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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란카피 May 15. 2022

딸아이를 만졌다고 했다.

아이를 망치는 부모의 갑질

딸아이가 놀이터를 간다고 해 혼자 보냈고 돌아오자 신체의 특정한 곳이 아프다고 했다고 한다. 같은 학교 남자아이가 딸아이의 신체를 만졌고 그 남자아이의 엄마는 이 사실을 아들을 통해 맞다며 확인해 주었다고 한다. 피해자 딸아이는 가해자 남자아이의 전학을 강력히 원했지만 그 부모는 사과는 하겠지만 아무것도 모르고 한 행동이라 전학은 갈 수 없고 대신 학폭위(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의 결정을 따르겠다는 입장이란다. 그 사이 딸아이는 몇 주째 무서워 학교를 가지 못했고 가해 남자아이는 당당하게 등교를 하고 있다고 한다.


이 사건에서 가장 소름 끼치는 포인트는 그 남자아이는 그 행동이 몰라서 했다기보다는 알면서도 하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다. 가해자 부모는 아무것도 모르고 한 행동이라고 하지만 테스트를 한다며 특정한 신체를 반복적으로 만졌다는 딸아이의 증언을 본다면 결코 모르고 한 행동이라고 보기엔 어렵지 않을까. 심지어 이 아이들은 초등학교 1학년에 불과한데 말이다.


믿을 수 없지만 최근 실제로 한 초등학교에서 벌어진 일이고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사건이다. 최근 개봉한 영화인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를 나는 차마 보지 못했다. 피해자와 가해자 부모의 입장 중 가해자 부모 시점에서 그려낸 영화라는데 그 복잡 미묘한 갈등의 감정선에 휘말리고 싶지 않아서였다. 아이 키우는 엄빠들은 자신의  아이에 대해선 다 같은 혈액형일 거라는 마음에서 말이다.


그런데 말이다. 자신의 아이에 대해선 다 같은 동질감의 혈액형이지만 내 아이를 위한, 다른 아이에 대한 기준에 있어서는 조금 다르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이성보다 감정이 앞서는 사람이라는 동물인 우리들이기에 말이다. 그래서 저 사건의 가해자 부모를 이해한다는 말은 아니다. 결국 저런 가해자 부모의 행동이 자신의 아이를 망치는 꼴이 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거다. 왜곡된 자식 사랑이 엄청난 참사로 이어진 가장 전형적인 케이스가 아닐까.


영화 '소년범죄'를 보면서 한 순간도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말이 되냐 싶었지만 돌아보면 그게 현실이고 실제로 그러한 일들이 우리 곁에서 빈번히 일어나고 있다. 잠시 방심하는 사이, 우리 모두가 그러한 끔찍한 상황 속에 놓일 수 있다는 사실에 경악했다. 비단 소년범죄만이 아니라 일상의 모든 사건 사고들이 그렇지만 말이다.


가끔 우리들은 우리 아이들의 시선 속에 아이의 말만 듣고 섣불리 행동하곤 한다. 얼마 전 아이가 다니고 있는 수영 학원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내 아이보다 두 살 어린 한 아이의 엄마가 학원에 연락이 와 내 아이가 자신의 아이를 때렸다고 하는데 맞는지 확인해 달라는 연락이었다. 우리는 우리 아이에게 정확히 사실 확인을 하고 연락을 주겠다고 했고 아이와 1시간에 걸쳐 대화를 했다. 모든 흥분을 가라앉히고 말이다.

@pixabay

확인을 해달라고 했던 건 두 가지였다. 첫 번째, 수영장에서 수영을 할 때 두 살 어린아이가 내 아이를 앞지르면 바로 그 아이를 발로 찼다는 사실, 두 번째는 집으로 가는 셔틀버스를 타기 위해 줄 서기를 할 때 그 아이를 때렸다는 사실. 우선 첫 번째는 수영을 할 때 억지로 앞지르는 아이를 불러 세워 그 자리에서 발로 찰 수가 없다는 사실. 아이는 그게 말이 되냐고 했다. 발로 찬 적이 없다는 것이다.


두 번째, 줄을 섰을 때 때렸다는 건 먼저 버스를 타기 위해 새치기를 밥 먹듯 하는 그 아이로 인해 다른 동생들이 다칠까 봐 손으로 막다 보니 그 아이가 은연중에  맞을 수도 있었었겠단다. 수영 선생님에게 전화를 해서 그대로 전했다. 첫 번째에 대해서는 그럴 수 있는 상황이 아닌 거고 두 번째에 대해선 고의가 아니었겠지만 그 아이가 그렇게 느꼈다면 사과할 일이라고.


평소 수영 학원에서 다른 아이들과 다투기도 해 한 아이가 다른 반으로 옮겨갔던 상황에 대해 그 부모는 인지하고 있는 걸까. 아이의 말을 듣고 충분히 아이와 대화를 통해 상황에 대한 인지를 끝낸 상황에서 학원으로 연락을 한 건 맞는 걸까. 우리 역시 우리 아이보다 그 아이의 관점에서 더 다각적인 상황별 케이스를 고민했고 결론을 선생님께 알려드렸다.


아내에게 그랬다. 그 아이와 겹치지 않는 수업 시간으로 옮기자고. 아내는 그랬다. 이럴 때 상황을 해결하지 않고 피하는 상황이 된다면 결코 어느 누구에게 좋을 게 없다는 것이다. 유독 그 수업시간에 동생들이 많아 동생을 돌보듯 수영 수업을 하는 아이를 보며 대견하다고 느낀 내가 바보였나 싶을 지경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그런 연락이 왔다는 상황 자체가 화가 났다.


하지만 내 아이가 이러한 상황을 자연스럽게 스스로 헤처 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앞으로의 반복된 상황에 대해 해결할 수 있는 경험치를 선물하는 거라는 아내의 생각에 동의했다. 우리도 더 가깝게 아이와 소통하며 상황에 대해 정확히 살펴볼 필요가 있으니 말이다.


이렇게 아이의 성장 속에서도 성장기가 끝난 부모인 우리도 함께 꾸준히 성장하고 있음을 느낀다. 자신의 아이만을 생각하는, 상대방 아이의 상황에 대해선 눈, 귀를 막는 부모의 무모한 갑질이 결국은 아이를 망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보는 주말 아침이다. 아직 깨어나지 않은 아내와 아이를 위한 맛있는 브런치를 준비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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