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편지
멀리 있지만 항상 곁을 지키는 그대에게,
참깨를 베어내고 짚으로 한 단씩 묶어 양지바른 벽쪽에 세워두었어요.
며칠이고 따가운 햇살과 바람에 말려두는 것이죠.
널다란 포장을 깔아두고 참깨단을 하나씩 들고 톡톡 털어냈어요.
그새 참깨 송이가 스르르 벌어졌고요.
막대기로 참깨줄기를 탁탁 쳐낼 때마다 무르익은 참깨알이 화답하듯 촤르르 쏟아졌어요.
참깨단을 두드리는 농부의 손맛, 수확의 기쁨으로 어울렁 더울렁 재미가 솔솔하지요.
(아마도 물고기를 낚아채는 어부의 손맛도 그와 같을 것 같아요)
요리조리 돌려가면서 참깨를 살뜰히 털어내면 다시 원래 상태로 세워 놓았어요.
대강 한번만 털어서야 참깨알을 모조리 거둬들일 수가 있겠느냐는 심사인 것이지요.
"서너번은 더 털구 마무리하믄 되것어."
농삿일은 평생 농사꾼, 엄마가 제일 전문가이신 지라 언제나 귀담아 듣고 있어요.
낫으로 참깨를 비켜쳐 한줌씩 쌓아 놓으면, 손끝 야무진 엄마가 지푸라기를 돌돌말아 깔끔하게 묶어놓곤 하였거든요.
여저기저 묶어놓은 지푸라기 매듭이 풀썩 힘을 잃고 풀어져 버렸어요.
세워둔 참깨단이 제 몸을 가누지 못하고 와르르 흩어질 세라 서둘러 지푸라기를 다시 둘러서 참깨단을 단단히 여며놓았어요.
이런 일이 있다니요.
지푸라기가 스르르 풀리다니, 엄마의 손목 힘이 얼마나 힘을 잃은 것인지 실감할 수 있었어요.
아무리 참깨단을 여러번 옮겨도 웬만해선 쉬이 풀리는 않는 믿을수 있는 솜씨인데 말이지요.
시간을 두고 몇번을 더 기다려 털고 또 털어내는 과정을 반복해야 했어요.
모아둔 참깨알의 온갖 검불을 걷어내고 체에 걸러내어야 했어요.
(쪼그라붙은 참깨 잎사귀는 물론이고 온갖 벌레와 사마귀도 걷어내야 하고요)
수많은 손길을 통해서 아래의 사진처럼 고운 참깨알을 얻을 수 있어요.
밭에서 참깨를 베어낼 때부터 땀이요, 세워두고 털어낼 때마다 땀이에요.
참깨수확은 어떤 의미에서 땀방울로 지어낸 것과 같아요.
참깨를 볶아서 짜야 참기름이 나오는 것을 아시지요.
참기름 한방울의 고소한 것은 결국 농부의 땀과 노력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에요.
한 단계 한 단계 건너뛸 수 없는 일련의 과정을 견뎌내야 수확의 기쁨을 비로소 만날 수 있고요.
정작 참깨의 가격은 잘 몰라요.
자급자족하는 농사일, 팔고 말고 할 일이 없어서요.
다만 국산인지 수입산인지에 따라 가격차이가 크다는 정도만 알 뿐이에요.
아래 사진은 다 털어낸 참깨단을 쌓아둔 모습이에요.
바짝 마른 참깨단을 번쩍들릴 만큼 가벼워요.
처음 구슬땀을 흘리면서 밭에서 참깨를 베어낼 때는 나름 묵직하여 낫질도 나르기도 버거웠것만,
다 털어내고도 남은 참깨단을 따로 쓸모가 남아있어요.
다름아닌 불소시개로 쓰이는 것이에요.
가을이나 겨울철 마당 한 구석에 화덕에서 큰 솥을 걸고 불을 지필 때 참깨단은 유용하게 쓰인답니다.
굵직한 나무장작에 불이 옮겨붙을 시간을 참깨단을 불살라 만들어 내는 것이에요.
참깨는 다 주고도 남은 쭉정이까지 제 몫을 충실히 하는 것입니다.
버릴 게 없습니다.
참깨 씨앗은 씨앗대로 알토란같이 쓰이고, 쓰레기밖에 될 수 없는 깻대까지 제 몫을 따로 해냅니다.
참기름 한병을 얻기 위해서 그 뒤에 고단한 과정이 구비구비 많아요.
그럼에도 참깨는 다양한 쓸모로 우리의 사랑을 듬뿍 받은 밭작물이에요.
진심에 진심으로.
다음 주 토요일, 제 편지를 오늘처럼 기다려 주실 테지요.
나와 그대의 5 퍼센트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