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뼘 수필
사흘 만에 논두렁에 갔더니 그새 물이 찰박거린다.
무논이 됐다고 어디서 날아온 건지 오리들이 먹이활동을 하고 있다.
4월 들어 객토를 시작했고 물꼬도 텄으니 이제 본격적으로 농사가 시작되려는 모양이다.
이곳 논두렁은 넓어서 논배미 사이에 차와 사람들이 다닐 수 있도록 길을 닦아놓았다.
나의 불만은 이곳이 시멘트 길이라는 것이다.
논두렁을 가로지르는 길이거나 논두렁을 두르고 있으니 흙길이면 얼마나 좋을까.
다들 흙먼지가 달라붙지 않는, 닦인 길만 좋아하는 걸까?
그래서 나는 주로 흙을 북돋아 놓은 논 사잇길을 걸었다.
도시에 살면서 흙길을 찾기는 정말 어렵다.
공원이어도 둘레길이어도 다 시멘트 길 아니면 잔디밭이다.
잔디밭은 보기는 좋지만 사람들은 들어갈 수 없고 개들은 맘대로 들어간다.
잔디밭의 반만이라도 아니 일부라도 흙길을 내줬으면 좋겠다.
나이 든 사람들은 딱딱한 아스팔트 길에서 염증난 무릎을 두드리면서 걸어간다.
그래서 나는 흙을 밟을 수 있는 이곳이 좋다. 그렇다고 늘 걸을 수 있는 건 아니다.
가을걷이를 끝내고 겨울을 지나 이른 봄까지만 걸을 수 있다.
모종을 하고 벼들이 자라기 시작하면 당연히 그때부터는 논틀길을 걷지 않는다.
물을 머금어 축축해진 논 사잇길이 사람들의 발걸음에 눌려 무너질 수도 있으니까.
지난주 일이다.
객토를 시작한 걸 보고 망설였다. 논 사잇길로 들어가, 말아.
강아지 산책 시키는 사람들이 나다니길래 나도 들어갔다.
흙길은 부드러우면서도 단단해서 걷기에 정말 좋았다.
이제 가을걷이를 마칠 때까지는 못 걷겠지? 오늘 실컷 걸어야지. 신이 나서 걸었다.
문득 발 밑에 토끼풀 한 무더기가 보였다.
옆으로 살짝 피하려는 순간, 왼발이 아래로 쑥 빠지면서 자빠지고 말았다.
얼른 일어나 흙을 터는데 지나가던 아저씨가 가만히 날 쳐다봤다. 창피했다.
그래서 더 보무당당하게 걸어서 얼른 논틀길을 나왔다.
발목과 장딴지가 아팠지만 논바닥으로 철퍼덕 자빠지지 않은 게 천만다행 아닌가.
가끔 자빠지거나 엎어진다.
잘 걸어가다가 엎어져서 무릎이 까지거나 피가 난다. 그럴 때마다 바지에 구멍 나는 게 더 속상하다.
계단을 내려가다가 발을 헛디뎌 콩콩 엉덩방아를 찧은 적도 있다. 동료 한 명이 그걸 봤는데 무덤까지 비밀로 해달라고 부탁했다. 웃으면서 그런다고 했으니 그럴 것이다.
남들은 날 보고 찬찬하게 생겼다고 한다. 깍쟁이 같이 생겼다고도 한다.
엄마는 날 보고 덩더꿍이라고 한다. 덜렁이라는 뜻일 게다.
남편은 성질이 급해서 자빠지는 것이라고 혀를 찬다.
좋게 생각한다.
이렇게 잘 자빠지다 보니 내성이 생긴 거라고.
그래서 삶의 길 위에서도 넘어지고 자빠질 때마다 툭툭 털고 잘 일어나는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