저장된 번호에 누구인지 표시가 되어 있어서 의아해하며 전화를 받았다.


동탄역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전화를 안 받아서 


"혹시 무슨 일 있는 건 아니지요"


아들 친구의 전화였다.


시간은 11시를 넘긴 상황이었다.

사무실로 출근하기 전에 자고 있는 아들을 깨워서 아침 먹으라고 한 시간은 9시였다.

일어나서 활동을 하는 척했기에 말없이 출근했다.


삼사 일전에 친구랑 영화 보기로 했다고 자랑하는 아들의 목소리가 귓가에 들렸다.

아들의 일상을 궁금해하지 않았다.

가끔씩 자신의 이야기를 떠들어 되면 말장단 맞춰주고 공감해 주는 게 다였다.


내 삶을 살기에도 바쁘고 몸이 지친 일상이었다.

그보다도 아들의 인생에 내가 더 이상 해 줄 수 있는 게 없다는 걸 알기에

그냥 믿고 기다리고 응원해 주면서 속절없이 가슴앓이 중이었다.

부모는 알면서도 속아주고, 모르면서도 묻지 않는다.


짧은 순간 아들 친구의 전화로 마음이 엉망진창이 되었다.

입안에서는 투덜거림이 연속이었다.


"지금이 몇 시인데 아직도 자?


부모는 뼈 빠지게 일하는데 젊은 새끼가 정신이 머리가 있는 거야.


도대체 무슨 정신으로 사는 거야.


이놈의 새끼를 "


늦은 시간에 귀가하는 우리 남편, 

20살을 넘긴 아이들은 항상 늦은 시간까지 뭘 하는 지? 

새벽에야 잠이 든다.


뭐, 나라고 별 수 있는가?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시간이 하루의 시간을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밤늦은 시간까지 뭘 붙들고 놓지 못하는지?

새벽녘에 취침 모드로 향하는 나이기에 아침에 일어나면 늘 8시가 넘었다.

늦게 시작하면 하루가 허둥거리고 짜증과 대변하는 시간의 반복이었다.

알면서도 잘 고쳐지지 않은 일상과 마주함이었다.

아들이 늦게 잠드는 걸 알기에 몇 번 잔소리를 했지만 뭐 그때 분이고 

나 또한 지키지 못하는 일상이라 특별히 신경을 안 썼건만...


11시 넘어서 아들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여전히 벨 소리만 요란하게 울릴 뿐

아들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그동안 남편이 열심히 갈고 닦아 놓은 물건들을 예쁘게 포장하는 작업이었다.

친구랑 약속을 까먹고 나가지 않은 아들에 대한 '화'로 일에 집중력이 떨어졌다.

사람의 기분은 한순간에 나락으로 빠졌다.

한참 후에 바지가 다 찢겨 있는 모습을 보고 얼마나 웃겨는 지 모른다.



랩을 잘라야 하는데 틈틈이 바지에 흠집을 냈나 보다.

너무 웃어서 사진으로 남겼다.

마음을 비우고 다시 평정심을 찾을 때쯤 아들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친구랑 약속을 깜박했다고 기억력이 없어서 걱정이란다.

미심쩍은 목소리로 몇 마디 까불더니 친구가 전원이 껴져 있어서 지금이라도 약속 장소로 나간단다.

혼자 영화 보고 있다고 결론을 내렸나 보다.


아들은 뒤늦게 동탄역인 약속 장소에 나갔지만 친구의 전화기가 꺼져 있어서 

30분 기다리다 다시 집으로 왔나 보다.

아들이 하는 말


"친구가 전화를 일부로 안 받는 것 같아.


화가 많이 났다 봐!"


미안한 마음과 불안한 마음의 교차였을까?


"아니야 친구가 영화를 보고 있거나 배터리가 없어서 꺼졌을 거야'


괜스레 위로 아닌 말로 한마디 던져졌다.

