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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란카피 May 27. 2022

어느 영재의 길을 잃은 사교육

엄마, 댄스학원 가고 싶어.

2살에 단어를 조합한 말을 시작했다. 3살엔 책을 읽었고 어린이집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줬다. 여자아이들이 빠르다고 하지만 이 아이는 유독 더 빨랐다. 가르치지 않아도 곧잘 공부를 잘했고 그렇게 엄마, 아빠는 사교육 크게 없이 큰 욕심 없이 아이를 잘 키워왔다.


초등학교에 들어가서는 매주 토요일마다 온 가족이 도서관에 가서 4명의 가족이 빌릴 수 있는 최대량의 책을 빌려왔다. 집에 있는 책이란 책은 죄다 읽은 탓이었다. 1주일 꼬박 그 책을 다 읽고 반납하기를 매년 해왔다.


그러다 보니 책의 수준이 초등학생이 읽는 수준을 넘어섰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과 같은 책은 기본, 너무 늦게까지 책을 읽어 밤 12시가 지나면 그만 읽고 잠을 자라고 해야 할 지경이었다. 심지어 책을 너무 좋아해 그 책을 머리에 베고 자는 아이였다.


특별히 사교육을 많이 하지 않는데도 두각을 나타내었던 아이는 4학년이 되어서야 영어학원과 수학학원을 다니게 되었고 늦게 시작했음에도 일찍 시작했던 아이들을 훌쩍 따라잡게 되었다. 특히 글쓰기 능력이 탁월했던 아이는 글짓기 교내 수상을 휩쓸었고 한 장 가득 글쓰기를 어려워했던 아이들과는 달리 몇 장의 글도 크리에이트브 한 생각을 담아 쓸 수 있었다.


초등학교 6학년이 되어 아이는 과학고를 준비하는 영재반의 수학과 영어 학원으로 옮겼다. 그곳에서도 아이는 다른 아이들보다 빠른 두각을 나타내게 되었고 그렇게 중학교 1학년에 진학하게 된다.


대치동에서 이름을 날린 수학 학원으로 유명한 부산의 그 학원에서 아이는 큰 문제없이 잘 지내왔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의 보이콧이 시작되었다. ‘더 이상은 못하겠어, 엄마.’ 매주 너무나 어려운 30 문제를 풀어야 하는 숙제가 부담이었다는 것이다.


대체 그럼 다른 아이들은 어떻게 하길래 하고 알아봤더니 그 숙제를 풀기 위해 토요일 3시간, 모자라면 8시간을 풀로 원장 직강을 듣는다고 한다. 수업을 따라가기 위한 원장 직강의 보충 수업이 필요하다는 사실만으로 경악했다.


한 술 더 떠 영어는 급속도로 빠른 진도를 나가 이미 고등학교 2학년 문법을 다 배운 상태였다. 이런 학년별 영어 수업보다 아이의 진짜 영어 실력을 올려줄 수 있는 학원을 찾았지만 입시를 위주로 한 학원 시스템이 전부인 대부분의 학원으로 도무지 찾을 수가 없었다. 중학교 1학년이 굳이 고등학교 3학년 진도를 나갈 필요는 없었다.


그 무렵 아이의 행복지수를 학교에서 진단하게 되었고 진단표를 꺼내 든 부모는 또 경악했다. 너무나 낮은 행복지수에. 아이에게 물었더니 수학, 영어학원으로 인한 스트레스 탓이라고 했다. 어떻게 했으면 좋겠냐는 부모의 물음에 아이는 답했다.


댄스나 보컬학원을 다니고 싶어.

영재라는 틀이 얼마나 극악무도한 부모들의 욕심인지 새삼 깨닫게 되었다. 지금 배우는 수학, 영어가 내 아이에게 얼마나 큰 행복을 가져다줄까. 공부에 대한 환멸로 학습 장애가 오지는 않을까. 그 길로 두 학원을 모두 관뒀고 진짜 댄스나 보컬학원을 알아보고 있는 중이다.

@ pixabay  여백 있는 삶을 선물해 줄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한 번쯤은 아이가 하고 싶은, 아이가 정말 원하는 삶을 살게 해 줄 필요가 있지 않을까. 내 오래전 고등학교 시절, 부모의 강압적인 학습 강요로 인해 전교에서 가장 착하다고 소문났던 전교 1등인 친구가 느닷없이 가출을 했던 기억이 난다. 부모는 아이를 찾을 수 없었고 몇 개월이 지난 어느 한 거리에서 신문 배달을 하고 있는 친구를 발견했던 기억이다. 그 친구는 끝내 졸업할 때까지 학교로 돌아오지 않았다.


사교육의 끝은 어디일까. 사교육이 아이에게 최선의 행복을 주기 위해 과장된 부모의 욕심이 낳은 시스템은 아닐까. 초등학교 4학년인 내 아이도 7개의 학원을 다니며 밤늦은 시간까지 숙제에 시달리며 산다. 물론 배우고 싶은 악기를 배우는 음악학원도 있지만 대부분은 안 하면 안 되는 교과 학습 학원이 대부분이다.


생각하는 시간, 쉴 수 있는 시간, 놀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한 아이들에게 사각 틀의 갇힌 학원 수업을 강요해야 하는 부모 세대인 나, 이 되물림을 언제까지 이어가야 할 것인지 걱정이다. 내 아이도 언젠가 부모가 되어 이런 걱정을 할 날이 올 테지만 그때는 부디 지금과는 다른 변화된 모습이길 진심으로 기도한다.


매주 주말엔 아들과 함께 생각하는 글을 써야지 하는 마음이지만 주말 온통 숙제를 끝내고 나면 늦은 시간이 되어 잠자기 바쁜 나날이다. 아빠의 게으름을 반성하며 더 재미있는 삶의 공부를 함께하지 못함을 또한 반성한다. 이번 주엔 정말 꼭, 아빠와 함께 시를 쓰자. 아들아. 네게 스트레스가 되지 않는 써야 하는 글이 아닌 네가 쓰고 싶은 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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