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할수록 조심스러워야 하것만

토편지

by 심풀

멀리 있지만 항상 곁을 지키는 그대에게

대문이 따로 없는 집에 살고 있어요.

널찍한 마당으로 아무런 연고도 없는 자동차가 들어왔다가 한바퀴 휙 돌아나가기도 하고요.

집 앞 텃밭에 한 켠에 감자를 심어 두었고, 놀리는 땅없이 빼곡하게 상추도 심어놓았어요.

점심식사후에 엄마는 동네회관에 마실을 하시고 나서 아버지 간식을 평소처럼 내어드렸고요.

아래층에 아버지가 혼자 계실 땐 은연중에 신경이 쓰이게 마련이라 드르륵 현관문 밀어젖히는 소리도 예사롭게 흘려 들리지 않거든요.

택배트럭이 들어오는 소리도 듣지 못하였는데 아래층이 왠지 소란한 느낌이 불현듯 들었어요.

하여 하던 일을 내려놓고 곧바로 아래층에 내려가 보았어요.

"누가 왔어요?"

아버지가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시던 참이었어요.

웬만해선 거실 밖으로 걸음하시지 않으시는 아버지이신데 말이에요.

아버지의 표정이 떨떠름한 게 못내 걸려서 큰 소리로 아버지에게 다가가 보았어요.

"무슨 일인데요?"

아버지는 주먹을 불끈 쥐고는 낯빛이 울그락불그락한 채로 역정을 내셨어요.

"전기쟁이! 그 놈 나쁜 놈이여! 상추 도둑놈이여."

한달에 두어번 인근 지역을 돌아다니면서 전기검침을 하는 전기검침원이 마당 한 구석에 자동차를 주차하는 경우가 흔하디 흔한 일이었어요.

물론 시골인심에 선뜻 주차하는 것을 허락도 하였고요.

자초지종을 듣고보니 전기검침원이 주인도 없는 텃밭에서 풍성한 상추를 허락도 없이 마구 뜯어가는 모습을 아버지가 목격하신 것이었어요.

아버지의 말씀이 끝나자마자 얼른 텃밭을 내다보니 전기검침원은 그새 가버린 후였어요.

상추, 이웃들과 나누어 먹는 것이야 당연한 일이었지만 주인도 없는 밭에 들어가 마구 뜯어가는 것과는 의미가 다른 것이지요.

최소한 서로 얼굴을 마주보고 허락을 구해야 하는 게 상식이지 않을까 해요.

치매를 앓고 있는 아버지, 사물의 이름조차 입에 올리지 못하는 인지장애를 겪고 계셔요.

그럼에도 상추 도둑이라면서 정신을 바짝 차리시는 모습에 도리어 반가운 웃음이 살며시 배어나왔어요.

오늘이 며칠인지도 모르고 시간개념조차 사라진지 오래인 아버지의 맑은 정신을 확인하는 사건이 되었어요.

"내가 나가서 승질내니께 그 놈이 내뺏어!"

아버지의 이야기에 뭐라고 맞장구를 쳐야할 듯 하여 고개를 크게 끄덕였어요.

"그랬어요~"

일방적이고 무례한 전기검침원의 행동에 일침을 가하시다니 어쩐지 정정했던 아버지의 예전 모습을 잠깐이나마 만나볼 수 있었고요.

상추 한줌이야 얼마든지 나눌 수 있는 일이기에 대수롭지 않을 수도 있는 일이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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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의 그 전기 검침원은 몇 년 째 오고가는 통에 집안사정을 환하게 알고 있어요.

건강하던 아버지 모습뿐만아니라 지금 치매를 앓고 있는 아버지 사정까지도 빤히 알고 있어요.

나중에 들은 말로는 전기 검침원이 제 식대로 아버지가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고 역정을 내셨다면서 못내 서운해 했다고 해요.

누가 누가에게 서운해야 할 지 아득한 일이구나.

제 허물은 작게 보이는 이치를 어찌 깨닫지 못하는 지 모르겠어요.

본인이 상식의 경계를 넘어섰다는 생각은 추호도 하지 못하면서 환자인 아버지에게 인정을 바라다니요.

참으로 어리석기 짝이 없는 일이었어요.

시골인심에 기대어 무례해도 된다고 여기는 것은 아닐까싶기도 하고요.

사람마다 그릇이 달라서 어떤 이는 손에 쥐어주고 가져가라고 해도 도리질하는 사람도 없잖아있고요.

그와 달리 허락도 구하지 않고 냉큼 내것처럼 굴어도 괜찮다고 여기는 어리석은 이도 있네요.

여전히 그 전기검침원은 제 잘못을 모르는 듯 하니 더욱 안타까운 일이에요.

주인이 선뜻 내어주는 것과 자신의 행동에 그 의미가 얼마나 다른 지 스스로 알아채지 못하고 있는 것이지요.

사람 사이는 친할 수록 더욱 조심스러워하지 않을 까 해요.

그게 부부간이든, 친구사이든 가릴 것 없이 말이에요.

그래야 서로 마음을 다치지 않고 오래 아름다운 관계로 이어져 갈 테니까요.

다음 주 토요일, 제 편지를 오늘처럼 기다려 주실 테지요.

나와 그대의 5 퍼센트 올림.


envelope-7076001_640.png 그대와 나에게 보내는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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