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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란카피 Jul 23. 2022

아빠, 대기업은 힘드니깐 난 안 갈래!

초등학교 4학년인 아들이 갑자기 던진 말

초등학교 4학년인 아들이 저녁 학원 일정을 마치고 함께 집으로 걸어오는 길, 툭 하고 던진 말,


아빠, 대기업은 많이 힘들대. 일이.  돈은 많이 받지만 일이 많고 힘들면 건강도 안 좋아질 텐데 중소기업이 낫지 않아? 난 대기업은 절대 안 갈래.


아들아. 대기업은 아무나 가는 게 아냐. 네가 가고 싶다고 그냥 막 갈 수 있는 곳이 아니란다.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 올랐지만 이내 워워 하며 가슴을 가다듬고 말을 이었다.


아들아. 돈이 중요하지는 않을 수 있지만 네가 뭘 사고 싶을 때 돈이 많이 없으면 좋아, 안 좋아? 그걸 못 사게 되면 마음이 어떨까? 대기업이라고 돈을 꼭 많이 받으란 법은 없지만 그래도 이왕이면 돈을 많이 받는 게 좋지 않을까? 대기업이라고 중소기업이라고 일이 많고 적고 가 있을까? 그래도 아빠는 네가 대기업에 가는 게 좋을 거 같은데...?


말을 해놓고 아차 싶다. 대기업에 다니고 있지 않은 내가, 아빠의 회사는 대기업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아이에게 이렇게 말하는 게 맞나?  이 의미를 아이는 이해할 수 있는 걸까? 어떻게 더 말을 하지? 어떻게 마무리를 해야 할까?


아빠, 그래도 대기업은 아닌 거 같아. 그렇게 일을 많이 해서 돈을 많이 버는 것보단 중소기업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일을 해서 필요한 돈을 쓰는 게 맞을 거 같은데? 아니다 꼭 회사를 가지 않아도 되겠구나. 내가 하고 싶은 일로 사업을 하면 되지. 맞지?


얼떨결에 결론이 나버린 상황이 멍하다. 더는 얘기 했다간 샛길로 샐 거 같다. 우선 뭘 본 건지, 어디서 무슨 얘길 들은 건지, 어떤 책에서 힌트를 얻은 건진 모르지만 이런 생각 자체를 한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뭐가 되고 싶어?라는 물음에 없어, 지금은 이건대 또 바뀔 거야, 하루에도 몇 번이 바뀔 때도 있다. 


생각이 있는 걸까?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고작 초등학교 4학년 아이지만 내 아이는 좀 다르길 바라는 여느 아빠와 같은 마음으로 아이를 지켜보다 불쑥 기습적으로 툭 하고 던지는 대기업 이야기는 사실 폐부를 찌르는 느낌이었다. 육아에 준비된 부모가 있겠냐마는 그날도 여전히 어버버 했지만 아이와 이런 얘기를 나누는 그 자체로도 너무나 감사한 순간이었다.


돌아서서 생각해 봤다. 과연 난 내 아들이 어떤 삶을 살길 원하는지. 물론 아이가 원하는 삶을 살아가길 바라고 응원하겠지만 말이다. 조금 더 커 이런 질문을 하게 된다면 어떤 삶이 좋은 삶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 대기업, 중소기업의 이분법적인 접근은 아니겠지만 말이다.

@ pixabay


워라밸도 존재하지만 워라블도 존재한다. 워크 앤 블렌딩, 바로 덕업 일치다. 내가 좋아하는 일은 절대 돈을 버는 일이 되어선 안되었던 X세대에서 내가 좋아하는 일로 돈을 벌고, 보람을 느끼는 MZ의 워라블, 그런 삶을 내 아들이 살았으면 좋겠다. 물론 돈을 많이 버는 것도 중요하지만 하고 싶지 않은, 좋아하지도 않는 일로 어쩔 수 없이 돈을 버는 게 아니라 좋아하는 일을 하다 보니 어느새 돈을 벌었네? 하면 살아가길 바란다.


지금은 당장 그런 말을 할 수가 없다. 하루에 1시간 주어지는 게임 시간을 못내 아쉬워하며 게임을 좋아하는 아이가 그럼 덜컥 나 프로게이머가 될래라고 할까 봐. 좋아하기만 해선 절대 이룰 수 없는 덕업 일치의 경지를 어찌 설명할 수 있단 말인가. 하나씩 하나씩 조금씩 조금씩 점점 더 아이와 대화를 나누며 진짜 하고 싶은 일과 그 일을 꿈으로 연결하는 과정을 함께 하는 것, 그게 바로 육아의 궁극이 아닐까 싶다.

@ pixabay


오늘 아이가 당신에게 대기업에 갈지 중소기업에 갈지에 대해 물어본다면 어떤 답을 하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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