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편지
멀리 있지만 항상 곁을 지키는 그대에게,
부엌에서 빤히 내다보이는 밭에서 이웃 아저씨 한분이 아침부터 홀로 고구마를 캐고 계시네요.
부지런히 설거지를 끝내고 따스한 차 한잔을 쟁반에 받쳐 들고 나갔어요.
"이것 좀 잡숫고 하셔요."
시원한 가을 바람 아래에서 거둬들이는 기쁨을 환히 알지요.
힘들고 고단하여도 고단함을 깜박 잊을 수 있는 농사꾼의 마음인 것을요.
그럼에도 너른 밭 눈대중으로 보아도 열고랑이 넘어보이는 고구마를 어찌 감당할까 싶었어요.
"아유, 고마워유! 잘 마실게유.
고구마 아직 안캤으믄 조금 드릴게유."
건네준 차 한잔을 장갑 낀 손으로 받으면서 푸대자루를 주섬주섬 챙기는 모습에 화들짝 놀랐어요.
하여 연신 손사레를 치면서 마다하였고요.
"아니에요! 저희는 고구마를 조금 늦게 심어서 추석이나 지나면 캐려고 해요.
푸대라니요. 너무 많아요. 그럼 그냥 이 쟁반에 한번 먹을 정도면 주셔요.
아버지가 치아가 부실해서 찐 고구마를 잘 드셔요."
올 봄에 심어놓은 호박모종이 금세 자라나서 제법 울타리를 타고 올라가 이웃 아저씨네 밭까지 뻗어올라간 모습이 눈길에 닿았어요.
"참, 저희 호박덩쿨이 이쪽 밭까지 이어졌네요.
울타리 안에서 맺히는 호박은 개의치 말고 따서 가져가세요."
그 말에 이웃 아저씨는 사람좋은 웃음을 지으며 반기는 기색이었어요.
"아이구, 안 그래도 몇 개가 대롱대롱 매달려 있어서 어쩔까 했어유."
짐짓 당연한 말이었는지는 몰라도 시원스레 서로 주고 받으니 개운한 마음이 들었어요.
호박은 마치 한발 한발 걷듯이 제 몸을 부풀리면서 연달아 노란 호박꽃을 피우고 동그란 호박이 매달아요.
그러다보니 내 땅에 심었다고 해서 모두 내 것이라 하기엔 애매한 경우가 생기는 것이지요.
종이자르듯 경계를 두고 내것과 네것을 구분할 필요가 있을까 싶은 거예요.
너도나도 살기 힘든 세상이라고들 하지요.
그럼에도 '시골인심'은 여전히 살아있어요.
나눌 게 없는 게 아니라 나눌 마음이 없는 것 아닌가해요.
작고 작은 것이면 어떠랴.
이웃 아저씨네는 매년 밤고구마를 일찍 심는 편, 고구마를 짓고 있지만 수확전이니 받아온 고구마도 반가웠고요.
쌀뜨물에 담가서 북북 문질러 붉은 고구마 껍질에 달라붙어 있는 흙을 씻어냈어요.
바로 찐고구마를 만들어 아버지께 간식으로 내어드렸어요.
고구마가 찌는 사이 껍질이 모두 탁탁 벗겨져서 위의 사진처럼 노란 속살이 벌어진 틈으로 고운 얼굴을 내밀었어요.
고구마의 종류는 흔히 밤고구마, 호박고구마 정도로 나누는 것은 아시지요.
팍팍한 질감이나 단맛을 기준으로 생각보다 맛이 조금씩 달라요.
매년 꿀고구마 품종을 심어요.
한데 같은 꿀고구마를 심어도 집집마다 밭의 흙 상태에 따라 맛이 약간씩 다른 것을 느낄 수 있어요.
물빠짐이 좋아서인지 매년 선주문이 들어와서 유일하게 고구마농사는 판매를 하고 있고요.
물론 기껏해야 고구마줄기를 값을 제하고 나면 팔면 팔수록 밑지는 장사를 올해도 해야할 것 같아요.
농사꾼이 장사꾼과는 다른 잣대로 사는 법이 있는 것 아닌가.
덤으로 나가는 게 더 많으니 할 수 없는 노릇이고요.
호박이든 고구마든지 가릴 것 없이 내 것도 남의 담장으로 넘어가면 남의 것이 되는 것이고요.
가을, 다가오는 풍성한 열매조차도 나만을 위한 것은 아니지요.
여느 때처럼 도시에 사는 언니,오빠들과 나누고, 마을회관 할머니들에게 맛을 보여드리면서 주고 받으며 살아가려 해요.
누가 더 남고 덜 남는지 구태어 따져묻고 싶지 않고요.
나누고 나누면서 함께 사는 세상이니까요.
다음 주 토요일, 제 편지를 오늘처럼 기다려 주실 테지요.
나와 그대의 5 퍼센트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