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장 반]프로젝트22
By 한작
처음엔 맬서스가 옳았던 걸로 보였다.
100억 명을 넘어서면서 인구는 기하급수로 증가했고, 식량은 여전히 산술급수로 증가했다. 당연하게 인류는 심각한 식량 부족을 맞이했고, 어린 시절의 기억을 더듬어 보면 늘 음식을 남기지 잔소리를 들으면 밥을 먹었다.
결국 식량 부족으로 멸망할 것 같던 인류였지만 과학의 발전 역시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질소비료의 눈부신 발전과 사막의 개간에 성공하면서 인류는 잠깐의 암흑시기를 벗어나 다시 눈부신 미래로 달려 나갔다.
스무 살이 됐을 무렵 인류가 200억을 넘어가자 이번엔 식수가 문제였다. 지구는 70%가 물로 뒤덮여 있다지만 담수의 비율은 극히 적었고 어마어마한 숫자의 인류가 먹을 식량을 재배하는데 쓸 농업 용수도 만만치 않았다.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결국 기본소득으로만 살아가는 나 같은 사람들에겐 하루 200밀리리터의 식수만 허락됐고, 부족한 수분은 상추와 양배추를 씹어 챙겨야 했다.
기본소득만 받으며 사는 사람은 이미 인구의 50퍼센트를 넘었다. 전세계 100억 명의 사람이 일도 하지 않으면서 식량만 축내는 인간이라는 말이었다. 일부 극단적인 사람들은 기본소득만 받는 인간을 탄소를 내뿜으며, 똥만 생산하는 유기물 정도 바라봤다. 대부분의 육체 노동은 이미 안드로이드가 도맡았기에 예체능에 재주가 없고, 외모가 시시하다면 기본소득을 받아 사는 방법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사정이 이랬지만 사실 난 현시대에 딱 어울리는 인간이라고 스스로 믿었다. 특별히 하고 싶은 것도 없고 되고 싶은 것도 없는 인간. 변두리 원룸에서 혼자 사는 삶이지만 평생 이렇게 산다 해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나는 나의 소박한 인생에 아무런 불만이 없었지만 세상은 늘 빠르게 변해갔고, 변화는 늘 나처럼 가만히 있는 사람들에게 불행으로 다가왔다.
출산율은 줄었지만 인류는 계속 늘어갔다. 가장 큰 이유는 평균 수명의 연장이었다. 내가 마흔이 됐을 때 평균 수명이 벌써 120세를 넘었고 최종적으로 150세가 될 거라는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나 같은 사람들은 어디를 가나 골칫거리 취급을 받았다. 식량을 축내고, 탄소만 뿜어 내는 유기물. 과장하자면 나에게 선거권이 없었다면 투표를 통해 살처분 됐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리고 이런 인식이 점차 커져갈 때 결국 일이 터지고 말았다.
처음 통과된 법안은 기본소득 수급자의 이동 제한이었다. 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해 노동을 하지 않는 사람은 주거지에서 반경 10킬로미터로 이동을 제한한다는 법령이었다. 수 많은 기본소득 수급자들이 이동거리가 짧아진 것에 분노해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지하철을 막아 세우고 버스를 전복시키기도 했지만 시선을 끄는 만큼 정비례로 사람들의 지탄을 받게 되었다. 나 역시 기본소득을 받는 입장이었지만, 시위에 나선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어차피 밖에 잘 나가지도 않는 성격이었기에 반경 10킬로미터라는 제약이 크게 불편하지도 않았다.
큰 진통을 겪었지만 결국 기본소득 수급자의 이동 제한의 사회의 상식이 되는 데는 3년도 걸리지 않았다. 마치 양보나 배려처럼 사람이 양심이 있으면 원래 그렇게 해야 하는 일처럼 인식되어버렸다. 이동거리 제한이 상식이 되자 정부는 다음 법을 내 놓았다. 새로 생긴 법은 기본소득 수급자의 주거지를 16제곱미터 이하로 제한하는 법이었다.
집 끝에서 끝까지 걸어서 10발자국을 겨우 넘는 크기였다. 이동거리를 줄인 것과 더불어 공간까지 줄인 것이었다. 한쪽에선 가축취급을 하는 것이냐며 불만을 터트렸지만, 딱 그뿐이었다. 어쩌면 당연했다. 법이 생기기 이전부터 딱 그 정도 크기의 원룸에 사는 게 대부분이었던 사람들은 그저 그런 법이 있구나 하는 정도였다. 주거지 크기는 오히려 큰 저항 없이 통과되었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사건들이었지만 실질적으로 크게 불편한 것도 없이 10년이 지났다. 인구는 적게라도 꾸준히 늘었고 마찬가지로 기본소득 수급자에 대한 멸시 역시 보이지 않게 조금씩 늘었다. 그리고 그 사이 세상이 뒤엎어질 만한 법안이 통과되었다. 의료, 보건에 한해 기본소득 수급자의 권리를 축소하는 법안. 정확하게는 암과 같은 치명적인 질병에 대해 기본소득 수급자는 연명 치료 및 관리를 제한한다는 법안이었다.
법안이 통과되자 세상은 다시 격렬한 반대로 들끓었지만, 찬성하는 쪽의 논리도 만만치 않았다. 매몰비용에 가까운 진료비를 아직 건강한 기본소득 수급자의 복지에 쓸 수 있고 이미 포화상태를 훌쩍 넘은 인구 조절과 탄소 배출을 줄인다는 논리였다.
나의 세상이 점점 더 비좁고 짧아지는 사이에도 인구는 여전히 늘어나고 있었다. 이미 평균 수명은 140세를 넘어선 시점이었다. 인구가 증가하는 속도가 줄었다는 뉴스가 나오긴 했지만 이미 인구는 지구가 감당할 수준을 넘어서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상황에서 세상엔 전례 없던 법안이 통과되었다. 까마득한 옛날 합의된 교토의정서의 내용을 기초로 한 개인간 탄소배출권 할당과 거래에 관한 법안이었다.
처음엔 무슨 소리인지 가늠도 하지 못했다. 나와 관련이 있는 것인지도 아닌 것인지 판단도 하지 못해 방관했지만 통과된 법안의 내용을 알게 된 뒤엔 난 경악할 수 밖에 없었다. 탄소배출권 할당은 개인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배출할 수 있는 탄소의 총량을 할당하는 법안이었다.
누구나 공평하게 똑같은 양의 배출권을 부여받았지만, 문제는 이 배출권을 사고 팔 수 있다는 점이었다. 할당된 배출권은 아껴쓰면 100세까지 쓸 수 있는 양이었다. 부자라면 다른 사람의 배출권을 사서 천수를 누릴 수 있겠지만, 반대의 경우 가난한 사람의 생명마저 짧게 줄이는 법이었다.
처음으로 후회를 했다. 나의 모든 것을 줄이고 좁히던 세상이 내 생명마저 줄이려 한다는 걸 알게 됐을 때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