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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한 장 반 2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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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한 Oct 15. 2024

Level 5

[한 장 반]프로젝트23

By 이작


연일 급락하던 주가가 반등하여 빨간 불을 띄우자 그제야 바벨자동차 전략실에는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전략본부장 민재는 성급하게 안심하고 있는 직원들에게 버럭 화를 내려다가 꾹 참았다. 어찌되었건 고생했고, 분위기가 전환된 것은 맞았다.


“변호사들은?”

“한 시간 뒤에 회의실에서 만나기로 했습니다.”

“한국 최고 로펌이라는 작자들이 성냥불 하나를 산불로 키워? 이 새끼들 내가 진짜…”

“도착할 때까지 잠깐이라도 쉬시죠. 벌써 며칠째신데….”


애초에 이렇게 커질 일이 아니었다. 운전자 사용 미숙이었고, 사고가 난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해프닝으로 잘 마무리 될 일이 었다. 어째 일이 갈림길마다 나쁜 길로만 흘러간 것이다. 민재는 의자 깊숙히 몸을 묻으며 마른 세수를 했다. 


이 모든 것은 늘 그렇듯 작은 술자리에서 시작되었다. 사고차의 운전자인 정호는 주말에 가족여행을 가기로 해서 금요일 밤 약속이 부담스러웠다. 그렇다고 빠질 수 있는 자리는 아니라서 조금만 마시려고 했지만, 분위기에 휩쓸려 많이 마셔버렸다. 결국 정호는 먹은 것을 다 확인하고 뻗어버렸다. 일행들이 정호를 겨우 부축해서 차에 밀어 넣었다. 현존 최고의 자율주행기능을 탑재했다는 바벨차의 BH5였다.


정호는 목적지를 정확히 말할 수 없을만큼 취했고, 뒷자리에 쓰러지듯 올라탔다. 자동으로 문이 닫히고, 자동차는 정호에게 여러 차례 목적지를 물었지만 차주는 대답을 하지 못했다. 2분 동안 대기하던 BH5는 차주를 스캔해 위급상황이 아니라고 판단하고는 최근 목적지와 정호의 자동차 이용 패턴을 분석해 목적지를 설정하고 아무 사고 없이 무사히 정호를 데려다 주었다. 완벽한 자율주행이었다.


여기서 문제가 생겼는데, 도착한 곳이 정호의 집이 아니라 정호 애인의 집이었고, 정호 애인은 이번 주엔 못 만난다더니 찾아온 정호가 반가웠고, 취한 애인을 그냥 보낼 수 없어 그대로 집에 재웠고, 정호는 유부남이었고, 주말에 가족여행을 가기로 했던 터라 정호의 아내는 오지 않는 남편을 애타게 찾았고, 바벨차 서비스의 도움으로 정호의 차를 찾았고, 차를 찾은 곳이 옛날 옛날에 헤어졌다는 그 어린 년의 집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그냥 그렇게 어떤 부부의 이혼 이야기로 흘러가나 싶은 이야기였다.


하지만, 무언가 매우 억울했던 정호는 바벨차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는지 한 변호사 사무실을 찾았고, 어쩐지 돈 냄새를 맡은 법무법인은 당장 소송을 준비했다. 변곡점은 바벨차의 대리인으로 나온 변호사가 피식 웃은 것이었다.


“하하 이것 참. 선생님이 김유신이에요 뭐에요. 왜 말을 탓하십니까. 막말로 천관녀한테 데려다 준 말이 무슨 죄가 있어요. 가정에 충실하지 않은 자기를 탓하셔야지.”


바벨 측의 반응에 정호는 ‘빡돈다'는 말이 어떤 뜻인지 정확히 깨달았다. 머리속에서 무엇인가 끊어진 듯한 느낌이었다.


정호는 근처에서 가장 높은 주차타워로 갔다. 그리고 맨 꼭대기 층에서 차를 떨어뜨렸다. ‘네. 제가 김유신입니다’ 라는 제목으로 정호가 직접 찍어 영상과 사연은 커뮤니티를 달궜다. 여기에 ‘사실은 나도…’라는 제보들이 여기 저기서 쏟아졌다. 자동 목적지 설정으로 애인 집을 들켜 낭패를 본 유부남들이 그 커뮤니티에서만 30여 명이 넘었다.


각 미디어에서 ‘현대의 김유신' 사건을 다루기 시작했고, 그 자동차 커뮤니티의 ‘피해자'들은 집단소송을 준비했고, 전문가건 일반인이건 모두가 사건을 이야기했다. 자율차의 발달 수준과, 다시 불거진 안전성과, 개인정보와, AI의 자율성을 어디까지 줄 수 있는지를 다퉜다. 


이 뜨거운 이슈에 한 통계 전문가가 기름을 부었다. 한 자동차 커뮤니티에서만 이 유사한 사례를 겪은 유부남이 30명 이라면, 다른 자동차 커뮤니티의 사람들과, 이 ‘오류'를 겪었지만 말하지 않는 사람, BH5를 타지 않은 사람들을 모두 대입해, 자기가 공식으로 풀어보니, 유부남 5명 중 3명은 애인이 있다는 결론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최근에 네비게이션 설정을 손 본 남편이 있다면 ‘무조건' 이라고 덧붙여, 부인들의 의심을 확신으로 바꾸었다.


BH5의 오류가 리콜 대상이냐 아니냐부터, 애초에 오류냐 편의기능이냐 라는 주장들과, 남자들은 모두 자동차 키를 반납하고 버스를 타자는 주장까지 뒤섞여 근 3개월은 시끌시끌했다. 그동안 그 모두에게 외면받은 바벨차의 주식은 연일 곤두박질치다가 이제 바닥을 찍고 조금 반등한 상황이었다. 바벨자동차의 전략본부장인 민재가 새로운 광고 캠페인을 시작한지 3일만 이었다.


차 안에는 운전자는 물론 아무도 타고 있지 않지만, BH5가 햄버거 매장의 드라이브 스루에 들어간다. 미리 주문과 결제를 해놓아 점원이 어린이 세트를 뒷자리에 싣는다. 햄버가 매장을 나온 차량은 어린이집 앞에 선다. 뒷문이 열리고 선생님이 아이를 태우면, 차 안의 모니터에서 바쁜 듯한 엄마가 아이와 반갑게 영상통화를 한다. 선생님한테 손을 흔들던 아이는 햄버거를 발견하고는 활짝 웃는다. 집으로 향하는 BH5 뒷모습 위로 자막이 흐른다. 


 가족의 행복을 지키는 가장 완벽한 자율주행, BH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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