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송편과 빗방울 사이

by 심풀

추석날 아침부터 빗방울이 창문을 타닥타닥 두드렸습니다.

조용하게 오는 듯 마는 듯 떨어져 내리는 이슬비가 점점 굵어지더니 오후에는 빗소리가 제법 굵어졌습니다.

낮부터 밤까지요.

하여 올해 추석 보름달은 먼 이야기가 되고 말았습니다.

어쩐지 보름달을 도둑맞은 아쉬운 기분이 듭니다.

마치 추석날이면 빠뜨리지 않고 보름달 구경을 한 사람처럼 아까운 생각에 젖어드는 것입니다.

"보름달은 추석 다음날에 보아도 괜찮아요."

남편의 말이 작은 위안이 됩니다.

(틀리거나 맞거나 둥글둥글 모서리 없는 사람다운 말 답습니다)

송편 반죽을 만들어 가족들이 빙 둘러 앉아서 각자 재주껏 송편을 빚던 시절도 문득 떠올랐습니다.

부지런하고 일손빠른 엄마가 쌀을 불려서 방앗간에서 쌀가루를 빻아오면 언니와 오빠들까지 모조리 불려나왔습니다.

부엌일과 담을 쌓으며 사시던 젊고 건강했던 아버지까지도 추석날에 송편을 빚곤 하셨지요.


KakaoTalk_20251006_180138678.jpg?type=w773 비에 젖은 채 익어가는 땡감☆


언니는 자기 닮은 조그맣고 귀여운 송편을, 아버지는 생기넘치는 농사꾼의 손바닥만큼 큼지막한 송편을 만들어놓곤 하였습니다.

두 오빠들은 평소에는 웬만해선 부엌을 드나들지 않았는데도 추석날에는 엄마를 도와 꼭 송편을 빚어야 했습니다.

당연히 손끝이 야무질 수가 없었지요.

두 오빠는 뭉툭하게 빚어놓은 모양새가 마치 만두랑 닮은 송편을 빚어 놓았고요.

그마저도 엄마의 눈치를 슬금슬금보다가 어느샌가 꽁무니를 빼곤 하였습니다.

뜨거운 열기에 달궈져서 곱게 빚어놓은 송편은 곧잘 삐뚤빼뚤 모양새가 바뀌어 버리곤 하였습니다.

야속할 정도로 죄다 못난이 송편이 되고 말았거든요.

그와중에도 못나든 잘나든 각자 자기가 빚은 송편을 찾아서 집어먹는 재미가 특별하게 다가왔고요.

예나 지금이나 부엌일은 물론 밭일까지 출중한 엄마는 손이 큰 편이었습니다.

먹성 좋은 아이가 넷이니 젊고 부지런한 엄마는 신이나서 힘든줄도 몰랐을까요.

추석날이면 송편도 역시 몇 채씩 쪄내기를 거듭하였거든요.

한솥 쪄낸 송편을 솔잎을 하나하나 떼어내고 들기름과 소금에 버무려 놓으면 아버지가 만든 송편은 한눈에도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하도 크게 만들어서요.

아마 그 시절 젊고 싱싱한 아버지에게 쪼그리고 앉아서 송편을 빚는 일은 녹록한 일은 아니었겠지요.

논과 밭에서 땀흘려 일하는 보람으로 사셨던 활기넘치던 푸르른 날의 아버지셨으니까요.

이제 아흔을 바라보는 부모님, 떡집의 송편으로 추석을 지냅니다.

두 분이 살아계신 것만으로 대단한 일이라, 송편이야 만들든 사든 상관없는 일이 된지 오래입니다.

건강한 먹거리를 가려 먹어야 하는 시절이기도 하고요.

손수 만든 송편은 멀어졌습니다.

하지만 빗물에 젖어 파르스름하게 빛나는 애호박과 붉고도 노오란 달콤한 고구마가 추석인사를 오는 친척들에게 아쉬운대로 그 자리를 대신 꿰차고 있습니다.


SE-e7839e79-1124-493b-97a9-ffc9eee8ff56.jpg?type=w773 가지가 무거울 정도로 ☆


"내일도 비가 오려나?"

빗방울이 그칠 것 같지 않을 것처럼 내리 쏟아지는 밤하늘을 멍하니 쳐다보며 혼잣말을 되뇌어보았습니다.

어차피 내일은 내일이 되어야 알수 있으리라.

우중충한 낯빛으로 잔뜩 찌푸리는 날씨라도 할 수 없는 노릇이고 마찬가지로 맑고 화창하여도 그와 다르지 않고요.

'팅팅 딱딱 탕탕 타다닥'

추석날 밤, 보름달은 멀어도 밤새 내내 빗방울 소리가 풍요로운 추임새로 가득차 흘러갔습니다.

특히 할 말이 많은 날, 추석날이라 빗소리도 쌓이고 쌓인 밀린 수다를 한껏 풀어놓으려 하나 봅니다.

진심에 진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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