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편지
멀리 있지만 항상 곁을 지키는 그대에게,
겨울이 깊어가는 데 이 겨울을 버텨내지 못하고 사람이 떠나갔다는 소식이 들려옵니다.
지난해 호박 모종을 사가지고 왔던 그 종묘사.
일요시에 담아놓은 순간도 잊지 않고 있는데 이런 일이 생길 수도 있군요.
" 그니께 홍시만 감나무에서 떨어지는 게 아녀, 땡감도 떨어지는 겨."
마구 몰아치는 비바람에 여물지 못한 땡감은 그만 툭 떨어져 버리고 맙니다.
젊디 젊은 여사장이 얼마전에 밤사이에 훌쩍 먼 길을 떠났다고 합니다.
기껏해야 서른후반에서 마흔을 넘겼을까 싶은 나이로 보였건만.
자그마한 몸집에 야무져보이는 인상, 계산속도 빨라서 그녀가 지키고 앉아있는 종묘사 전체가 반짝반짝 윤이 났었습니다.
손님 응대하는 말솜씨도 나무랄 데 없이 산뜻하였고요.
연거푸 종묘사와 거래를 하다보면 저절로 알게되는 사람 됨됨이도 따로 있었습니다.
시시콜콜한 가정사를 서로 주고 받지 않았지만요.
고물고물 두 어린 것들을 남겨두고 어찌 훌쩍 떠났을까.
칠순의 시어머니가 종묘사를 지키고 앉았다니, 봄이 몇번이고 온다해도 이제 다시는 그녀를 만날 수는 없겠지요.
개인적인 친분이랄게 없는 일개 손님으로서도 기가 막힌 소식이라 두 귀로 똑똑히 듣고도 믿어지지가 않았습니다.
사고가 아닌 바에야 창창한 나이에 허망하게 갈 줄 어느 누가 짐작이나 하였겠는가.
갑작스런 죽음에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면서 수년전에 마련해 둔 '연명치료 거부 동의서'를 문득 떠올려 보았습니다.
아버지가 뇌졸중(뇌경색) 발병하고 몇 개월 재활 병원에서 치료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올 즈음이었습니다.
부모님과 남편까지 넷이 한꺼번에 국민건강보험관리공단에 방문하여 절차를 밟았더랬습니다.
"젊은 분이라 아직 하지 않으셔도 될 나이신데요?"
담당 직원의 만류하는 듯한 말투에도 전혀 개의치않았습니다.
"안 가는 사람이 세상에 있나요. 때만 다를 뿐 우리 모두 같은 처지가 될 거고요."
짐짓 망설이는 낯빛의 남편을 살살 구슬러 함께 연명치료 거부 동의서에 서명을 하였습니다.
"나중에 두 아이를 위해서라도 미리 미리 해놓으면 해로운 점이 없을 거예요."
수십년 후에라도 그 날은 반드시 오니까요.
평균수명이 세월따라 늘었났습니다.
여성은 팔십대 중반까지 오래오래 살아가고 있는가봅니다.
마을회관에 날마다 마실을 다니는 엄마도 여든 여덟이 되셨으니 이미 장수를 이룬 셈이고요.
동네회관을 이용하는 어르신들 대부분이 할머니들입니다.
올해 구순을 맞이하신 아버지를 포함하여 할아버지들은 손을 꼽을 수 있을 만큼 몇 분이 되지 않고요.
딱 삼십년이 흐르면 대학 졸업을 앞둔 큰 아이가 지금의 내 나이가 될 터입니다.
'삼십년'
십년을 세번, 꽃피는 봄을 삼십번을 보면 눈앞의 엄마 나이가 되어있겠네요.
젖먹이 아기가 서른 살이 될 만큼 기나긴 세월입니다.
머물지 않고 흘러만 가는 시간 앞에서 뒤돌아보고 어리버리 허비할 짬이 어디 있으랴.
2026년 1월도 끝자락에 선 마당에 새해 소망을 다시한번 일깨워야겠습니다.
소소하지만 반짝이는 아름다운 꿈을 꾸면서 하루 하루를 일구며 살아갔으면 좋겠습니다.
스스로를 다독거려주면서요.
진심에 진심으로.
다음 주 토요일, 제 편지를 오늘처럼 기다려 주실 테지요.
나와 그대의 심풀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