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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란카피 Aug 04. 2022

일하지 않아도 괜찮아!

퇴사 후 자유+인이 된 어느 늦은 청년 이야기

이제 50대 초반인 그는 여전히 청년이다. 대학시절 광고동아리에서 광고공모전 수상을 휩쓸던 그는 여지없이 광고 카피라이터를 시작으로 메이저 광고회사의 AE로 탄탄대로를 달렸다. 하지만 늘 그의 그림자처럼 따라온 그의 사명은 바로 노쇠한 어머니의 병간호였다. 당시 주간에 어머니의 요양을 도와주는 분이 하루 종일 돌봐주시면 저녁부터 다음날 아침까지는 고스란히 이분의 몫이었다. 심지어 주말마저도.


그는 저녁 어머니 식사를 챙겨 드리고 어머니가 잠이 들면 해운대 동백섬으로 가 혼자 스스로를 달래며 산책을 하곤 했다. 10년이라는 긴 시간을 이어 달려오던 그는 광고회사에 퇴사를 알렸고 우연히 하룻밤 제주도 여행을 떠난다. 하루를 묵은 호텔과의 인연으로 호텔 마케팅 담당으로 훌쩍 떠나게 된다. 어머니를 혼자 두고 와야 해 요양병원에 모시던 날 그는 펑펑 울었다. 손을 놓지 못하는 어머니를 두고 그는 제주로 떠났다.


그렇게 1년의 제주 생활을 이어오던 어느 날, 부산에 계신 어머니가 위독하다는 연락을 받고 부랴부랴 도착해 마지막 어머니 가시는 길 손을 잡아 드렸다. 그렇게 불꽃같던 어머니와의 시간이 한순간에 꺼져버렸다. 그 길로 제주 생활을 접었다. 그리고 다시 부산으로 돌아왔다.


잠시의 휴식기를 가지던 그는 또 우연히 수입 자동차 딜러사의 마케팅팀장으로 입사한다. 다양한 마케팅 경험을 몇 년째 이어오던 그는 점점 어려워지는 자동차 시장 환경을 바라보며 또한 사내 인원 감축의 분위기를 감지하고 동료를 위해 선뜻 사표를 낸다. 또한 당시 아이들에게 온다는 수족구로 건강에 이상이 생겼다는 시그널이 왔다. 그게 40대 후반의 상황이었다. 건강을 잃는 것보다 건강을 지키고 싶었다.


물롣 그냥 퇴사를 하진 않았다. 퇴사를 위해 그동안 저축했던 돈을 시드머니로 투자를 통해 살아갈 비용을 마련했다. 월세의 파이프머니 라인 또한 큰 몫을 했다. 무턱대고 사표를 내기보다 준비하고 또 준비하 파이어를 한 셈이다. 퇴사를 하고 그 길로 그는 지금까지 2년 남짓 일을 하지 않고 있다. 아니 정확히 우리가 아는 직장인의 루틴을 걷고 있지 않다.


아침에 일어나 책을 읽고 영어공부를 하고 주식 개장 시간에 맞춰 오전 주식 탐색과 거래를 마치면 맛있게 차려 혼점을 하고 오후 영화보든, 책을 읽든, 집 앞 바닷가를 산책하든 그만의 시간을 가진다. 그런 루트의 하루하루를 스스로에게 아무런 죄책감이 없이 지낸다. 물론 미혼이라 가능한 생활 루틴이라면 할 말이 없다. 미혼의 청승이 아니라 미혼의 혜택을 누구보다도 맘껏 잘 누리고 사는 셈이다.


그동안 벌어 저축한 돈을 비롯해 보유한 부동산에서 매월 소소하게 들어오는 월세와 주식 수익으로 적게 벌어 적게 쓴다. 물론 더 많이 써도 되지만 스스로 자제하며 긴 호흡으로 미래를 향해 간다. 아니 아직도 직장을 다니고 있지 않아요? 일을 하고 있지 않다고요? 그동안 많이 벌었나 봐? 따위의 우려와 배려는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누군가의 시선보다는 나의 만족이 더 소중하기에. 누구도 그의 인생을 대신 살아주지 않고 그의 인생은 그만이 살 수 있기에.


그럼에도 그는 찌질하게 살지 않는다. 누구보다 잘 먹고 잘 입고 잘 쓴다. 크리에이티브하며 패션 센스 넘친다. 꼭 직장을 다녀야 하고 직장을 다니며 돈을 벌어야 하고 직장인이라는 타이틀이 있어야 하는 삶에서 해방되었다. 결혼을 하지 않은 비혼에 대한 따가운 시선에서도 과감히 해방되었다. 일을 하지 않아도 소소한 지출로 충분히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음을 몸소 보여주고 있다.


눈을 뜨자마자 씻고 입고 출근길에 허덕이고 하루 종일 업무에 찌들고 사람에 치이고 그러다 눈을 뜨면 퇴근 시간이 되어 주섬주섬 쭈뼛쭈뼛 편치 않은 마음으로 퇴근하는 매일의 루틴, 그 루틴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가치관으로 자신만의 시간을 자신만의 신념을 채워가며 남은 시간을 더 자신에게 오롯이 투자할 수 있는 아직 절대 늦지 않은 청년의 그.

여전히 청년인 그


그래도 아직 늦지 않았으니 더 늦기 전에 꼭 직장 생활을 하라고 부추기는 나지만 마음속으론 너무 부러워하고 있다는 건 숨길 수가 없다. 23년 직장 생활 중 모처럼 업무로부터 큰 해방을 맞이한 휴가 끝에서, 브런치 작가라면 누구나 평일 낮 카페에서 노트북으로 글을 쓰는 로망을 가지듯 오늘 처음으로 카페에서 노트북으로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를 돌아보며 그에게 꼭 이 말을 해주고 싶다.


형! 사실은 일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더 놀고 즐겨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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