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꾼의 속사정, 밤새 무밭에 도둑

시골이야기

by 심풀

11월 7일 금요일, 입동 겨울로 들어서는 날입니다.

며칠 전, 무를 심어놓은 텃밭을 무심코 바라보다 화들짝 놀랐습니다.

가지런하게 한 줄로 맞춘 것처럼 소복하게 올라온 무청의 행렬 중에 움푹하게 들어간 꼴이 수상하였어요.

발목을 스치는 무성한 푸른 이파리를 헤치고 들어가보니 아니나 다를까 무 이파리가 싹둑싹둑 잘린 상태였습습니다.

'고라니가 아니라면 이런 짓을 할 짐승이 없지….'

들판에서 흔히 만나는 집없는 들고양이나 개들은 알다시피 무청을 씹어먹는 식성이 아닙니다.

날짐승도 마찬가지고요.

그렇다면 역시 의심스런 짐승은 역시 '고라니'

여린 잎사귀를 즐겨먹으면서 가장 가까이에서 살고 있는 동물은 고라니이니까요.

배추와 무가 한창 제 몸피를 키우고 있는 11월입니다.

하룻밤 사이에도 몰라보게 달라지고 있는 이 즈음, 고라니의 도둑질을 눈감아 줄 수 없는 노릇입니다.

남편과 둘이서 머리를 맞대고 의논을 하였습니다.

보다 못한 팔순 엄마가 한 마디 거들어주셨습니다.

"근디 말이여, 포장같은 걸루 덮어노므는 안돼야아, 사람맹키 숨을 쉬어야 사는 거 아니것니?"

옳은 말씀에 "아무렴요."

냉큼 맞장구를 쳐 드렸습니다.

결국,구멍이 숭숭 뚫린 망을 무 이파리 위에 턱 걸쳐놓으면 어떨까 생각을 모았습니다.

(아래 사진처럼요)

이 방법으로 간단히 낮에 따사로운 가을 햇빛은 실컷 받으면서도 고라니의 도둑질은 막을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설마 여느 사람처럼 가벼운 망을 서슴없이 들추고 이파리를 마구 씹어먹을 지능은 없겠다하면서요.

고라니가 그렇게까지 영리한 동물은 아니겠지요.


KakaoTalk_20251106_085138410.jpg?type=w773 망을 씌워놓고☆


KakaoTalk_20251106_085150311.jpg?type=w773 움푹하게 파인 채


농작물을 사이에 두고 고라니와 싸움은 농사꾼에겐 예삿일입니다.

산에서 고라니가 내려와 농작물에 해코지를 하는 일은 수없이 많은 일이라서요.

어스름 저녁이 몰려오고, 깊은 밤이 찾아오면 살금살금 집앞 텃밭에 들어왔겠지요.

언제 다녀갔는지도 모르게요.

낮에는 사람의 발길이 잦으니 얼씬할 엄두를 내지 못할 테고요.

고라니가 추수가 끝난 빈 논을 껑충껑충 뛰어 달아나는 뒷모습 또한 가을 농촌의 풍경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집없는 개나 고양이들이 도시 아파트나 주택가에서 어물쩡 어물쩡 다니는 것처럼요.

따지고 보면 고라니도 사람과 함께 살아가야할 짐승이것만 정성들인 농작물을 마구 헤쳐놓으니 막을 수밖에 없습니다.


KakaoTalk_20251106_085219126.jpg?type=w773 고라니는 여린 무청을 즐기고


그 이튿날 밤, 어둠을 틈타 고라니가 텃밭에 다녀갔을지 못내 궁금하였습니다.

새벽 먼 동이 트자마자 텃밭을 샅샅이 살펴보았습니다.

다행스럽게도 고라니가 다녀간 자취는 더는 눈에 띄지 않았습니다.

'어휴! 천만 다행이다.'

혹시나 싶었던 근심 한조각까지 비로소 갈끔하게 내려놓을 수 있었습니다.


가을, 농작물을 거둬들여야 하는 계절입니다.

이달 하순 쯤 형제들과 삼삼오오 모여 김장을 담그고 나면 겨울채비가 마무리될 듯 합니다.

그 때까지 배추와 무밭을 틈틈히 살펴봐야 할 것 같습니다.

환한 낮에야 별탈없이 지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어둠이 사람의 눈을 가리는 밤 시간은 특히 조심스럽니다.

사람이건 짐승이건 밤을 틈타 서성대는 밤손님은 결코 반갑지 않으니까요.

진심에 진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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