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망쳐버린 부자의 꿈

산산이 부서진 다섯 번의 꿈

by 파란카피

공기업에 다니는 그와의 티 타임은 나이브했다. 낙천적인 그만의 아이덴티티 가득, 정년을 3년 앞둔 그였다. 정년 후 어떤 의미 있는 일을 하며 살아가면 좋을까 함께 궁리를 하는 건설적인 시간이기도 했다. 그러던 중 부동산 투자에 유독 경험이 없는 그에게 진지하게 왜 그런지 연유를 물었다.


잠시 숨을 고른 후 그가 던진 한마디.
'다 마누라 때문이에요.'

그의 첫 번째 끌림은 주식이었다고 한다. 벌써 10년 전의 상황. 거제도에 STX라는 기업이 상장을 했고 유독 앞으로 잘될 거라는 근거 없는 확신이 서더란다. 그래서 와이프에게 처음으로 진지하게 주식 투자를 하자고 했다. 이왕 하는 김에 STX와 삼성전자 2개 종목을 말이다. 아내는 단칼에 거절했다. 주식해서 망한 사람 여럿 봤다고. 주식으로 돈 번 사람 있냐며. 이후 어떻게 되었냐는 말해 뭐해. 물론 지금이야 좋진 않지만 충분히 수익을 내고 엑시트 할 수 있는 상황이긴 했다.


그의 두 번째 끌림은 9년 전 부산 남구청 앞 대연동 쇠락한 주택들이었다. 대연동에 거주하고 있는 그는 산책길에 이런 오래된 동네면 분명 개발이 될 거라 생각했고 시세를 물었다. 한 채당 3천만 원이면 가능한 작은 주택들이 많았고 여지없이 아내에게 물었다. 확신을 가졌고 확답을 받고 싶었다. 이번에도 여지없이 아내에게 퇴짜를 맞았고 그는 좌절했다. 그리고 몇 년 후 그곳은 재개발 소식이 들렸고 결국 L사의 레전드급 대단지 아파트가 들어섰다. 그의 돌이킬 수 없는 아픔 중의 아픔이다.


세 번째 끌림은 8년 전 지금의 부산 기장 오시리아다. 가족과 함께하는 기장 바다로의 드라이브를 즐겨하던 그는 지금의 기장 아울렛이 있는 자리 인근의 토지를 몇 번이고 둘러봤다고 한다. 당시 그렇게 높은 가격 형성이 되어 있지 않은 곳이라 진입이 가능했던 시기였고 또다시 아내에게 퇴짜를 각오하고 보고했다. 아니나 다를까 역시나 이번에도 삐- 그렇게 또 놓치고 말았다. 지금 그곳은 아울렛, 롯데월드, 아난티 코브, 실버 케어 타운 라우어 등 부산의 마이스 산업의 메인으로 어마어마한 변모를 이어왔다. 100평이라도 좀 사두시지. 내가 다 가슴이 아린다.

부산 기장 바다 풍경

네 번째 끌림은 7년 전 부산 문현동 안동네다. 벽화마을로 유명한 이곳은 그야말로 낙후된 동네였다. 피란시절 피란민들의 거처이기도 했던 이곳은 다닥다닥 붙은 성냥갑 같은 무허가 주택들이 즐비했고 비어있는 공가도 무척이나 많았던 그때였다. 당시 500만 원이면 살 수 있는 집들이 있었고 그의 촉은 어김없이 발동했다. 못 먹어도 Go! 아내에게 간곡히 애원했으나 이번에도 탈락. 해마다 습관처럼 거절당하는 스스로를 자책했다. 지금 그곳은 문현 재개발로 철거를 진행하고 있다. 서면과 대연동을 잇는 거점 입지로 새롭게 부상했다.


다섯 번째 그의 끌림은 바로 6년 전 범천동이다. 아내가 간호사로 근무하는 병원이 이전한 곳이 서면 인근의 범천동이었고 출퇴근길 차로 이동해 주었던 그는 그 동네를 유심히 보았다. 네모 반듯한 블록에 성냥갑처럼 다닥다닥 붙은 집들이 마치 텐트처럼 엮여있는 곳에 이끌려 들어섰다. 빈 집이 있어 들어갔더니 화장실조차 없는 곳이 대부분이었고 비어있는 공가들이 상당했다. 이곳 역시 피란시절의 피란민을 위한 터전이었다. 한켠에 담배를 피우는 할아버지가 있어 이곳에 집이 얼마쯤 하냐 물었더니 대체 이런 집을 왜 살 생각을 하냐며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얼마일까를 되물었더 한 천만 원?이라고 하셨고 또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아내에게 마지막이란 심정으로 간곡히, 온 마음을 다해 부탁했다고 한다.


역시나 결과는 땡- 그곳은 지금 범천동 재개발로 철거가 한창 중이다. 그로부터 3년 후 3억 원이 된 그곳은 이듬해 5억 원이 되었고 지금은 매물조차 없다. H사의 1급 브랜드로 시공되며 심지어 후분양으로 진행되고 있다. 그는 현재 43년 차 한 맨션에 거주하며 1 주택자의 자발적 검소한 삶을 살고 있다. 그 무수한 모든 기회를 실기하고 이 맨션의 소규모 재건축에 작은 기대를 걸고 있다.


작년 맨션을 팔고 인근 상가주택 매입을 권했었다. 이 또한 그의 아내의 저지로 무산되었고 그곳은 재개발 소식이 조금씩 들리고 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고 맨션을 팔게 되면 상가주택을 알아볼 것을 권했다. 시각 디자인을 전공한 그이기에 정년 후 브랜딩 사업을 준비하거나 시골의 아버님의 농사를 스마트팜으로 새롭게 이어가는 것을 추천드렸다. 깜냥이 되지 않는 내가 조언을 드리는 게 무안했지만 이러한 과정을 통해 또한 나의 미래 청사진에 대해 함께 그려보는 시간이 되었다. 그동안의 그의 실기가 새로운 미래를 위한 안목의 주춧돌이 되길 기도한다. 자유로운 영혼으로 누구보다 앞선 마인드를 가진 젊은 청년인 그의 머지않은 푸르른 미래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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