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편지
멀리 있지만 항상 곁을 지키는 그대에게
2025년 1월, 첫 번째 토요일을 맞아요.
손으로 한자 한자 정성들여서 쓴 편지가 아니라도 곱게 읽어주실 것을 믿어요.
곰손에 글씨체도 멋들어지지 않아 이렇게 자판을 두들기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요.
손글씨로 쓰자면 활자로 드러난 못난 글씨 모양이 눈에 밟혀 수없이 찢어버리고 말 것 같으니까요.
막상 당신에게 일주일마다 편지를 보내는 토요일을 맞으니 무엇부터 전해야 할지 잠시 아득하네요.
흥부 마누라 흉내를 내면서 살고 있는 엄마 이야기를 해야겠어요.
엄마는 여전히 지독한 세상을 혼자 살고 계셔요.
엊그제 빨래 건조대를 무심코 지나치나 그 위에 펼쳐져 있는 낡은 엄마의 팬티에 시선이 닿았거든요.
그런 팬티는 아무리 눈을 씻고 찾아봐도 세상에 하나밖에 없을 듯해요.
아마 전래동화, 흥부네 집에서나 만날 수 있을까요.
아니면 전쟁통에 물자가 부족하여 쌀은커녕 고구마로 끼니를 때우던 시절을 아직도 살고 계신 것인지 모르겠어요.
팬티밑을 손바느질로 한 땀 한 땀 기운 면 팬티.
그런 순간에 엄마가 자기 팬티에 잔뜩 눈독을 들이고 있는 제 모습을 본 거예요.
엄마는 화들짝 놀란 기색으로 한걸음에 달려와 건조대 위에 벌러덩 누워있는 자신의 팬티를 날쌔게 채가는 거예요.
모른 척 덮어두면 어떨까 하였지만, 엄마가 평생 기운 팬티를 입고 살다 가시게 둘 순 없어서요.
"엄마! 이제 이렇게 안 살아도 되잖아요."
민망한 지 제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지도 않고선 입고 있는 바지 주머니에 다급한 손길로 팬티를 마구 구겨서 쑤셔넣으셨어요.
"잉? 아녀~."
뭐가 아닌지도 모르겠는 대답 한마디를 의뭉스럽게 겨우 내놓으시고요.
엄마의 얼굴을 마주할 틈도 주지 않고 그대로 안방으로 도망치듯 잰걸음을 재촉하시고 마시네요.
스스로 얼마나 민망할까 싶기도 하고 동시에 엄마가 너무 측은해 보여서 할 말을 꿀꺽 삼켜버리고 말았어요.
그럼 사진을 찍어놓았느냐고요?
물론 사진을 찍어놓기는 하였지만 엄마의 얼어붙은 낯빛이 떠올라 이 편지에 담아올리지 않을래요.
반까막눈 엄마가 이 편지를 볼 일은 없지만 그럼에도 엄마가 충분히 부끄러워 할 일이니 글로 대신해야겠어요.
(엄마는 자신의 이름 석자 또렷하게 쓸 수 있는 반까막눈이에요.)
눈과 마음을 훔치는 새로운 물건이 너무 흔한 요즘 세상이잖아요.
변화무쌍한 세상의 흐름에 맞춰 옷가지를 철마다 새로 장만하는 게 트렌드에 어울리는 멋들어진 삶으로 그럴 듯하게 포장되기도 하고요.
그런 세상에 얼마나 어울리지 않는 이야기인지.
2025년 오늘도 시골마을 한 구석에는 흥부 마누라 빤스를 남몰래 입고 있는 왕소금 엄마가 있어요.
날마다 소금을 음식에 뿌려 먹는 것으로 모자라 빤스까지 기워입고 사셨다니요.
음식, 옷 따질 것 없이 눈물 머금은 짠내가 온 몸에 진득하게 배어버린 엄마예요.
팔십 평생, 왕소금에 푹 절어 살았으니 남은 날들은 소금기를 쫙 빼고 살아도 충분한데 말이지요.
이번 일을 겪고 나서 스스르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가끔 엄마의 얼굴을 보게 되네요.
'무엇을 속에 입고 계실까?' 하면서요.
그 팬티를 도로 꺼내 입지는 않으셔야 할 텐데.
그리운 그대에게만 귓속말로 전하는 남사스러운 이야기예요.
다음 주 토요일, 제 편지를 오늘처럼 기다려 주실 테지요.
나와 그대의 5 퍼센트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