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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란카피 Jun 26. 2022

층간소음, 한 순간에 정리되다.

쉽고도 어려운 배려, 우린 결국 모두 같은 사람이더라.

전세로 구축 아파트를 들어갔던 몇 해 전의 이야기다. 이사를 간지 1주일 만에 짐을 정리했고 주말 가족 집들이를 했다. 아이 셋이 조금이라도 걸어 다닐라치면 아래층을 위해 뛰지 말라고 주의를 주며 모처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이었다. 오후 2시경, 아래층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경비실을 경유하지도 않은 채 다이렉트로 전화가 와선 다짜고짜 시끄럽다고 소리를 쳤다.


이사 온 날 떡을 돌렸으니 이사 온지는 알 텐데, 주말이니 집들이를 할 수도 있을 거라 짐작할 수도 있을 텐데 공부하는 아이가 있으니 시끄럽게 하지 말란다. 당황한 나머지 알겠다고 조심하겠다고 인터폰을 끊었다. 그리고 정확히 10분이 지난 시점, 다시 인터폰이 울렸다. 시끄럽게 하지 말라고 하지 않았냐고 사람 말 못 알아듣냐고 했다. 순간, 이건 아니라는 생각에 주말이고, 오후인데 지금 아이들이 집에서 놀 수 있는 거고, 1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집들이인데 그럴 수 없다고 했다. 그는 당장 뛰어 올라오겠다고 했다.


처남이 좀 과격한 편이다. 걸리면 좀 피곤한 스타일이다. 아래층 아저씨가 뛰어 올라왔고 처남이 그를 맞았다. 뭐가 문제냐고, 와서 보라고 이렇게 주말 가족 집들이하는데 그렇게 계속 인터폰으로 전화를 할 일이냐고. 공부하는 아들이 있으니 조용히 해달라는 그와 언성이 높아졌고 처남은 소음 측정을 하고 따지라고 했다. 당장 경찰을 부르겠다고 했더니 쏜살같이 그는 아래로 뛰어 내려갔다. 그 일 이후 아래층은 단 한 번도 연락이 오지 않았다. 6개월이 되는 어느 날, 조용히 이사를 갔다.


@ pixabay


요란하게 1주일이 넘도록 인테리어를 해 새로운 가족이 이사 왔다. 두 달이 지날 무렵 아래층에서 핸드폰으로 전화가 왔다. 아래층에 물이 새는 거 같은데 직접 와서 봤으면 좋겠다고. 퇴근 후 아래층을 방문했고 거실 천장 벽지가 얼룩져 있음을 확인했다. 매도 시점에 집을 방문했을 때 거실 벽지가 얼룩이 져 있어 매도자가 위층에서 물이 새는 거 같긴 한데 위층 사람들이 워낙 새로 도배를 하고 그래도 얼룩이 지면 배상을 요청해라고 했다는 것이다.


관리실과 함께 원인을 찾았다. 배상할 일이 있으면 전액 배상하겠다고 아래층 새로운 분에게 미안하다고 했다. 다행히 층 사이의 문제가 아니라 에어컨 배수를 위한 우리 집 호스 위치의 문제임을 발견했다. 호스 위치를 바로 잡았고 거실의 벽지 도배에 대한 보상을 해드리겠다고 했다. 1주일이 지난 후 인테리어를 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AS를 받았으니 괜찮다고 했다. 고마운 나머지 작은 선물을 사서 아래층에 편지와 함께 감사한 마음을 전했다.


그리고 한 달 후  아래층에서 초인종을 눌렀다. 야간 근무로 낮에 잠을 청하는 그가 매일 시달려 참다못해 올라왔다고. 오후 3~4시경 반복적으로 찌익찌익- 안마기 소리가 들린다고. 안마기를 하거나 아이가 쇠구슬로 바닥을 긁고 있는 거 아니냐고. 직접 들어와서 확인을 해야겠단다. 소스라쳐 놀란 우리 부부는 들어와서 확인하라고 했고 안마기도 쇠구슬도 없음을 확인해줬다. 더불어 그 시간엔 아이가 학원 가는 시간이고 와이프도 외부에 있는 시간이라 집에 아무도 없다고 했다. 그는 믿지 못했고 아이가 집에 있는데 아무리 초인종을 눌러도 나오지 않은 게 아니었냐고 반문했다.


