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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란카피 Jul 02. 2022

부동산 경매, 남의 얘기 아닌가요?

듣다 보니 내 얘기가 될 수도 있겠다 싶다.

누구보다 스마트하고 누구보다 젠틀한 그와의 저녁이었다. 인생에 굴곡이라고는 없을, 실패라는 워딩은 어울리지 않을 그런 사람이었다. 왠지 부동산에도 일가견이 있어 어떤 성공 스토리를 들려줄까 사뭇 기대가 되는 그런 날이었다. 분위기가 무르익을 무렵 누군가 부동산 이야기를 꺼냈고 그의 입술 끝이 살짝 흔들리는 것을 감지했다.




몇 해 전 그의 첫 부동산 경매 도전, 그날 비장한 각오로 첫 입찰에 나선 그는 낯선 기일입찰표를 받아 들었다. 참여 자체가 너무 감격스럽고 설렜다. 신중에 또 신중을 기해 입찰 가격을 써냈다. 그 짧은 기다림이 1년처럼 느껴졌다. 드디어 입찰의 순간, 설마설마 그가 낙. 찰. 되었다. 로또에 당첨된 듯 큰 소리를 치고 말았다. 모두 그를 따갑게 바라봤지만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그 따갑고 부러운 시선이 냉소의 시선으로 바뀌는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수상한 분위기를 느낀 그는 낙찰 가격을 보게 되었다. 설마 아니야. 이건 아닐 거야. 내가 그럴 리가 없어. 이게 말이 되냐고. 하지만 현실이었다. 어이없게도 그는 '0'을 하나 더 붙여 써냈던 것. 그렇게 그의 첫 경매는 낙찰되었지만 실패했고 고스란히 입찰보증금을 날렸다.


그의 인생에 다시는 부동산 경매라 없을 거라며 다짐에 또 다짐을 했다. 그리고 몇 달 전 그는 언제 그랬냐는 듯 두 번째 경매에 임하게 되었다. 다시는 그런 어이없는 실수 따위는 없다는 보다 더 비장한 각오로 말이다. 기일입찰표를 대체 몇 번을 봤는지도 모를 만큼 종이가 뚫어져라 보고 또 봤다. 드디어 입찰의 순간, 그는 또 기막히게 낙찰의 환희를 맞았다. 조상이 도운 거야? 실화 맞지? 또 뭔가 잘못된 거 아니지? 난 역시 러키 가이야! 온 기운이 나한테 몰려있는 거야.


잔금 납부 기한에 맞춰 잔금을 준비하던 그는 또다시 청천벽력을 맞았다. 이번에 낙찰받은 이곳은 현재 활발히 재개발이 진행되고 있는 구역의 5평 남짓한 소형 토지였다. 5평이 뭐가 이렇게 비싼 거야! 하면서 그는 그래서 재개발 입주권을 받겠다는 부푼 기대감에 입찰에 응했던 것이었다. 5평이면 입주권이 안 나올 텐데요? 했더니 얼굴빛이 바뀌며 그래서 결국 또 그는 엎고 말았단다. 이번에도 역시 입찰보증금을 날리게 된 그. 부산의 재개발 구역의 토지 입주권은 최소 60제곱미터 이상이어야 한다는 사실을 그는 모르고 있었던 것.

@ pixabay


몇 해 전 부동산 경매 온라인 카페의 토지 세션에 참여했다가 저녁 자리에 함께하게 되었다. 열 여명 남짓한 참석자 가운데 한 명을 제외한 모든 분들이 다 직장인이었다. 당시 부동산에 큰 관심이 없었던 나에겐 경매라는 영역 자체에 부정적인 시각이 다분했던 때였다. 원룸을 통째로 낙찰받아 명도를 진행하며 명도를 진행하며 원룸을 떠나게 해야 했던 대학생이 너무 가슴 아팠다는 그는 그래도 그 순간은 냉정해질 수밖에 없었단다. 이후 상간 건물을 통째로 낙찰받은 그는 지하의 노래방 임차인이 몇 달째 버티며 영업을 해 골칫거리라며 한숨을 쉬었다.


신세계였다. 부동산 경매라는 신세계. 이렇게도 부동산을 가질 수 있는 거구나. 누군가의 아픔도 분명 동반해야 하지만 어쨌든 또 다른 채널에 대해 배울 수 수 있는 기회였다. 작년 친구가 한 아파트를 경매로 낙찰받아 입주했다. 2순위와 불과 60만 원의 차이로 낙찰받게 된 친구는 극락, 2순위인 분은 나락이었다. 심지어 2순위의 그분은 현재 그 아파트에 거주하고 있던 임차인이었다. 한 달이 되어도 두 달이 되어도 2순위이자 임차인인 그들은 집을 비워줄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 집을 낙찰받기 위해 얼마나 애를 썼고 이 집에 얼마나 큰 애착이 있는지 그들은 지속적으로 어필했다. 세상에 그렇게 고상한 지식인이 또 어디 있을까 싶을 만큼 유난을 떨었다.


참다못한 친구가 문자메시지 하나를 보냈다. "아줌마! 아줌마가 제 집에 지금 무단으로 얹혀살고 계신 거예요. 당장 나가 주세요." 백옥 같은 자존심에 크레치 한방을 먹은 그들은 그날로 1주일 후 집을 비웠다. 한 달간의 인테리어 후 입주했다. 감격은 입주만이 아니었다. 입주 후 몇 달 후 그 집의 시세는 두배가 되었다. 50평 후반대의 대형 평수 아파트의 위력이었다.

@ pixabay


퇴근 후 습관처럼 부동산 경매 물건을 검색한다. 내가 원하는 지역의 주택, 토지 형태에 따라 검색해 물건을 찾고 권리 분석을 해본다. 이 물건의 감정평가액은 왜 이런지, 왜 유찰이 되었는지, 임차 관계는 어떻게 되는지, 선순위 권리는 어떻게 되는지, 얼마를 써내면 가능성이 있을지. 물론 아직 단 한본도 실제 경매에 도전해보지는 못했다. 하지만 이러한 과정을 통해 부동산을 바라보는 관점의 확장이 분명 있으리라 본다. 언젠가 조만간 평지 임야 토지 경매를 꼭 해보리란 버킷리스트를 실천해 볼 수 있기를. 부동산 조정기에도 부동산에 대한 관심을 끊지 말기를. 지속된 관심이 결국은 다시 이어져 부동산의 숨통을 트일 수 있는 힘이 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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