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파란카피 Feb 02. 2024

3층 주택의 초등학교

초등학교 3개의 계급 사회

이제 초등학교 고학년이 된 아이. 1학년부터 지금까지 탑을 쌓듯 하루하루 걸어온 느낌이다. 선생님은 좋은 분일까. 아이들과 잘 어울려 지낼까. 아이들 사이에 행여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사소한 일로 상처를 입진 않을까. 부모는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순간 걱정인형이 된다. 아니 어쩌면 태어난 그 순간부터. 부모에서 학부모가 되는 순간, 비교인형이 되기 시작한다.


3층 사람들


제일 높은 층에 사는 그들은 그들만의 커뮤니티에 자부심을 가진다. 내 아이가 '영재'여서 '영재'인 아이들과 어울려야 한다. 태어난 영재와 만들어진 영재가 있겠지만 어쨌거나 영재인 내 아이는 세상 누구보다 특별하기에 학원 환경도 친구도 남달라야 한다. 초등학생이지만 밤 12시에 학원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 미처 끝내지 못한 다른 학원 숙제를 새벽 1시까지는 하고 자야 한다.


아이들도 그게 운명이고 숙명이라 생각하고 따른다. 때론 너무 힘들지만 그래야 부모가 좋아할 거고 '의사'가 될 수 있을 거란 희망을 가질 수 있으니깐. 3층 사람들의 궁극의 목표는 '의사'다. 모두가 이룰 수는 없는 꿈이지만 그중에 소수는 그 꿈을 이룰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학원도 친구도 엄마들의 커뮤니티도 특별한 세팅에 들어간다. 여행은 필수, SNS는 선택.


2층 사람들


3층은 3층 만의 세계라 생각하고 할 수 있는 만큼만 아이의 길을 열어주는 사람들이다. 기본적인 학원에 아이가 원하는 예체능을 섞어 스케줄을 짜고 최소한 밤 10시 이전에는 학원 수업을 마칠 수 있도록 한다. 기본적인 학원 수업과 가끔 가족 여행을 즐기고 3층에 대한 아이의 이야기에 신경이 쓰이는 사람들이다. 아이의 부러움과 동경을 어떤 방식으로 설명해야 할지, 어떤 삶이 행복한 삶인지, 비교의 늪에서 헤어 나오게 해야 한다.


1층 사람들


아이의 삶은 아이가 만들어가는 거라는 생각에 최소한이 학원 수업으로 아이의 숨통을 트이게 하는 사람들이다. 어쩌면 아이에게 관심이 없는 학부모로 비칠 수 있지만 아이의 자립을 위한 색다른 관점의 실행으로도 보일 수 있는 사람들이다. 1층에 살아 아이들이 정원을 맘껏 뛰놀 수 있어 좋다. 자주 아이들이 2층과 3층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만 그들은 그들의 삶일 뿐이라고 알려준다.




이 주택에 사는 사람들이 10년 후, 20년 후 어떤 층에 살게 될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층'이라는 개념 자체가 아무런 의미가 없어질 수도 있다. 대학이 종착지 같지만 결국은 끝까지 완주해야 그 삶이 온전히 보인다. '내 아이가 행복한 삶을 사는 것'이라는 세상 모든 부모들의 똑같은 바람, 그 바람을 위한 길이 다를 뿐이다. 하지만 그 길 위에서 굳이 편 가르기는 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출처 : pixabay

내 아이를 위해 친구를 세팅하고 그 무리의 프리미엄에 자존감을 가지는 것까지는 좋다. 하지만 그 무리가 아닌 아이들에 대한 편견만큼은 버렸으면 하는 바람이다. 내 아이가 소중한 만큼 다른 아이도 소중하기 때문이다. 아이가 중학교에 가게 되면 또 다른 주택에 입주를 하게 되겠지만 되도록 3층이 아닌 단층 주택에서 모두 살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물론 결코 그렇게 될 수는 없겠지만 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아내의 밤마실 안주 도시락을 싸주었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