그것도 아련한 수화기 너머로 아들이 얼마큼 끌림을 받았는지 모르겠다.


날씨가 추워진 탓에 연신 맑은 콧물이 주르륵 흘렀다.


사장 눈치를 안 봐도 되는 상황이라서 옆에 두루마리 화장지를 곁에 두고 흐르는 코를 닦아 가며 일을 했다.

추워진 계절에는 비염을 달고 사는 나였기에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코를 풀어가며 한나절 내내 작업하느라 체력이 고갈되고 기운이 없었다.


"아들아, 비염 약 좀 사다 놔!


안 졸리는 약으로 사줘라"


가족 카톡 방에 내 의사를 전달하고 원하는 작업을 마치고 집으로 귀가했다.



잠깐 동안 안 하던 작업을 하고 나니 온몸이 피곤에 절여 있었다.

아직도 해야 할 일들이 퇴산인 남편을 남겨 두고 홀연히 현장에서 집으로 향했다.

참 가장의 무게가 안쓰럽고 힘겨워 보였다.


집에 오니 아들은 온대 간 데 보이지 않았다.

거실이며 아들 방에는 불이 환하게 키워져 있었다.

흔적으로 봐서는 어디 멀리 간 것 같지 않았다.


아들 얼굴을 보면 무슨 말을 해 줄까?

공중을 떠돌았지만 아들이 없어서 다행이었다.


전화를 걸었지만 받지 않았다.


"띠리릭'


잠깐의 여유를 누리지도 않았는데 현관문 누르는 소리에 몸이 반응했다.

아들의 얼굴이 나와 마주했다.


"어디 갔다 와"


한마디의 물음에 아들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엄마 비염약 사 왔지"


미워하려야 미워할 수 없는 아들의 행동에 나도 모르게 아들을 살며시 안아줬다.


부모는 늘 그런 거였다.

하고 싶은 말들은 많았고, 궁금한 적도 많았지만

말을 아끼고 아들을 이해하려는 마음이 켰다.


어제의 일화를 잊고 있었는데 방금 전에 지나영 교수님의 짧은 영상이 내 귓가를 서성거렸다.



▶우리 아이의 길을 부모가 찾아줘야 할까?


자녀의 잠재되어 있는 특별함을 어떻게 찾아줘야 할까요?


부모님이 안 져도 되는 짐까지 다 져요.


부모라는 짐이 이미 무겁잖아요.


거기다가 불필요한 짐까지 다 올려서 지고 가요.


보모가 찾아 줘야 한다는 생각을 버려라.

부모가 주어야 할 것!


충분한 사랑, 존재 가치, 등대 (가치 교육: 정직, 성실, 배려, 기여)를 가르쳐 주자

그리고 나머지 아이들의 영역을 막지 말자.


<지나영 교수님의 영상>


내가 뭘 찾아주고 내가 뭘 시켜야 하는 생각을 버려라.

그냥 아이를 믿어주라.

아이 안에 다 가능성이 있다.

부모가 뭐든 다 해주려고 하지 말자.

아이 스스로 자신이 좋아하는 거 아이가 원하는 걸 찾을 수 있게 기다리고 믿어주자.


지금 생각해 보니 무한 한 사랑만 줬다.

나머지 것들은 아이에게 가르쳐 주지 않았다.


"있는 자체로 네가 소중하다"


이런 말을 던져 주지 못했다.

배려, 정직, 기여,존중..

 이런 단어들의 중요성을 알려주지 못했다.

아이를 믿어주지 않았고 기다려주지 않았다.

성질 급한 엄마라서 아이가 못하는 것들을 그냥 내가 해 줬다.


그게 문제였다.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 줘야 했는데 귀찮아서 물고기를 잡아 줬다"


이제야 기다리고 믿어주는 엄마가 되려니 너무 힘들고 멀었다.

인생은 긴 여정이라 천천히 믿고 기다려 본다.

아이의 인생이 아니라 내 인생을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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