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이 아닌 위로가 필요한 거거든요
격심한 스트레스로 트라우마가 생길 만큼 출근 자체가 힘든 그녀였다. 직무 자체가 늘 긴장의 연속, 단 하나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을뿐더러 실수엔 그보다 몇 배의 질책이 뒤따르는 버거운 자리였다. 15년의 긴 세월 월급이라는 보상에 취해 스트레스를 와그작와그작 하루하루 씹어 먹으며 살아왔다.
결혼 2년 차인 그녀, 2세를 생각해야 할 시점, 더 이상은 스트레스로 못살겠다 마음먹은 그녀가 점심 식사 자리에게 임원에게 속내를 드러냈다. 퇴사를 하게 되면 조용히 관두는 게 아니라 그동안 쌓여왔던 것들을 속시원히 풀어놓고 가겠다고. 그동안 속으로 켜켜이 겹겹이 쌓아두었던 스트레스를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울분에 차 쏟아냈다.
절대 그래선 안된다. 그게 오히려 너에게 독이 되어 돌아온다. 회사를 나가게 되면 결국 회사가 얼마나 큰 존재인지를 새삼 느끼게 된다. 혹여나 지금의 회사에 필요한 영업이 생기거나 했을 때를 생각해 보라. 작은 실오라기 같은 연결의 끈 하나도 사라져 버리게 된다. 그러니 지혜롭게 조용히 회사를 관두면 하나라도 더 챙겨 받는다. 그게 퇴사의 기술이다.
그 자리에서 그녀는 넵넵 버전으로 고개를 끄덕였지만 점심을 먹고 돌아온 오후 내내 속이 불편했다. 아니 마음이 더 불편했다. 그녀가 그에게 얻고자 한 건 그런 해답이 아니었다. '해결할 수 있는 해답이 아니라 나 정말 이렇게 힘들어요. 그러니 제발 공감을 해줘요.' 그거 하나였다. 설령 앞으로의 대안 제시가 절실한 상황이더라도 그녀에게 필요한 건 '힘들지? 고생이 많아. 하지만 좀 더 힘내보자.' 그거였던 거다.
누가 힘든 걸 모르냐고? 누가 고생하는 걸 모르냐고? 안다. 당연히 안다. 하지만 알수록 더 알아주고 공감해야 한다. 여자의 경우에만 그런 건 또 아니다. 존 그레이의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의 상황 대입이 꼭 그대로일 수는 없다. 사람마다 원하는 게 해답일 수도 있고 공감일 수도 있다. 남녀를 떠나서 말이다.
하지만 어떠한 상황에서도 공감이 우선 되었으면 좋겠다. 롸잇 나우! 당장 해답을 내놔! 가 아니라면 정말 힘든 나에게, 정말 쥐구멍이라도 찾아 숨고 싶은 나에게 답을 알려주기보다 위안의 한마디가 더욱 값지지 않을까. 물론 이마저도 개인 취향이 있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