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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란카피 Jan 19. 2023

평생의 꿈, 교수되고 두 달 만에 관둔 사연

20여 년 전 20대에 첫 직장의 입사동기로 만난 그는 인생의 단 하나의 목표가 교수라고 했다. 디자이너였던 그는 누구보다 열심히 일에 매진했고 성과도 좋았다. 2년제 대학을 나온 그는 직장 생활을 하며 4년제 대학교에 편입했고 넷플릭스 더글로리의 문동은 정도는 아니지만 야근에 주말 출근도 불사하며 학업을 이어갔다.

오직 단 하나의 목표, 교수를 위해.


직장을 옮겨서는 대학원 석사 과정에 매진했다. 물론 직장의 양해를 구하고 그만큼 더 업무에 충실했다. 고된 수업, 산더미 같은 과제 발표, 직장인에 대한 배려 따위 없는 대학원 과정 속에서 수차례 때려치울까를 고민했지만 멈출 수 없었다. 야근도 주말 출근도 고맙게 여기며 그 고되고 모진 시간을 이겨왔다. 오직 단 하나의 목표, 교수를 위해.


직장 생활을 관두고 디자인 회사를 차렸다. 직원을 많이 둔 규모 있는 회사는 아니었지만 스스로의 포트폴리오를 쌓으며 기업과 기관의 파트너로서 뛰고 또 뛰었다. 그 사이 홍익대 대학원 과정을 수료하고 국립대 박사 과정을 이어갔다. 박사 논문의 과정에서 그야말로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꿋꿋이 쓰러지지 않고 해냈다. 그리고 박사학위를 받았다. 디자인 회사에 쏟는 열정만큼이나 학위에 진심이었고 교수가 되기 위해 그는 평생을 바쳐왔다. 오직 단 하나의 목표, 교수를 위해.


그런 그가 작년 9월, 교수 임용이 되었다는 뛸 듯이 기쁜 소식을 알려왔다.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그토록 평생 간절했던 꿈을 이룬 순간을 응원할 수 있어 고마웠다. 그날 참으로 오랜만에 막걸리 한잔을 기울이며 이제는 중년이 되어버린 첫 직장의 입사동기와 마주했다. 한 지방의 2년제 대학 교수 임용이라는 것보다 꿈을 이룬 자체만으로도 우린 너무나 기뻐 얼싸안았다.


그리고 두 달 후 우린 다시 만났다. 그사이 너무나 수척해진 그를 보며 뭔가 잘못되었음을 직감했다. 학교에 사표를 내고 오는 길이라고 했다. 이건 도무지 설명을 할 수 없는 열악한 환경이 더란다. 제대로 된 조교가 없어 조교 역할을 해야 하는 것까진 그렇다 치고 모든 학사 행정을 비롯해 당장 신입생 모집을 위한 세일즈를 해야 하는 상황이더라는 것.


수많은 영업이 있지만 학생 세일즈가 있을 줄이야. 첫 개설되는 학과라 당장 정원을 채우지 못하면 학과 자체가 사라질 수밖에 없는 현실. 진학 설명을 위해 전화를 돌리기 시작했다. 인문계 고등학교는 단 한 곳도 오라는 곳이 없었다. 실업계 고등학교 역시 친구들에게 설명을 하면 시큰둥했다. 조금만 노력해도 4년제 갈 수 있는데요?라는 빈정거림이 돌아왔다.


평생교육원을 비롯해 갈 수 있는 기관들엔 모두 연락하고 찾아갔다. 마지막이란 심정으로 예비군 훈련장에 찾아가 이 학교만의 장학 제도와 혜택에 대해 목이 아프도록 설명을 이어갔다. 하지만 단 한 곳, 단 한 명도 호의적이지 않았다. 빈 손으로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쓸쓸했다. 이러자고 이토록 평생을 바쳤던가. 깊은 회의감이 밀려왔다. 정원은커녕 신입생은 없어 보였고 결국 그전에 그는 평생을 꿈을 와르르 무너뜨리며 사표를 내고 온 거였다.


폭풍 같은 시간이 휘몰아치고 석 달이 지난 지금 그는 아내와 제주 한달살이를 떠났다. 이제 대학생이 된 두 아이들은 집에 두고. 둘만의 치유를 위한 오직 자신들만을 위한 여행을 말이다. 단 한 번이라도 오롯이 자신을 위해 떠나 본 적이 있을까? 물론 급한 일을 대비해 디자인을 위한 매킨토시를 가져갔다지만 모든 것을 내려놓고 이 시간만큼은 건드리지 마! 나 지금 쉴 거야! 작정하고 떠난 완전한 휴식의 시간.

시간 가는 줄 모른다는 그의 제주 생활

다시 어떤 꿈을 가질까라는 생각보다 아무 생각하지 않고 오직 놀다만 왔으면 하는 마음이다. 노는 게 힘이니까. 놀아야 다시 일어서서 일할 수 있으니까. 돌아오면 다시 막걸리 한잔을 나눠야겠다. 나는 과연 평생의 꿈이 뭐였는지, 그 꿈을 이루고 살아가고 있는지, 어떻게 살아가는 게 잘 사는 건지. 늦은 후회하지 않도록 지금 당장 무엇을 해야 하는지 오랜 우정의 그와 맛있는 대화를 나눠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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