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편지
멀리 있지만 항상 곁을 지키는 그대에게,
다음 주면 벌써 도서관 낭독수업이 마무리될 예정이에요.
성우 이자영 선생님의 조근조근한 목소리가 벌써 그리워질 것 같아요.
시와 에세이, 주제도 자유롭게 일이분 정도 짧은 글쓰기를 하였고요.
지난 수요일, 수업시간에 드디어 마이크를 잡고 각자의 글을 낭독해보는 두근두근 떨리는 순간을 마주하였답니다.
짝꿍도 없이 홀로 앉은 수강생들 앞줄부터 낭독을 하게 된 것이었어요.
지난 번 수업에 앞 자리에 떡하니 앉아있던 수강생이 그날따라 강의실에 나타나지 않았답니다..
수업은 시작되고 난데없이 낭독을 하는 첫번째 수강생이 되어버렸어요.
스무명 남짓한 수강생중에서 제일 먼저 마이크를 잡고 난생처음 낭독을 할 줄이야!
흠칫 놀라서 낯빛이 붉그스레 달아오르며 어찌할 바를 모르던 순간이었어요.
"잠깐만요. 여기 앉아 계신 모든 분들이 같은 입장인 것 아시지요? 너나할 것 없이 누구나 낭독이 처음이잖아요. 그러니 서투른 것은 당연한 일이에요. 그냥 마음 편히 읽으시면 되어요."
이자영 선생님의 따스한 격려의 말씀을 듣고나서 가까스로 처음 낭독을 하는 두려운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습니다.
자작시『자화상』을 정성들여서 천천히 읊조려 보았습니다.
마이크를 통해 들려오는 내 목소리가 어찌나 낯설고 어색한지 들으면서도 내 목소리가 맞는지 갸유뚱할 정도였습니다.
다행히 중간 중간 더듬대지 않고 무탈하게 읽어낼 수 있었어요.
"아유! 처음이라 떨렸을 텐데, 아주 잘 하였어요~"
선생님의 마음넓은 칭찬의 말씀을 들으며 안도의 한숨을 내리 쉬었어요.
처음이라 겁이 덜컥 났던 것도 무색하게 다음순간부턴 청자가 되어 편안하게 나머지 수업시간을 오롯하게 집중할 수 있었어요.
차례 차례 각자의 글을 순수한 목소리로 읽어나가는데, 유독 귀에 꽂히는 글이 있었어요.
바로 젊은 시절, 소설가를 꿈꾸다가 이내 평범하게 살아가고 있다는 노년의 수강생의 글이었어요.
흰머리를 염색하는 것 마저 넘어선 그녀의 모습이 남달리 다가왔어요.
그녀의 필력을 따져볼 깜냥은 애초부터 없었어요.
다만, 핑크빛 꿈을 내려놓은 지 수십년만에 굽은 허리와 흰머리를 지닌 노인의 모습으로 강의실에 앉은 모습이 눈에 밟히는 것이었어요.
꿈마저도 품을 가슴의 여유를 갖지 못한 수많은 세월이 손에 잡힐 듯 보였으니까요.
짧은 글속에 미처 드러내놓지 못한 구구절절한 속사정이 내 이야기처럼 들리지 않으나 들을 수 있었어요.
간혹 글을 읽다가 제 풀에 감정이 격해져 우는 듯 가늘게 떨리는 목소리를 내고 마는 수강생도 있었고요.
(할머니를 떠나보낸 슬픔을 아직 추스리지 못하였던 수강생이었는데, 깊게 들어주는 것 밖에는 아무것도 건내줄 수가 없었어요)
가만가만 들어주고 나서 울음 섞인 낭독이 끝나고 진심어린 박수를 마구 보내주는 것으로 위로의 마음을 대신하였어요.
그 이후로도 수강생들의 글은 각자의 향기를 지닌 채 강물처럼 마이크를 타고 흘러갔어요.
마음 한 구석, 아픈 사연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
이름난 시인이나 소설가가 아니어도 우리 모두는 자신의 삶에서 이미 시인이고 소설가 아니겠는가.
글이 삶이고, 삶이 글이라면 그것만으로 충분하리라.
다음 주 토요일, 제 편지를 오늘처럼 기다려 주실 테지요.
나와 그대의 5 퍼센트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