그리고 우리는 나직이 그에게 이야기했다. 사실 우리는 벌써 1년 반째 그 소리를 듣고 있다고. 그 소리는 조용한 오후 시간에만 들리는 게 아니라 밤이고 낮이고 시간을 가리지 않는다고. 하지만 지금껏 무슨 사정이 있겠지 하고 그동안 참아왔다고. 정말 죄송하지만 원인을 꼭 알고 싶으시다면 위층을 확인하셔야 한다고. 그랬더니 쏜살같이 우리 위층으로 올라갔다. 그가 다시 우리에게 돌아오기까지는 채 10분이 걸리지 않았다.


우리 집 위층에 올라간 그에게 위층의 아이 아빠가 자초지종을 알려줬다고 한다.  그 집에 발달장애 아동이 있어 바퀴 달린 의자를 반복적으로 끌어 다닌다고. 아무리 주의를 줘도 같은 시간에 같은 행동을 반복하는 아이를 어쩔 수가 없다고. 정말 죄송하다고. 이야기를 듣고 우리 집으로 온 아래층 그는 상황을 설명해 주곤 어떻게 지금까지 그 소음을 참고 있었냐고, 아이가 그렇다고 하니 우리가 어쩔 수 있겠냐고 그저 참고 살자며 내려갔다. 그리고 그 이후 단 한 번도 세 집은 소음에 관련한 어떠한 일도 없었다.


암묵적으로 서로를 이해했고 서로의 입장을 생각했다. 아이 키우는 집이면 다 그럴 수 있지 않냐며 조금 다른 아이가 조금 더 별난 거, 부모 된 입장에서 그러려니 할 수 있냐며. 그렇게 6개월을 더 살고 위아래 인사도 나누지 못한 채 이사를 왔다. 바로 그 아파트 맞은편으로. 가끔 그 아파트를 지날 때면 지금은 저 세 집이 어떤 마음으로 서로를 배려하며 살아갈까 새삼 궁금해진다. 인사를 하며 지내지 않아도 된다. 맛있는 음식을 나누지 않아도 된다. 다만 서로 배려심 없이 으르렁 대지만 않아도 우리는 행복한 이웃과 지금을 살고 있는 셈이다.


주말 오후, 아이와 아무도 없는 놀이터에서 배드민턴을 치느라 땀을 뻘뻘 흘리고 있을 때였다. 옆의 아파트 중간층쯤에서 개 짖는 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배드민턴을 치는 30분이 넘는 시간을 한 순간도 멈추지 않고 짖어댔다. 문득 저 집의 위아래 옆 집들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을까 싶었다. 그 집뿐만 아니라 아파트 이 동의 전 세대가 말이다. 말이 쉽지 소음 앞에 배려심을 가지긴 쉽지 않다. 하지만 그 원인을 함께 찾고 방법을 공감해 갈등의 폭을 넓혀가야만 함께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그걸 못 참고, 해결하지 못한다면 정말 주택에서 살아야 할 일이다.


@ pixabay


아래층을 위해 걸음에 조금 더 신경 썼으면 한다. 제발 위층이 시끄럽다고 야구방망이로 위층을 쿵쿵 치는 일 따위는 없기를. 다 같이 살아가는 세상에 위든, 아래든, 옆이든 우리 모두 같은 소중한 사람이지 않냐고 배려까진 바라지도 않으니 이해라도 하며 살았으면 한다. 더 이상 언론 매체에서 층간소음으로 인한 사건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우리 마음부터, 자세부터 하나씩 고쳐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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