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편지
멀리 있지만 항상 곁을 지키는 그대에게,
요즘들어 눈이 자주 내리고 있어요.
며칠 전 아침에도 여지없이 눈이 쌓여서 남편과 눈삽을 들고 마당과 집앞 진입로에 눈을 치워야했어요.
지난 번 설에는 벅찬 눈이 와서 그만 눈삽하나가 두 동강나는 일도 있을 정도 였어요.
나무손잡이가 무거운 눈 무게을 버티지 못하고 뚝 부러지는 일이 생기거든요.
다행히 눈삽은 조립식이라 따로 나무 손잡이만 사서 고쳐 쓰면 된다니 남편이 또 한번 솜씨를 발휘해 본다고 해요.
농촌살림, 농번기가 아니어도 부지런하지 않으면 살아가기 힘들 삶이에요.
아파트 살 땐 눈이 아무리 많이 와도 베란다 밖을 멀찍이 구경만 하였어요.
눈치우는 일도 아파트 경비원의 일로 여기고 아무 관심조차 두지 않았어요.
지나고 보니 스스로 건조한 줄 모르고 지낸 마른 시간이었네요.
남편과 둘이서 집으로 들어오는 진입로 경사진 길 위에 켜켜이 쌓인 눈을 부지런히 긁어내었어요.
눈삽의 드르륵 긁히는 소리는 시원스레 들려오고 한 삽을 떠낼 때마다 숨은 길이 빼꼼히 드러나는 재미도 빼놓을 수 없었어요.
힘든 줄 모르고 자꾸만 눈삽을 놀리게 되는 순간이었어요.
둘이서 연신 눈삽으로 눈을 치우는 데 저 멀리 제설기 한대가 부리나케 길따라 달려오고 있었어요.
혹시 눈길을 치워주려나 싶어 눈독을 들이며 잠시 제설기가 지나가는 길을 쳐다보았어요.
차 뒤에 거대한 눈삽이 붙은 모습이 듬직해서 신기한 눈초리로 지켜보았어요.
한데 눈앞에서 휙 지나치면서 바삐 제 갈길을 가고 말아 버렸어요.
남편은 멍하니 그 모습을 지켜보더니 아무 말 없이 눈삽을 바삐 움직이고 말았고요.
아쉬운 마음을 얼른 내려놓고 마저 남편과 진입로 눈을 치우고 너른 마당으로 들어섰지요.
눈 내린 날 마당은 유달리 크게 보여 전부 치울 엄두가 나지 않았어요.
"그냥 발 디딜 길만 내주면 될 것 같아요."
남편은 마당에서 눈삽으로 길을 만들기로 하였어요.
동네 회관을 향하는 작은 도로의 쌓인 눈도 치워두어야 엄마의 걸음이 가벼울 듯 싶었어요.
시멘트로 포장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도로, 그전엔 흙길이었어요.
막상 치우다보면 한 삽을 곧게 이을 수 없게 울퉁불퉁한 통에 작게 여러번 나눠서 길을 내주어야 했어요.
기껏해야 엄마가 미끄럽지 않게 걸을 수 있도록 사진처럼 작은 길만 내주고 돌아왔어요.
두어시간후, 겨울햇살이 따사롭게 비추자 쌓인 눈이 모두 녹아내리기 시작했어요.
뚝뚝
지붕위에 쌓인 눈은 모두 빗물이 되어 처마밑으로 흘러내려 마치 세찬 비가 오는 줄 착각할 지경이었어요.
너른 마당에 미처 치우지 않은 눈더미도 언제 그랬냐는 듯히 물로 물로 스며들어 금방 자취없이 사라졌고요.
아침에 남편과 둘이 힘껏 치운 작은 길도 원래모습을 되찾아 하나가 되었어요.
'그냥 두는 지혜는 빛난다'
눈이 몰래 온 것처럼 햇살로 다시 가져가는 순리를 가르쳐 주었어요.
그 몇 시간을 두고 보는 마음이 필요했던 것이었고요.
농촌에서의 삶은 부지런하면서도 부지런하지 않은 마음을 일깨워주어요.
자연속에서 우리는 원래 있던 그 자리로 고요히 돌아가게 되어있으니까요.
다음 주 토요일, 제 편지를 오늘처럼 기다려 주실 테지요.
나와 그대의 5 퍼센트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