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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란카피 Jan 30. 2024

아내의 밤마실 안주 도시락을 싸주었습니다

아내는 술을 한잔도 마시지 못합니다. 가끔은 집에서 맥주 한잔을 같이 하고 싶을 때도 있지만 술 못 먹는 사람에겐 그것도 고역이라 혼자서 홀짝이곤 하죠. 덕분에 술자리로 늦는 경우는 없어 그거 하나는 기가 막히게 다행입니다.


아이들 가르치는 일을 하다 관두고 간간히 과외를 하며 집에 있게 된 아내가 어느 날, 조금은 흐트러지고 무너진 자존감으로 힘겨움을 호소하더군요. 타이밍 잘 맞지 않는 주식 탓에 남들보다 뒤처져 보이고 집에만 있다 보니 한없이 작아져버린 무기력해진 자신을 발견한 거죠.


살림을 아주 잘하진 않지만 인생 최대치를 끌어올려 아이를 위해 밥을 차리고 아이의 학원 스케줄에 맞춰 동분서주하며 몇 과목은 직접 가르치는 아내를 볼 때마다 고마운 마음입니다. 이번 계절엔 어떤 브랜드의 명품백을 하나 사볼까라는 생각은 아예 없고 아이에게 어떤 경험을 선물할까를 먼저 고민하는 아내입니다. 그래서 참 고맙네요.


그런 아내가 모처럼 친구 둘과 토요일 저녁 밤마실을 간다고 합니다. 도시락 매장을 하는 친구의 가게에서 영업을 마치고요. 술을 마시지 못하는 아내라 탄산수 하나와 과자, 베트남에 다녀온 지인이 준 캐슈넛, 그리고 떡볶이를 만들어 도시락 가방을 싸주었습니다. 친구 둘은 매운 걸 좋아하지만 맵질이인 아내를 위해서 미리 간장 떡볶이를 만들어 가족이 함께 먹었죠.

진간장에 데리야끼소스, 맛있는 소고기만 있으면 금방 만드는 간장 떡볶이입니다. 아이는 아빠가 만들어준 요리 중에 (요리라고 할 수 있을까마는) 최고라고 엄지 척을 해주었습니다. 순삭 한 간장 떡볶이, 그리고 이어 아내를 위한 오리지널 떡볶이를 만듭니다.

선물로 받았던 수제 고추장은 매워도 너무 맵습니다. 시판 고추장으로 해야 맛있지만 냉장고에 있는 그 매운 고추장을 꺼냅니다. 고춧가루와 설탕(하필 유기농)만으로 끓여니다. 맛있으라고 무와 당근, 대파, 그리고 새우를 넣었죠.

놀이터로 보낸 아이처럼 아내의 무척이나 오랜만의 밤마실이 걱정됩니다. 행여 떡볶이가 맛이 없을까 봐. 다들 술을 마시는데 혼자 외롭진 않을지. 한참의 시간이 흐른 후 맛있게들 떡볶이를 먹었다는 카톡이 날아왔습니다. 치킨도 주문해서 배불리 먹었다고요. 11시가 되어도 오지 않는 아내에게 아이가 잠을 자지 못하니 너무 늦지는 말라고 연락을 했죠. 술을 마시지 않았으니 대리운전을 부를 필요도 없어 금세 집으로 돌아온 아내.


그렇게 아내의 토요일 밤마실 떡볶이 도시락은 제 역할을 톡톡히 하고 돌아왔습니다. 조만간 다시 밤마실을 간다고 해도 기꺼이 다른 음식을 만들어줄 준비가 단단히 되어있습니다. 내향인 부부는 또 이렇게 생의 한 찰나의 주말을 재밌게 보내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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